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리 농장

2007.03.12 09:11

박봉진 조회 수:1220 추천: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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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의 풍습에서 길조를 꼽으라면 봉황(상상의 새). 제비. 까치 등을 들 수 있지만 미국인의 풍습에선 길조는 오리가 단연 으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다. 영업장이나 가정집을 불문하고 오리 장식품이나 오리 그림 몇 점 없는 데가 없거니와, 이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대통령 인기를 평할 때도 오리의 거처를 들먹거리며, 오리가 물로 내려간 것을 빗대어 레임덕(Lame Duck) 이라 하고 인기 하락으로 치부한다.

가까운 공원 호수엘 가 봐도 오리는 공원과 더불어 한 세트처럼 언제나 우대를 받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것은 별난 나라의 희한한 관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리는 우선 부리만 봐도 생존경쟁의 이점과는 달리 넙적 둔탁하다. 날개는 멀리 날 만큼 억세지도 않다. 몸매는 미인대회 기준으론 뚱자 판정일 테고, 발가락은 붙었으니 기형에 불과하며, 먹는 것은 또 그게 뭔가? 맑은 물에서 물고기만 잡아먹고 사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사람들이 먹다말고 던져주는 온갖 잡식 안 먹는 것이 없고, 배설은 아무데서나 찍찍-. 하지만 오리에게도 한 가지 자랑거리가 있기는 하다. 헤엄치고 잠수할 수 있으며 육지에서는 뒤뚱거리기는 해도 걸을 수 있다. 그 뿐이랴. 오리의 이륙과 착륙은 수륙 어디에서나 가능하니 현대의 첨단 비행기도 오리의 다 기능에는 못 미치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고의 미국인들에겐 대단한 선망의 대상이 될 만도 하다.

오리에 관한 것이라면 우리 집도 한몫 끼어들 만하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오리 농장 이라고 부른다. 뭐, 많은 오리를 사육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물 오리는 단 한 마리에 불과하다. 대신 목제 오리 두 쌍과 사기 오리 한 쌍, 그리고 가구 위의 장식품 오리라든지 벽에 걸린 유화 오리도 꽤 많다. 심지어는 향료 통. 양념 통. 냅킨꽂이. 컵의 문양도 오리 일색이며 목욕실의 비누통까지도 오리 장식이다. 말하자면 우리 집은 오리가 사는데 사람이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니 나는 우리 집의 주업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닭 사육은 양계라 하고 돼지는 양돈. 꿀벌은 양봉. 소는 축우. 오리 사육은 가금(家禽)이라 했는데-. 아무튼 어려운 말보다는 사람들이 불러주는 대로 오리 농장이면 무난할 것 같다.

이 오리 농장은 순전히 미국 이민으로 해서 시작되었다. 아내의 이름은 덕순인데 처가는 민족혼이 있던 집안이라 아내가 태어났던 당시 대부분 여아 이름에 일본식의 자(子)자를 부치는 것에 항거하고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짓는다고 그렇게 됐단다. 아내는 그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늘 불만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된 영문인지 이민 수속을 할 때 서류를 만든 사람이 영자 표기로 Duck Soon 이라고 해놓았던 것이다. 성명 석자가 따라붙는 한국에서라면 그게 문제가 되지 않으나 이곳의 관습으론 앞 이름자의 퍼스트네임과 성씨의 라스트네임만 부쳐서 부르기 때문에 아내의 이름은 Duck Park인 것이다. Duck은 오리이고 Park은 공원이니 영락없는 공원의 오리가 되고 말았다. 직장 사람들은 Duck in the Park 이라고 놀려대기 일쑤였다.

