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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산해를 바라보며

2007.04.03 19:54

박정순 조회 수:876 추천:65

부석사 무량수전에서 산해를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흐린 날이다. 몇 번 다녀오고 싶었던 부석사였다. 그럼에도 혼자서 어디로 간다는 것은 마음의 결정을 엎칠락 뒤칠락 그렇게 접었다 펴기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른 아침 동행하여 주겠다는 친절한 마음을 거절하고 혼자서 지도를 보며 가기로 했다. 부석사는 경사진 산 비탈을 따라 일주문에서 3번의 휘어짐과 3단의 석단으로 극락에 이르는 9품 왕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일주문에서 안양루까지 계단은 108개로서 108번뇌를 잊고 부처님 세계를 향해 가면 극락에 이를 수 있다는 을 말해주기 위한 것이다. 즉 ‘관무량수경’의 3배 9품 왕생의 교리에 따라 건축을 이미지화 시킨 것이다. 밑에서 계단을 올려다 보면 점점 좁아지는 듯하지만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어느 것 하나 어긋남이 없는 평등함을 가르치는 부처님 말씀이기도 하지만 시각적인 아름다움의 효과를 최대한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숨차게 안양루까지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산야가 신비로웠다. 물결치는 바다를 보는 듯한 황홀한 산해였다. 고요한 침묵으로 고운 자태를 간직하며 무량수전은 그렇게 헉헉대며 올라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량수전의 현판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안동까지 피난 온 공민왕의 친필이라고 하니 반가움이 배가 됐다. 부석사를 다녀간 수많은 문인들은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들의 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 김삿갓의 ‘부석사’를 음미한다.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수가 된 오늘에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중략)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이미 늙었는데'. 앞서간 대 시인에 맞춰서 나 또한 한편의 시를 조물거릴 수 밖에. 법당문을 열면 정면에서 내려다 보는 부처님은 이곳에서만은 동향 배치되어 열주를 통하여 바라보게 되어있어 그 장엄하고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든 이의 예술적 감각이 높이 드러나 있다. 아름다운 배흘림 기둥의 열주에 취해 부처님 전에 와서 인사도 없이 돌아서기 미안하여 기도함에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내 마음을 표했다. 늘 마음 써 주는 란네 가족과 우리 가족을 위해서 2개의 천일 기도를 신청하고 나니 마치 기도가 이루어진 듯 기분이 좋았다. 보이지 않는 기도의 효력으로 빚진 마음을 갚을 수 있다면 이보다 큰 기쁨이 어디 있으랴. 특별히 먼 길 혼자 달려온 터이니 돌아가는 길 힘들지 않게 운전하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윙크까지 하고서 말이다. 부석사에 얽힌 설화는 의상대사를 사랑한 선묘 여인의 사랑이야기이다. 문득 영국의 찰스 황태자와 카알라의 오랜 세월의 사랑이야기가 떠 올랐다. 모든 예술의 중심에는 남녀의 사랑으로 인해 행복과 비극을 그리는 극치를 이루는 것이다. 당나라에 머물며 화엄학의 정수를 체득한 의상은 선묘의 집에 들러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선묘는 없었다. 뒤늦게 의상이 다녀감을 알고 달려온 선묘였지만 의상이 배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그녀는 의상에게 주려고 만들어 두었던 옷가지와 함께 바다에 뛰어 들었다. 바다의 용이 되어서라도 의상의 귀국을 돕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의상이 왕명으로 부석사를 창건하려고 할 때 이교도들의 방해가 심해 선묘 용이 나타나 큰 바위를 공중에서 들어 올리고 내리니, 모두 겁을 먹고 굴복하였다고 한다. 하여 절의 이름을 부석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전설을 말해 주듯 무량수전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은 한마리 석룡이라고 한다. 이 석룡은 1967년 5월 신라 5악 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 뜰에서 5m 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견함으로써 단순한 전설만이 아님이 증명되었다. 지면에서 2척 깊이에 묻혀 있는 석룡의 머리는 무량수전 주불(主佛) 밑에 두고 꼬리는 무량수전 앞 석등까지 펼쳐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구전으로 전하는 다른 설화와는 달리 중국 북송 때인 988년에 나온 {송고승전}에 실려있다. 어쨌거나 선묘가 의상을 사랑하여 용이 되었거나 의상이 선묘를 생각하여 부석사를 지었든 이곳에 오는 방문객들은 경관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산해를 바라보면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들의 사랑 또한 이처럼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묘설화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조사당 앞에 있는 선비화는 촘촘한 철장에 갇혀있는 나무이다. 나무가 어찌하여 철장에 갇혀 있어야 할까? 이는 이 나무의 효력을 믿는 이들이 나무를 훼손시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 두었다는 웃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선비화는 의상이 열반에 들며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었다는 것이다. 이 나무는 천 년이 넘은 오늘날에도 나무의 크기가 더 이상 자라지도 않고 똑 같다고 하니 나 또한 뭔가 주머니 가득 도력을 챙겨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두워지는 산사를 내려오며 무거웠던 생각들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스쳐가는 길 위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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