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aan Death March Marathon (죽음의 행군)기행문

2013.04.02 03:03

박영숙영 조회 수:720 추천:187

Bataan Death March Marathon (죽음의 행군)기행문

                   박영숙영

3월 14일 저녁 목요일 남편의 퇴근 후 Houston 을 떠나서 San Antonio 에 있는 딸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ㅡ3월 15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전을 했다
한국의 7배나 된다는 Texas를 벗어나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San Antonio에서 New Mexico 목적지까지 7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첫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총 10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130327_Bataan Newspaper Picture.jpg

New Mexico 와Mexico 국경에는 철책 위에 철조망이 쳐 있었고, 양쪽에는 동네가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그것을 보니 땅굴을 파고Mexico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입국 한다는 뉴스를 본 것이 기억났다. New Mexico의 집들은 땅에 붙어 있고 색깔은 갈색이어서 땅과 잘 구분도 되지 않았고, 지붕 위는 평면 비슷했고 무척 가난하게 보였다

Las Cruces 에는 산을 싸고 있는 돌산 있어 그런대로 아름답게 보였다 ㅡ3월 16일 호텔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White sand missile range 부대에 갔다. Bataan Death March 에 등록한 사람들을 위한 지정된 건물 안으로 덜어 갔을 때,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 남은 Col. Frazier 이 자신의 자서전 Hell’s Guest 책 싸인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도 책을 한 권 사고 난 후 , 그 분과 기념 사진을 찍으려 했다 그런데 내 디지털 카레라는 고장이 나 있었다.

2주전 3월3일 Arkansas Little Rock 에서 가족과 함께 Full Marathon 완주를 했을 때 무척 힘들어 했었다. MRI 결과는 왼쪽 궁둥이에 근육이 뭉쳐서, 그 근육이 힘줄을 누르고 있어, 내가 움직일 때 마다 .
그 부분에 마찰이 생겨서 힘줄이 찢어져 있는 상태라고 했다.
통증약과 함께 3달 동안 운동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다. 그래서 죽음의 행군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혹시 마음이 변할지 몰라서 운동복을 준비해 가지고 왔는데, 변호 표와 매달을 받는 사람을 보니ㅡ 그리고 죽음의 행군은 참으로 의미 있는 마라톤이라 생각하고  나에게, 얼마나 고통이 가중될지도 모르면서 그만 참가를 하겠다고 번호표를 받고 말았다.

시골이라 서였을까? 카메라를 사기 위해, 부대 안에 있는 BX와Sports Good, Staple, Dick’s, Kmart,
Target 6섯 군데를 돌아 다녔다. 일본 상품은 있었지만, 한국상품은 견본은 나열되어 있는데 재고가 없어서 살 수 없었다. 남편은 돌아다니는 것이 피곤하다며 일본제품을 사기를 희망했지만, 나는 내일 사진을 못 찍었음, 못 찍었지 일본 제품을 살수는 없어서, 결국 카메라는 사지 못하고 가계를 나왔다. 남편이 총각 때 쓰던 일본제품들이 우리 집에서 사라진 이후 36년을 미국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일본제품은 사지 않고 살아왔다.
죽음의 행군새벽 1.jpg

3월17일 새벽 2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3시에 부대에 도착을 했다. 새벽 5시 사람들이 집결지로 모였고 6시에 애국가를 부르고 식이 시작되었다.
군인들이라서 일까? 바람이 몹시 불고 윗옷을 3개나 껴 입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리도록 추웠었는데, 애국가를 부르는 동안은 너무나도 엄숙하고 경근해서 숨소리조차 덜리지 않는 듯 했다. 베트남 참전용사, 걸프전 참전용사 그리고 한국참전용사를 위한 묵념을 할 때, 내 가슴에서 울컥 뜨거움이 눈으로 솟아 올랐다. 세계 17개국에서 목숨을 내어 놓고 6.25동란에 참전한 군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 민국은 있었을까?


