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소나무'가 산소를 지킵니다

2013.12.05 00:26

sonyongsang 조회 수:347 추천:38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킵니다 ‘겨울 추워져서야 소나무 • 잣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는 글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름을 대면 모두가 알만한 은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젊은 시절 가끔 그분과 같이 술 한 잔을 하다가 기분이 얼큰하게 좋아지면 무릎을 치며 /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 사내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 사랑은 불타도 연기가 없다...는 노래를 읊조리며 입담이 자랑하곤 하셨습니다. 워낙 좋은 분이라 우리는 늘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근간 한 블로그에서 그 은사님이 쓰신 ‘옮겨온 좋은 글’ 한 토막을 읽다가 그중 ‘못난 소나무’ 얘기가 한 자루 나왔기에 다시 옮겨 봅니다. 그 분의 얘긴즉,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서 큰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는데, 정작 그 어머니는 고향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는 분의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반 우스개 얘기를 하시면서, 그래서 자식 한 명 정도는 가능한 한 고향 학교에 보내서 늘 가까이에 두고 살았으면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유는 이랬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도가 막혀도 ‘얘야? 하수도가 막혔다. 와서 해결 좀 해라‘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누구야? 얼른 전구 좀 바꿔라‘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구실이었습니다. 하수도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서울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 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옛 어른들이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치셨다고 일렀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이라는 거지요.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 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리고, 또한 괴이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리기 때문에 제자리에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견디면서 자라야 하고,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가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자연을 보존케 하는 그 귀함을 모르고 산다는 겁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스럽게 지켜주는 덕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업신여기고 지나지만, 그러나 사실은 스스로 돌아보면 우리 대부분도 그냥 ‘못난 소나무’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그 밑에서 자라나는 우리 자식들 또한 ‘못난 소나무’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습게도 함께 ‘못난 소나무’이면서 서로를 우습게 알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서로 힐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그 ’못난 소나무’가 오히려 부모에게 효도하고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키는 몫을 할 것입니다.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내 태어난 곳을 지키게 될 ‘못난 소나무’들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소외 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도시의 교육 정책도 못난 소나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자식이 잘되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하더라도 그 개성을 살려주며 격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이지요. 이런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놈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혹 지난해에 그러지 못한 분들이 계셨다면,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웃이 비록 ‘못난 소나무’로 보일지라도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며 ‘우리’속에서 함께 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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