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날에 훔친 카메라
2015.12.25 10:33
얼마 전 독일의 한 TV광고가 네티즌의 마음을 울렸다. 장성한 자녀를 모두 출가시키고 홀로 남은 할아버지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자식과 손주들 얼굴 보기만을 고대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핑계뿐, 실망과 외로움으로 텅 빈 식탁에서 혼자 쓸쓸하게 식사를 한다. 얼마 후 자녀들은 아버지의 부음 소식에 부랴부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뜻밖에도 만찬이 차려진 식탁에 촛불,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장식된 집에서 아버지를 보게 된다.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내가 너희 모두를 집에 불러 모을 수 있었겠니?'하고 되묻는다.
이 영상을 보면서 오래 전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가 폴은 시가를 사러 집 근처 가게에 자주 들른다. 그 가게 매니저 오기는 사진을 찍는 자칭 예술가인데 어느 날 폴에게 무언가 보여주었다. 그건 오기가 12년 동안 아침 7시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앵글로 한 장씩 찍어 모은 무려 4000장이 넘는 사진으로 만든 앨범들이었다.
폴은 모든 사진이 똑같은 것을 보고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얼핏 보아 모든 게 똑같아 보이던 사진 속에서 자세히 보니 계절과 주말, 평일에 따라 출근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순간들이 보였다. 그제야 폴은 오기가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찍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사에서 폴에게 크리스마스 아침에 실릴 단편 하나를 써 달라는 원고청탁이 왔다. 폴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 오기에게 고민을 털어 놓자 오기는 자신의 카메라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날 오기는 가게에서 한 소년이 잡지를 훔쳐 달아나다 떨어뜨린 지갑을 주웠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오기는 지갑을 돌려주려고 소년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80~90 정도의 노파였는데 장님이었다. "로버트, 난 네가 크리스마스 날에는 이 할미를 잊지 않을 줄 알았다"며 포옹하려는 할머니에게 자신도 모르게 "예, 할머니. 크리스마스라서 할머니를 뵈러왔어요"하고는 마주 껴안았다. 속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할머니도 손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도 개의치 않은 듯 행복해 하는 것 같았고 자신을 기쁘게도 해서였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며대면서 이웃가게에서 사온 먹을 것과 케이크에 할머니가 감춰두었던 와인까지 곁들여 둘은 근사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장물인 듯한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았는데 무엇에 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왔다. 서너 달 쯤 지나 가책을 느껴 돌려주려고 다시 갔지만 할머니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1990년 뉴욕타임즈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란 제목으로 실렸다. 삶은 오기의 사진처럼 얼핏 보기엔 똑같이 보여도 그만그만한 다른 스토리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감동으로 따뜻한 인간애는 피어난다.
성탄절(Jesus)에 즈음해 남(Others)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나(You) 자신도 기뻐지는 것이 바로 JOY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영상을 보면서 오래 전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작가 폴은 시가를 사러 집 근처 가게에 자주 들른다. 그 가게 매니저 오기는 사진을 찍는 자칭 예술가인데 어느 날 폴에게 무언가 보여주었다. 그건 오기가 12년 동안 아침 7시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앵글로 한 장씩 찍어 모은 무려 4000장이 넘는 사진으로 만든 앨범들이었다.
폴은 모든 사진이 똑같은 것을 보고 우스꽝스럽고 어이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얼핏 보아 모든 게 똑같아 보이던 사진 속에서 자세히 보니 계절과 주말, 평일에 따라 출근하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순간들이 보였다. 그제야 폴은 오기가 자연과 인간의 시간을 찍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사에서 폴에게 크리스마스 아침에 실릴 단편 하나를 써 달라는 원고청탁이 왔다. 폴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고민하다 오기에게 고민을 털어 놓자 오기는 자신의 카메라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날 오기는 가게에서 한 소년이 잡지를 훔쳐 달아나다 떨어뜨린 지갑을 주웠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오기는 지갑을 돌려주려고 소년의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80~90 정도의 노파였는데 장님이었다. "로버트, 난 네가 크리스마스 날에는 이 할미를 잊지 않을 줄 알았다"며 포옹하려는 할머니에게 자신도 모르게 "예, 할머니. 크리스마스라서 할머니를 뵈러왔어요"하고는 마주 껴안았다. 속이고 싶은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지만 할머니도 손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텐데도 개의치 않은 듯 행복해 하는 것 같았고 자신을 기쁘게도 해서였다.
어떻게 지내느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그럴 듯한 이야기를 꾸며대면서 이웃가게에서 사온 먹을 것과 케이크에 할머니가 감춰두었던 와인까지 곁들여 둘은 근사한 크리스마스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장물인 듯한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았는데 무엇에 홀렸는지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 한 대를 들고 나왔다. 서너 달 쯤 지나 가책을 느껴 돌려주려고 다시 갔지만 할머니는 찾을 수 없었다.
이 이야기는 1990년 뉴욕타임즈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란 제목으로 실렸다. 삶은 오기의 사진처럼 얼핏 보기엔 똑같이 보여도 그만그만한 다른 스토리들로 채워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감동으로 따뜻한 인간애는 피어난다.
성탄절(Jesus)에 즈음해 남(Others)을 행복하게 해줌으로써 나(You) 자신도 기뻐지는 것이 바로 JOY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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