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은 그 후

2013.02.02 01:03

sonyongsang 조회 수:499 추천:56

                        ‘나’를 잃은 그 후
                          (병상수기 5제)

                                                             손 용 상                                        
1. ‘나’를 잃다.

어머니!
당신을 모셔야 할 제일(祭日)을 사흘이나 까먹고 지나친 죄인지 나는 그날 저를 잃었습니다. 잊지 못할 날이지요.

웃으면서 내발로 걸어 병원엘 들어와 “ 어째 몸이 이상해요. 발걸음이 끌리고....“ 마치 장난하듯 의사에게 말하고 침상에 누웠지만 얼마 안 있어 나는 그길로 그냥 그대로 어이없이 반신불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좀 전까지도 줬다 폈다하던 왼손이 느닷없이 감각이 없어지고 왼쪽다리 마저도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사태의 심각함을 온 몸으로 느끼다니... 어머니, 제가 이렇게 멍청한 놈이었습니다.

링거를 꽂은 채 응급실에서 병실로 옮겨지면서 행여 그래도 오늘 밤이 지나면 느낌이 돌아오겠지 ! 하는 바람에 애써 따라온 아내와 아이들에게 우정 밝은 목소리를 내려했지만 그 또한 말이 새며 어눌한 발음으로 변하자 더욱 황당한 느낌만 더해줄 뿐이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착잡한 얼굴로 서로 말을 아끼는 표정들이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며 제일 먼저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응급실을 벗어나 침대를 병실까지 끌고 온 남자 간호사가 뭔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소변이 마려워 무심코 일어서려니 한쪽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더하여 얼굴마저 일그러지며 입이 꼭 다물어지지 않고 그 벌어진 입술 새로 침이 흘렀습니다. 몰래 닦아내며 아이들과 아내 보기가 부끄럽고 두려워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냥 죽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이미 며칠 전에 그 기미가 있었을 때 바로 처치가 들어갔어야 했었는데.... 솔직히 보험이 안 되는 병원비가 겁이나 망설이면서 스스로의 변명으로 시간을 놓친 것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 괜찮을거야. 좀만 두고 보지! 지난번에도 그냥 넘어갔잖아, 한 이틀 쉬면 가라 앉을거야! ” 멋대로 지껄였으니....아아, 얼마나 멍청한 놈이었는지... 어머니, 지금 와서 후회하고 변명한들 무슨 소용일까요?

어머니, 제가 평생을 매사 이렇게 살며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걸 놓치고 잃어버렸는지... 저 혼자만은 압니다. 그러면서 맨날 지난 날을 후회하고 살면서도 이번에 또 그 흐릿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이제는 하찮은 물질이 아니라 내 모든 신체적인 건강을 잃었으니... 아아, 어머니 이제 저는 어떻게 할까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지만 뇌리에는 알 수없는 분노와 스스로에게 향한 원망, 삶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엄습해 가슴이 저밉니다. 하느님께도 물어봅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하고 또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요, 수십 번을 물어도 응답이 없습니다.

아아, 어머니! 그렇게 나를 잃었지만, 그 와중에도 바보처럼 혼곤히 잠이 쏟아져 눈꺼풀이 무거워집니다. 아내가 가만히 한숨을 쉬며 머리를 들어 그 밑에 베개를 받치는 손길을 느끼면서도 도무지 눈이 떠지지 않습니다.         

2. 타인이 되다

간지럽다.
등허리 뒤쪽 어딘가에서 스물 거리는 가려움에 눈을 뜬다. 몸을 일으키기 위해 침대 버튼으로 팔을 뻗는다. 움직이지 않는다. 깜짝 현실로 돌아와 몸을 뒤틀어 성한 팔을 움직여 다시 버튼을 누른다. 침대 상단이 위로 세워지며 앞쪽 어둠이 칠해진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친다.

비뚤어진 입, 함몰된 어깨, 초췌한 얼굴이 먼 타인처럼 생소하다. 그냥 병신의 몰골이다. 핸디캡, 장애우 등등... 모든 좋은 말들이 수천가지라 하더라도, 그리고 혹 남들이 거북해 할까봐 함부로 말을 뱉지 못하더라도 오늘 병실의 내 모습은 그대로 병신의 그것이었다. 이러다 마음까지 그렇게 될까 두려움에 싸인다.

등 뒤의 가려움이 다시금 나를 일깨운다. 끝이 닿는 손은 움직이지 않고 그나마 움직이는 것은 그곳까지 손끝이 자라지 않는다. 이를 악물며 온몸을 뒤틀어 그 부위에 자극을 시도한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온갖 세포가 모다 일어선 듯 전신이 꿈틀대면서도 그 가려움은 풀어지지 않는다.

