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과 '골풀무'

2013.07.23 12:01

sonyongsang 조회 수:355 추천:49

  ‘살송곳’과 ‘골풀무’

  덥다. 연일 100도를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움직일 때마다 짜증이 일고,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한 장애우들은 움직이는 자체가 스트레스이다. 그러면 이 ‘더위를 나는 비결’에는 무엇이 있을까? 에어컨 바람도 오래 쏘이면 건강에 안 좋고 맛있는 보양식도 한 번 두 번이지... 그냥 가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 밖엔 없을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주 없지도 않다. 그냥 웬만하면 일찍 들어와 샤워한 후 거실에서 멀찌감치 선풍기 약하게 틀어놓고 가벼운 오락프로를 보거나 무겁지 않은 웃음 있는 글을 읽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다음은 한 지인이 보내준, 우리네 조선시대에 있었던 송강 정철(鄭澈))과 기녀 진옥(眞玉)의 해학있는 Y담(談) 한 토막이다. 무더움이 짜증날 때 한번 읽어보면 청량음료를 마실 때처럼 얼굴에 저절로 슬금 웃음이 번지며 순간 더위가 가실 것이다.

  “잠 못드는 가을 밤, 온갖 생각으로 뒤척일 그 때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철은 누운 채로 대답하니, 문이 열리고 소리 없이 들어서는 여인...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의 방문에 정철은 놀랐지만, 그가 더욱 놀란 것은 장옷을 벗으니 드러나는 화용월태(花容月態(꽃 같은 얼굴과 달 같은 자태)의 미모이었다. 기녀 진옥(眞玉)이었다. 진옥이 말하기를 ‘천기(賤妓) 진옥이라 하옵고 일찍부터 대감의 성을 들었사오며 더욱이 대감의 글을 흠모해 왔습니다’고 나붓이 절을 올린다. 당황한 정철이 다급히 묻는다.
  그래? 내 글을 읽었다니.. 무엇을 읽었는고?’ 하니, 진옥이 ‘제가 거문고를 타 올릴까요?’ 하고는 시 한수를 읊는다 ”

  ‘居世不知世(거세부지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겠고 / 戴天難見天(대천난견천) 하늘 아래 살면서도 하늘 보기 어렵구나 / 知心唯白髮(지심유백발) 내 마음을 아는 것은 오직 백발 너 뿐인데 / 隨我又經年(수아우경년) 나를 따라 또 한 해 세월 넘는구나’

  정철의 외롭고 쓸쓸한 귀양살이와 가는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한 선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시였다. 이렇게 진옥을 만난 정철은 그 이후로 그녀의 샘솟는 기지와 해학, 학(鶴)이 나는 듯한 가야금의 선율 속에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고 우울함을 잊을 수 있었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져 드디어 정철은 그녀를 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정철은 조선의 풍류를 아는 대문호답게 그녀에게 연애 시 한 구절을 날린다.

  ‘옥이 옥이라커늘 반옥(반玉)만 너겨떠니 /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的實)하다 /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하며 정철(鄭澈)이 노래를 마치자 가야금을 뜯던 진옥(眞玉)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하기를...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攝鐵)만 녀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정철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즉석 화창(和唱)은 조선 제일의 시인 정철을 완전히 탄복시켰던 것이다. 진옥의 대귀(對句)는 정철의 시조에 못지않게 자자구구(字字句句) 형식으로 서슴없이 불러대는 정녕 뛰어난 은유적 표현이었다.

  ‘반옥’은 진짜 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인조옥(人造玉)이고 살 송곳은 육(肉)송곳으로 남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데, 진옥은 그 뜻을 쉽게 알아차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진옥은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반玉’에 대하여는 섭철(섭鐵)로, ‘眞玉’에 대하여는 ‘정철(正鐵)’로, ‘살송곳’에 대하여는 ‘골풀무’로 한 대구(對句)는 놀라운 기지와 재치와 해학이었다. 섭철은 잡것이 섞인 순수하지 못한 쇠를 말하고 정철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철이며, ‘골풀무’는 불을 피우는데 바람을 불어넣는 풀무인데 남자의 성기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가 이들의 노래를 추잡한 시정잡배들이 오입질하기 위하여 기생을 유혹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는가? 평소 흠모하던 대 문장가인 정철을 향한 여인의 육체와 정신이 합일을 이루는 숭고한 사랑 행위 그 자체이었을 것이다.

  그 후 정철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그 해 5월 오랜 유배생활에서 풀려 다시 벼슬길에 나가게 된다. 그때 그의 부인 유씨는 한양으로 올라온 정철더러 진옥을 데려 오도록 권하였다. 정철 역시 진옥에게 그 뜻을 물었으나 그녀는 끝내 거절하였고, 강계(江界)에서 혼자 살며 짧은 동안의 정철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지냈다고 한다.

  요즈음 거짓 사랑이 판치는 세상을 보며 어찌 옛날의 이러한 사랑이 얼마나 고귀한지 느끼지 않겠는가. 사랑이란 국경을 넘고 나이를 초월하고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그냥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료출처:權花樂府에 나오는 鄭松江 與眞玉 相酬答이란 詩이다)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0
어제:
1
전체:
13,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