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선인장과 항아리

2007.08.28 01:12

박봉진 조회 수:1369 추천: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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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항아리는 비어있지 않았다. 그 항아리는 곁에 사람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이쪽저쪽에서 쳐다봐도 암갈색 유약이 반지르 흐르면서 내 눈을 따라 맞춘다. 운두와 나비로 보아 두말(二斗)들이가 될까 말까 하다. 뒤뜰 패티오 한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인장 화분들은 어미 치마폭을 놓치지 않으려는 아가처럼 그 양옆에 바싹 붙어 있다. 고만 고만한 장독대 식구들 같다.

선인장은 참 별스러운 식물이다. 본시, 메마른 사막 땅에 살고 있은 지라 한 방울 물을 머금는 것은 바로 생존이기에 그것을 보존 하느라고 갑옷을 껴입은 것처럼 잎과 줄기의 구별도 없이 단단한 비닐 코팅을 하고 있다. 그러고도 갈증 난 짐승들이 그 안의 수분을 탐하지 못하도록 표피에 예리한 가시로 중무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선인장은 과분하게 주어지는 은택이나 후광은 원치 않을 뿐더러 오히려 배척하는 편이다.

스프링 쿨러의 물을 흡족히 받는 쪽 선인장은, 민들인들 뿌리가 물러앉으면서 자라기를 그만둔다. 그러나 다른 쪽 선인장은 담벼락에 튀겨진 물방울 덕택에 겨우 갈증을 면하는 처지인데도 파랗게 생기가 돌고 빨간 새순도 돋아 있다. 괜찮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갈퀴질을 해대며 자기 이속을 챙기는 비위 자들을 비웃기나 하는 걸까? 자기분수와 절제를 모르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항아리와 화분 모둠뿐인 그것을 두고, 어떤 이는 청빈한 선비집의 장독대 같다고 하고. 다른 이는 고향의 향취가 베어나는 도예품 코너 같다고도 한다. 옮겨 붙은 불꽃처럼 담장 위에 휘 늘어진 보겐빌라 꽃가지가 고향의 장독대 위에 피어 있던 빨간 석류꽃으로 보였으면 그럴게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간간한 카라멜 향이 나는 간장 맛에, 입안 침샘이 번짐을 느끼면서 친구네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분은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생전에 윤이 나도록 닦아놓았던 그 항아리가 내게로 와 있다. 선인장 화분들도 그 인연으로 남아 있는 것들이다. 그분의 딸 가족이 뉴욕에 살다가 이웃에 이사를 와서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 혼자 사는 노인 아파트가 따로 있었지만, 거의 그 친구네 집을 보살피고 있었음으로 실제는 이웃 친지 분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담 넘어 집 마님처럼 푸짐한 마음씨에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간장 된장 고추장은 재료비도 안 되게 담가주면서 늘 우리 집 먹을거리까지 걱정해주었다. 손수 콩을 삶고 메주를 띄워 그 항아리 안에 간장을 담글 때는 띄약볕을 마다않고 수없이 뚜껑을 여닫곤 했으리라. 달궈져서 잘 익은 그 장류 식품이 있었기에 우리 집 저녁 한 끼는 한식을 즐겼다.

그분에겐 그런 일이 사는 낙처럼 보였다. 그러나 친구네는 한동안 다른 나라에 가있게 되었다. 자기는 편하게 살 거라고 하면서 딸을 밀치다시피 떠나보내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겉으로는 내치는 시늉을 하지만, 속으론 끌어안고 싶은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아니던가. 그 후, 혼자 사는 노인 아파트에서 믿음 생활에 열심을 내던 것과 뵈울 때 마다 여태 못 들었던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곤 했다. 딸네가 떠나버린 허전한 가슴을 그렇게 단도리했으리라.

이민 와서 정착할 때의 고생담과 거기서 부군을 여이었던 비통한 마음을 털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 삼형제가 모두 결혼을 해서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노후 는 딸이 제일이라고 말할 때는 말과는 달리 어떤 우수에 잠기는 기색이 역역했다. 기회가 주어질 때 마다 조금씩 털어놓는 사연들이 전기작품(傳記作品)의 속편 이야기 같았다.

하루는 내게 전화를 했다. 선인장을 좀 구해 달라고 했다. 갑자기 기침 증세가 심했는데, 선인장을 다려 먹었더니 한결 수월 하더라고 했다. 선인장은 '널서리 스토어'에 가지 않더라도 근처의 야산에 자생하는 군락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산자락을 따라 거닐 때 마다 산 토끼와 메추리 떼가 평화롭게 놀고 있다가 카요띠(이리 종류)나 독수리가 나타나면 선인장 숲 안으로 숨던 것을 여러 차례 봤었다. 폭군처럼 간교한 짐승도 약한 동물들이 재빨리 선인장의 피란성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어쩌지를 못했다. 그 선인장이 병마도 피해가는 효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는 두꺼운 가죽 장갑을 끼고 자루가 긴 전지가위를 들고 나갔다. 웃자란 선인장 줄기만을 골라서 듬성듬성 잘랐다. 약한 동물들의 피란성은 잘 보존돼야 하기 때문에 손쉬운 대로 자를 수가 없었다. 여러 곳을 헤집느라고 가죽 장갑을 뚫은 가시에 손가락이 아렸다. 옷소매에 박힌 잔가시들은 팔뚝을 따끔거리게 했다. 선인장을 상자에 담아서 실어다주면서 몇 줄기를 남겨 화분에 심었다. 선인장을 다시 찾을 때는 지체 없이 보내드리기 위함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며칠을 보냈는데 증세가 위독하다고 했다. 씨아틀에 사는 큰 아들이 와서 모셔갔는데, 얼마 후 거기서 부음이 왔다. 폐암 이였다고 했다. 밤잠을 자지 않고 김치를 담아 여러 마켓에 대줬다는 이민초기의 고생담이 귓전을 맴돈다. 하나 둘 자녀들을 짝지어 보낸 후 겨울 산의 나목(裸木)처럼 혼자 남았을 땐 외롭더란 말이 환청으로 들렸다. 연로(年老)에 접어들어서 살아온 세월의 한 주름만큼이라도 편안하게 지내서야 하는 건데-.

씨아틀에 살던 아들도 지금은 다른 데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이산(離散)은 산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국땅에서 고인이 된 노부부는 생전의 그 땅에 연고자가 없어진지도 모르실까. 각기 대서양과 태평양을 바라보며 대륙의 동서단(東西端) 뉴욕과 씨아틀의 동산에 잠들어 있다. 우리 모두는 세상 나그네들인데 이런 이산의 아픔에서 무관할 수 없겠지만 그분을 생각하면 나는 마음 안이 저리다.

사막 땅의 여름 햇볕은 오늘도 따갑다. 선인장 가시처럼 따끔거린다. 빨간 새순이 돋았던 선인장들도 이제는 푸르고 튼실하게 키를 키워 있다.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 본다. 간 장맛 보다 알근한 친구네 어머니의 인정 내음이 풍긴다. 그것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물인가 보다. 시나브로 세월에 풍화되면서 졸아들고 굳어지는 이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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