울컥 짜증과 더불어 공연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까짓, 아픈 것도 아닌데 이따위 가려움 정도야 못 참을까.... 다시금 입술을 깨물지만,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의식은 보이지 않는 가려움을 못 견디어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전신을 요동질 치며 모든 촉각을 곤두세운다.

내 평생, 지금의 이 하찮은 증세 하나에 쏟는 것만큼 내가 가진 모든 털끝을 온 몸에 곤두세울 만큼 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이제 짜증과 분노에 더하여 괴로움까지 겹쳐진다. 주변에 누가 보이지 않나 눈을 굴려보지만 아무도 없다. 하긴 이 밤중에 누가 있을까? 괴로움에 보태져 울컥 외롭고 서러워진다,

울지 말아야지! 두 번 세 번 이를 악물어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져 참을 수가 없다.

3. 비바람 앞에서

갑자기 천지개벽이라도 하려나... 오후 들어 우당탕 퉁탕 번쩍 콰르렁 천둥이 번개를 데불고 억수로 비가 쏟아집니다.

휠체어를 몰아 끌리듯 빗물이 또아리지는 창가로 달려 나와 어둡게 가라않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천둥과 번개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을 쪼개고 시퍼런 칼 빛들이 어둠을 가릅니다.

문득 산사(山寺)에서 툇마루에 앉아 비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희랍인 조르바’를 읽었다는 법정 스님의 수필이 생각나 그때의 풍경이 떠오르며 그분의 심경을 이해할 듯합니다. 병실로 돌아와 그냥 보이는 대로 김훈의 에세이집 한권을 들고 다시 창가로 돌아옵니다.

창밖엔 바람이 몰아칩니다. 병실 외벽에 걸쳐진 가로수가 못 견디게 흔들리며 젖은 이파리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마구 떨어져 흩날립니다. 책을 펼쳐 들었지만 눈에 들오지 않습니다. 머리엔 잡념만 가득합니다.

책을 덮고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잠간 가늘게 줄은 듯 하던 빗줄기가 다시금 문득 생각난 듯 굵은 선으로 바뀌며 쏴~쏴아 퍼붓듯 쏟아집니다. 공연히 움직이지 않는 왼손가락에 힘이 모이며 저절로 반주먹이 쥐어집니다. 혹시나 손가락이 옛날처럼 움직여지지나 않을까 하는 착각에 꼬부라진 손가락을 스스로 펴보려 하지만 그냥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한숨이 나왔습니다.

눈을 돌리니, 가녀린 나뭇가지 한 가닥이 가로수 꼭대기까지 모가지를 뻗쳐 심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한껏 부르짖으며 마구 춤추는 모습이 몹시도 부럽습니다. 하지만 유리창 바깥으로 흠뻑 젖어 허공으로 퍼져나는 저 함성들 그리고 절규, 마치 소리 없는 동영상을 보듯 그 혼돈의 흔들림을 보노라니 아아, 가슴으로 스며드는 감당 못할 외로움과 이에 따르는 내 가슴의 아픔은 무엇으로 달래야하나요 !!

불현듯 ‘누구든지 외롭고 서러울 때면 화장터 징소리를 찾아가보렴’ 이란 젊은 시절 한 시우의 시ㅅ귀가 생각나 더욱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4. 숙명이라면

많은 분들이 찾아 주셨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여러 목사님들... 등등 교회 분들과 선후배님들, 직장 분들, 친지, 친구 분들 모두가 침통한 얼굴로 다녀가셨습니다.

그분들의 공통된 말씀이,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려라, 아울러 앞으로 더욱 홀로됨을 인정하고 꾸준한 재활 운동으로 이 시련을 이겨야만이 재기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또 어떤 분은 이번 일은 저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라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망가진 육신으로 남겨지기 보담은 하느님께서 그냥 저를 데려가시는 것이 낫지 않았겠냐는 내 절규에 그분은 이렇게 확신하듯 덧붙여서 말씀 하셨습니다.

그 동안의 모든 힘든 삶과 주체할 수 없었던 스트레스를 속으로 눌러놓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려 했던 기만”과, 거기에 더해 “신의 섭리를 소홀히 한 교만”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경고를 주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를 기화로 앞으로 더욱 신께 외경심을 가지고 믿음을 굳건히 한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더 빛나는 자리에 나를 쓰시도록 할 것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 저는 지금까지 하느님의 전능과 그분의 존재를 거부한 적이 없고 또한 그분의 뜻을 자의로 거스르려 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분의 뜻은 우리 인간들의 삶의 굴레 안에서 꼭 필요한 최선이며, 그래서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믿고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제 마음속에 붙어있는 그러한 겉 핧기의 믿음들이 그나마 도무지 진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이 경고를 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꼭 신을 통해 인간의 길을 찾기 보담은 인간 스스로가 느끼는 선과 악을 구분해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다만 신께서는 위에서 지켜보시다 우리 인간이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선다고 판단하실 때 오늘처럼의 꾸짖음으로 경고를 주시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분의 뜻이 진정 그러하다면 저는 그야말로 이번 일을 경건히 받아들이고 이제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우선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스스로의 원망을 버려야 하겠고, 그리고 이번 일이 내게 주어진 숙명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그 안에 주어진 어떤 또 다른 운명이 있어 만약 그것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내 최선을 다해 그 일에 몰두함으로써 나를 다시 찾는 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5. 노래를 부르세요 !

