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전속과 단골

2007.03.12 08:38

박봉진 조회 수:920 추천: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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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소에 가면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코끝이 시큰한 이야기도 듣고 피씩 웃음이 나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때로는 이발사 자신이 그 이야기속의 주인공일 때도 있지요. ‘장마루촌의 이발사’가 흘러간 영화를 흥행시켰고 ‘세르비아의 이발사’가 오페라를 유명하게 한 것 같이 말입니다.

  어떤 이름 없는 이발사도 한 가정의 웃자란 일상사를 그 나름의 빗과 가위질로 다듬어 내곤 했습니다. 그 여자 이발사는 정식 라아센스가 없었습니다. 이발 기구라고는 가위와 머리빗 그리고 헤어드라이어 하나가 고작 이였고 단골손님도 남자 한사람뿐 이였습니다. 커다란 거울의 화장대가 달린 목욕실을 그냥 영업장소로 쓰면 되었습니다. 조발 후 머리는 손님 자신이 감게 하는 것은 샤워를 하면서 물에 떠밀려 모인 머리카락들을 손으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들은 퇴폐업소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 이발사는 예사로 손님을 알몸으로 만들어놓곤 했습니다.

  이발을 하면서 서로가 겸연쩍으면, 각본도 없는 즉석 대사를 이어가곤 했습니다. 손님이 투덜거립니다. “돌팔이 전속 이발사 주제에 손님을 발가벗겨 맨바닥에 앉혀놓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써비스가 어찌 이러오. 이발사의 대응도 만만찮습니다. “원 참, 손님도 손님 나름이지요. 허구한 날 직장 일 가랴, 집안 일하랴, 자투리 짬도 마다않고 팟타임 뛰는 이발사한테 매번 외상 다는 손님치곤 가당찮은 말씀 아네요.

  그 이발소가 생긴 것은 우리 집 이민 역사와 같으니까 꽤 오래됐습니다. 빨강색 파랑색 빗금의 동맥 정맥 싸인판이 돌아가는 이발소에 간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시절 이였으니까요. 세월이 웬만큼 흘러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이발소는 궁상맞게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각 반쪽이 합해져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는 인연이긴 하지만 살다보면 괴로운 일, 슬픈 일, 속 앓을 일, 다툴 일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고나면 그 이발사는 손님 의사는 아랑곳없이 슬그머니 가위와 빗을 들고 이발을 하자고 했고, 손님도 못이긴 체 하고 알몸으로 목욕탕 바닥에 앉아 자라지도 않은 머리를 내마 끼곤 했습니다. 이발을 하는 것은 불편한 심기를 가위질하고 평정심과 삶의 욕구를 회복하는 통과의례 이었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이발소가 어느 하루아침에 영업을 걷어치웠습니다. 이발사와 손님간의 사소한 실랑이 때문 이였지요. 그때 이발사는 점점 흰 머리가 늘어가는 손님을 더 나은 솜씨로 이발해주지 못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 이였습니다. 손님도 이발사를 무보수 오버타임으로 혹사시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잠시나마 그런 잡동사니 일은 놓아버리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 이였을 것 입니다. 두 사람의 속내가 그러하니 실랑이는 그저 구실 이였던 셈입니다.

  그랬기에, 그 이발사는 자기의 단골손님이 다른데서 이발을 하고와도 자기 솜씨인양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손님도 그 이발사에게 깔끔해진 머리 모양새를 잔뜩 뽐내곤 했으니까요. 앞뒤가 맞지 않는 그것이 각자의 속앓이를 털어내고 평온으로 돌아가게 하는 묘약 이였나 봅니다.

  지금은 그 이발소가 없어졌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속이 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더이다.“그 나물에 그 국 맛”그런 험담 을랑 엄청 들어도 싸다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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