{수필} 어머니의 매맛

2007.03.07 05:43

박봉진 조회 수:1037 추천: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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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를 굶어봤거나 눈물어린 빵 조각을 떼어본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인생을 말하지 말라고 했나. 어찌 먹는 것만 갖고 그러랴. 매를 맞아보지 않은 사람들 또한 그러할지 모르겠다. 불행 중에 다행이랄까? 나는 된통 매를 맞아봤다. 그것은 지난 세월의 묻어둔 광맥인양 내 의지가 흐려질 땐 그 기억 속을 들락거린다. 마음이 허허로우면 한없이 그리워하기도 한다. 내 고등학생 때는 6. 25를 한참 지나쳤지만 군사훈련이란 게 있었다. 그 때 예비역 교관의 매맛은 너무 매웠다. 엎드려뻗친 엉덩이에 목총자루가 마구 튕겼다. “오뉴월 하루 볕이 어디냐”고 했던 햇병아리 군인의 기수별 기합은 또 어땠나. 신참들 엉덩이는 선임자들 한 풀이 대상인 듯, 물통에 담아 불린 야전침대 봉에 탱글탱글 부풀기 일쑤였다. 말단이던 우리는 씩씩거리며 바깥 방화수통이라도 걷어차고 들어와야 잠들 수 있었다.

매라고 해서 분별없는 것뿐이겠는가? 내 여섯 살 때 어머니가 들으신 수수 빗자루 매는 안도와 보은 일 듯한 사랑의 매였다. 사실 나는 매 맞을 짓을 많이 했던 헤살 궂은 아이였다. 내 유년시절엔 메리야스 내의나 수영복은 볼 수 없었다. 운동화와 고무신도 아주 귀했다. 새 신발이 생기면 나는 냇가로 갔다. 신발 배를 띄우고 놀았다. 간혹 급물살을 만나면 신발 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아래쪽 냇가에 가서도 못 찾으면 대신 낮달 배로 옮겨갔다. 옷을 벗어 낮달 배 위에 던지고 냇물 따라 내려가곤 했다. 산그늘 모퉁이에서 그 마저 놓쳐버리면 솜구름으로 몸을 가린 듯, 둥실 구름을 앞세운 검둥 강아지처럼 휘적휘적 집에 갔다.

집안의 야단은 이미 이골이 나 있었으나 마냥 신발과 옷가지가 주어지지 않을 거란 것을 알아차렸다. 놀이터를 옮겨야 했다. 듬성듬성 갈대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굳은 개펄지대였다. 거기선 게와 놀았다. 게도 사는 곳에 따라 종별이 달랐다. 바닷물에서는 옆 헤엄을 잘 치는 꽃게가, 개울에서는 게딱지가 넓적하고 카툰 아저씨의 턱수염이 집게다리에 붙은 참게가 살았다. 마른 논두렁에는 빨간 집게 게가, 무논두렁에는 진흙 색에 흰 반점의 논게가 살았다. 갈대밭 갈게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 싸이즈였다. 집게다리에는 흰 바탕에 텃밭에서 막 딴 가지 즙을 무쳤다고나 할까. 하여튼 화가의 붓끝에서 흘렀을 바이올렛 색상이 신비롭게 번져있었다. 그 갈게가 어린 내 마음을 앗아갔다.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 바라보면 갈게는 발을 마운드에서 떼고 상체를 구부려 조금 앞 나가 있는 야구선수의 자세를 취했다. 아차하면 제 구멍으로 속 들어갈 태세를 갖췄다. 갈게는 생존경쟁의 본능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내보였다. 게딱지의 가장자리에 뉘였던 두 눈을 쫑긋 세워 번갈아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상황을 살피며 마음껏 약을 올렸다. 갈게는 사람의 언어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보글보글 게거품을 겨워 올리면서 “동무야 나하고 노올자”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대영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에서 고대문자를 해독한 것만큼이나 확실 하다. 사람이 전혀 때 묻지 않은 동심의 행동일 때는 하찮은 미물과도 교감을 이룬다. 그래 갈게는 어린 내 마음을 꿰뚫었고. 동심의 나도 갈게의 속내를 다 알았다.

그럴 때는 내 못 말리는 장난기가 공수 양 진영을 넘나들며 야구게임에 뛰어든다. 공격수가 그 다음 마운드를 향해 뛰면서 몸을 날려 손을 뻗치듯, 내 손은 잽싸게 갈게의 구멍을 덮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갈게는 어느새 내 손바닥을 살짝 간질이고 구멍에 들어가 버렸다. 내 한손을 게 구멍 뒤편으로 숨기고 다른 한손으로 갈대 속대를 뽑아 갈게를 꼬셨다. 나보다 눈치가 한 수 위인 갈게는 제 구멍입구까지는 나와도 바깥에는 나오려하지 않았다. 한발 물러나 있으면 그제야 갈게는 사정권 밖임을 알고 구멍 밖에 나와서 우리만이 아는 언어 “용용 죽겠지”를 입에 달고 게눈을 쫑긋거리며 게거품을 겨웠다.

어머니는 아들의 신발과 옷가지가 성한 채 들어온 것만도 기특했든지 늦은 점심을 준 후 바깥일을 보려갔다. 나는 무릎을 꿇고 대청마루와 안방을 가로질러 기어가며 게처럼 옆걸음질을 했다. 헌데 마땅한 게 구멍이 없지 않은가. 식구들이 좀체 손대지 않는 대물림 장롱에 눈이 멎었다. 도포와 두루마기, 무슨 훈장과 장식품들을 양쪽으로 밀치고 들어앉아 장롱 문을 닫았다. 게 구멍 안이 그렇게 안온할 수가 없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새 야단이 났나 보다. 날이 어두워진지 오랜데 집안에 없는 아이를 찾아 동네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개울가를 뒤졌단다. 식구들은 등불을 켜고 집 주변과 뒷산까지 살폈다고 했다. 물에 빠져 죽었거나 맹수에 물려간 것 외는 다른 추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채의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있는 안채를 향해 쩌렁쩌렁 노기를 쏟았다. 속까지 하얗게 탔다는 어머니는 안방 문을 닫고 선대 조상께 지성으로 매달렸다. 그 때었나 보다. 나는 부스스 눈을 부비며 장롱 문을 열고 게 구멍에서 게처럼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꿈인지 생시인지 하마터면 기절할 뻔 하셨다던 어머니는 수수 빗자루를 거꾸로 든 매로 “이놈아 그 안에는 왜...”라고 다그쳤다. 금지구역에 들어간 것이 죄인 줄로만 알은 나는 다급했다.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내가 게거든... 게거든...” 등잔불에 비쳐 반짝거리는 어머니의 눈물자국 밑으로 살구나무 꽃가지가 꽃샘바람에 스쳤는가. 했더니 끝내 감추려던 어머니의 웃음이 설핏 비쳤다.

어머니, 그 때의 어머니 보다 더 나이를 먹은 이 아들은 어린 날의 그 갈게와의 우정을 잃어버린 지 오랩니다. 동심의 신발도 다 떠내려 보내버렸습니다. 오늘도 나는 철부지 그 때 보다 나아진 게 없는 삶을 살면서 내 마음 속 장롱 하나 구별하지 못하고 무시로 들락거립니다. 어머니의 수수 빗자루 매. 맞으면서도 응석부리고 싶었던 그 매맛은 꿈에라도 한 번 더 맛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자국 밑으로 설핏 비쳤던 감추려던 그 웃음은 그 순간의 웃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영원한 웃음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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