항상 함께할 수 없는 서울의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그냥 살기가 버겁고 귀치않네. 끝내버리까 ?
어쩔 수 없이 혼자서 투병생활을 하며 시시로 엄습하는 외롭고 막막한 심정을 독백처럼 내뱉으며 그녀에게 투덜거렸습니다.

-거울을 보세요. 그리고 노래를 부르세요.
한참을 침묵하던 그녀가 약간은 물기 젖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노래…?

전화기를 끄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거울 앞에 서보았습니다. 아직도 비틀어졌던 입술의 흔적이 남아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만 그냥 무시한 채 그녀가 말한 것처럼 노래를 불러 보았습니다. 조그만 목소리로.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공연히 쑥스럽기가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내가 곧잘 18번처럼 부르던 노래가 도무지 음정 박자는 물론 발음마저도 제대로 되지 않는 참담함을 맛보았습니다. 언젠가 닥터가 추천한 스피치 떼라피를 마다하고 무시한 탓에 그야말로 언어신경이 이미 녹이나 쓴 것은 아닌지 더럭 겁이 났습니다 중풍 맞은 환자에게 닥친 당연한 업보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연하죠 ! 입다물고 말안하고 있으니까 신경이 무뎌지는게…. 그러니까 노래를 하라구요. 지루하면 책을 읽거나 시 낭송도 해보고…. 그것도 아주 큰 소리로요. 뭐가 부끄러워요 ?


다음날 다시 통화를 하면서 내 반응을 응석처럼 웅얼거리자 아내는 여느 와는 달리 꾸짖듯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날 챙겨주는 막내가 아침 직장엘 나가면 적막강산이 되는 아파트 거실에서 나는 혼자서 바보처럼 거울을 마주한 채 노래를 부릅니다. ‘망부석‘도 부르고 ‘꿈에 본 내 고향’도 부르고 더하여 군가나 학창 시절의 학교 응원가도 부르고….. 곡이 쉽고 가사가 까다롭지 않는 노래는 생각나는 대로 모두 불러 젖힙니다. 마치 내가 미국 왔던 첫해 엘에이의 ‘뉴욕뉴욕’이란 술집에서 홀 청소 알바를 하면서 초저녁 손님이 없을 때 혼자서 열나게 노래를 부르며 내 설움을 달랬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하게 웃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주어진 상황은 틀리지만, 막막한 심정으로 혼자서 심금 울리는 유행가를 흥얼거리노라면 공연히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혼자만의 리사이틀은 오래가지가 않습니다. 금방 싫증이 일며 불과 십 여분을 버티지 못하고 거울 앞에서 물러서고 맙니다. 그리곤 마치 빠삐용처럼 혼자서  뭔가를 구시렁거리다가 깜짝 헛기침을 뱉으며 아, 아, 아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중…. 아.에.이.오.우.…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발성 연습도 해봅니다. 그러다가 어떨 땐 하나에서 백까지를 바로 세었다 거꾸로 세어보기도 하고 또는 아내의 주문처럼 시를 낭송하거나 책을 읽어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그렇게 잔득하니 차분하게 시간을 죽이는 날은 참으로 드뭅니다.

보통 마음먹고 이 짓을 시작할 때는 그래도 한 한 시간은 해야지… 마음을 먹지만 그것이 지켜지지가 않습니다. 머리속엔 잡생각만 가득하고 생각과 행동이 달라 집중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 시간을 못 채우고 소퍼에 퍼질고 앉으면 한동안은 그저 멍하니 창밖만 내다봅니다.

3층 베란다까지 치솟아 가지를 뻗힌 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흐드러졌던 초록이 누렇게 바래져 가는 모습으로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망막으로 스며듭니다. 그 처연한 모습들은 후회와 회한으로 가득 찬 내 빈 가슴을 후비며 혼자만의 알 수 없는 억울함에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될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비록 내 여생이 짧다 하더라도, 꼭 그만큼 일지언정 후회 없고 회한이 남지 않을 인생을 다시 한 번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3년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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