한 번은 내가 어떤 곳에 예약을 하면서 아내 이름을 대주었더니 농담 말고 진짜 이름을 달라고 했다. 그게 틀림없다고 했더니 킥킥 웃다가 틀림없이 기억하겠노라고 능청을 떨었다. 우리 집에 좀 격의 없는 사람들이 전화 해올 땐 예외 없이 오리 있느냐 또는 기약 기약을 바꿔 달라고 한다. 때때로 보내오는 카드도 오리 그림 일색이다. 아무리 항거해도 별명 오리를 면할 수 없게 된 것을 알아차린 아내가 무슨 배짱이 도졌는지 온 집안을 온통 오리 치장으로 해놓은 뒤로 사람들은 우리 집을 오리 농장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나라의 형편이 한참 어렵던 시절에 사돈되는 한 분이 마땅한 벌이가 없어 고향 마을의 개펄 가에 오리집을 지어놓고 많은 오리를 사육했던 적이 있었다. 간만의 차이가 심한 넒은 개펄에는 바닷물이 들고 날 때 마다 작은 물고기 종류와 게. 조개류 등 오리의 먹이가 지천으로 있었다. 낮에는 오리들이 알을 낳을 때까지 가두었다가 개펄로 내몰고 저녁때는 집안으로 드려서 문을 닫아주면 되는 것이었다. 매일 같은 일과를 되풀이 하다보니 오리들도 습관이 들고 그때쯤 주인도 좀 게으름을 피웠다. 오리집의 문을 열어놓은 채 놔두게 됐다. 하루는 야생 오리 떼까지 몰려와서 기르는 오리와 어울려 침식을 같이하는 것을 보고 그분은 무릎을 쳤단다. 가만 놔두어도 오리 재산이 불어날 것 같으니까 말이다. 그대로 방치해두면 기르는 오리도 야생화 된다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마침내 기르는 오리들이 야생 오리의 흉내를 내어 날갯짓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르는 오리도 야생 오리들을 따라 먼 바다로 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도 세속에 너무 어울리다보면 부지불식간에 돌아올 수 없는 나락의 건너편으로 가버리기 쉽다는 교훈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순교자 같은 다짐을 했다.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야생 오리와는 마주치지 않을 것이고 먼 바다에는 아예 나가지도 않을 것이며 Duck in the Park 으로만 평생을 살 것이라고 했다.

노랑머리 사람들과 담장을 맞대고 사는 오리 농장 안팎 사람들은 모두들 왜 그리 바쁜지-. 기약 기약 하면서 후딱 거리는 오리는 새벽엔 직장엘 나가고 주말이면 작은 봉사도 한다. 끝도 없이 어질러지는 일상의 뒷바라지는 물론이요, 내 전속 이발사까지 겸해서 일인 다역을 운명처럼 감내하고 있다. 비록 나선 땅이지만 이곳도 우리의 삶이 뿌리내리면 고향같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세월인데 그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 눈 밝은 것을 자랑하던 오리의 시력도 이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콧잔등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야 하고 마주 뵈는 눈언저리엔 잔잔한 파도의 이랑 같은 잔주름이 세월의 잔영처럼 일렁거린다.

손바닥에 연고를 바른 후 면장갑을 끼고 잠자리에 드는 오리를 보게 될 때마다 나는 아련히 목구멍이 따갑게 메어오는 기억을 되살리곤 한다. 요새 이민 오는 사람들은 지참 한도금도 많고 또 먼저 온 사람들이 곳곳에 터를 잡고 있어서 많은 선택의 생활정보로 곧잘 정착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참금 한도액이 천불이었던 그때의 우리는 이민(移民) 아닌 기민(棄民)으로 회자 됐듯이 여건이 지금 같지는 않았다. 의사나 간호사 같은 전문직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달러를 꼬불쳐온 도피성 이민자도 아닐 바에야 몸으로 뛰는 일밖에 다른 방도가 있었겠는가. 남청여바(남자는 청소 여자는 바느질)란 유행어가 우리의 선택폭을 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오리는 만리타향에서 기왕 막일을 할 바에야 따로 일을 다니는 것 보다는 함께 다니면서 일을 하자고 우겼다. 우리는 아이들을 재내들끼리 아파트 방안에서 놀게 놔두고 고물차 안에 청소 도구를 싣고 아파트 청소를 다녔었다. 그때 오리는 덕지덕지 기름덩이가 타서 붙은 오븐 청소를 하면서 독한 약품을 겁 없이 만져서 손바닥의 피질이 한층 깎였다고 한다. 전능 자께서 우리의 생애를 그때로 되돌려 준 다해도 지금 생각으론 감당해낼 것 같지 않다.

이제 얼마있지 않아 아이들이 모두 둥지를 떠나면 오리 농장은 추수가 끝난 늦가을의 벌판처럼 썰렁해질 판이다. Duck in the Park! 구름 한점 없이 물러선 남가주의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오리 농장이 있는 산자락에는 기약 기약하면서 후딱 거리고 있는 오리 깃 소리의 여운 뒤로 오후 세시의 햇볕이 그 그림자를 점점 길게 뉘여 가고 있나보다.(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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