Bataan Death March 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했을 당시 Miraveles 에서Bataan Peninsula 남쪽에서 시작하여 Camp O’Donnel 까지 70마일이 넘는 거리를 행군한 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행군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75.000명이 행군하는 5일 동안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풍토병으로 10 yard 마다 미국 군인 한 명씩이 죽어 간 것이 만병이 넘는다고 했다.(나중에 조사 한 바에 의하면)ㅡ죽음의 행군,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눈물로 피 토하며 쓴 그들의 ‘시’는 영혼이 무너지는 마지막 절규였다

We’re the battling bastards of Bataan,
No mama, no papa, no Uncle Sam,
No aunts, no uncles, no nephews, no nieces,
No pills, no planes, no artillery pieces,
……..and nobody give a da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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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때 3월 1일이나, 8월 15일 그리고 제현절에는 공설운동에 학생들이 모여서 식을 하고 난 후 대형 태국기를 앞세우고 시가 행진을 하였는데 지금도 내 고향 진해에서는 8월 15일 해방이 되어  

주권을 되찾고, 대한민국의 법이 세워진 것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를ㅡ 애국심을 되새기며 행진하고 있을까?

죽음의 행군에는 모두 5천 4백 30명이 참가했는데 여러 주에서 혹은 해외 파견 나가있던 군인도 참가했다. 모인 사람들 중 반 이상이 군복을 입은 군이었다.
군인들은 Heavy 와 light 이 있고 그리고 단체와 개인이 있는데 단체는 5명이 한 조가 되어야 하고ㅡHeavy는 35파운드에서 40파운드를 베낭에 짊어지고 26.2마일을 완주해야 되는데 ㅡ단체의 경우 20초 간격 안에 동료와 함께 완주되지 않으면 실격이 된다.


또한 무게를 달아 35파운드 미만이어도 실격이 된다. 전쟁이나 훈련 중 부상당한 동료를 뒤에 두고 혼자 가지 않는 전우애를 시험하고, 죽음의 행군을 기억하고 추모 하기 위해 Bataan Death March가  시작되어 24회를 맞았다.

식을 하는 도중 내 옆에 서 있는 한 청년의 베낭이 다른 사람에 비해 무척 커 보였고 너무 어려 보여 내가 말을 걸었다.군복을 입은 청년의 나이는 16살이고 이번이 두 번째 행군이며 ROTC학생 이라 했다. 16살의 나이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을 단련시키고, 자신을 절 재할 수 있는 그 행동이 높이
보였으며, 애국심 또한 높이 보여 남편과 나는 그를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미 국기를 들고행군.jpg

남편은 1년 반 전부터 이 행군에 참가하기 위해서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난 남은 사람들의 자서전  책을 사서 읽어 보면서, 베낭의 무게를 늘려가면서 달리기 연습을 하였는데, 베낭의 무게가 늘어갈수록 왼쪽 수술한 무릎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서 베낭 없이 참가했다.
죽음의 행군은 완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는 마라톤으로 ,아침7시 상의군인부터 출발했는데,

26.2마일 전 구간 중 5마일 만이 아스팔트이고, 나머지 거리는 1인치 정도에서 5인치 정도가

쌓여있는 모래 산길이었다.

시작하는  (해발 1.250M) 1마일부터 13마일 까지(1.650M ) 언덕을 올라가는데, 하늘까지 걸어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행군하는 도중 간간이 시간당 40마일의 속도로 바람이 불어 오고, 앞서가는 사람이 모래를 차고 나가면서 뒤로 밀기 때문에, 모래먼지를 흠뻑 뒤집어 썼다. 신발 속에는 모래가 바위덩이로 굴려 다녔다.

정오가 되니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땀이 나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걸어 올라가는 도중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었고, 8 마일과 20 마일에는 20명 정도가 덜어가서 누워 쉴 수 있는 텐트가 4~5개가 있었고, 밖에 또한 간이침대가 그만큼 있었다. 군인들은 쉴 때마다 양 발을 바꾸어 신었다


14 마일 지점에서는 Hamburger,와 Hot Dog을 팔았는데 텐트가 있는 곳 마다 많은 군인들이 모여 앉거나, 베낭에 기대앉아서 피로를 풀며 이야기 하고 있었고 ,행군하는 도중에도 피곤하면 길가에서 베낭을 베고 눈을 감고 쉬고 있었다.

더러는 베낭 뒤에 사진을 부착하고 걷는 군인들이 여러 명 눈에 띄었는데, 베낭에 사진 3장을 붙이고 걷는 군인에게 다가 가서 내가 말을 걸었다. 사진은 Afghanistan 에서 전사한 동료라고 했다. 그리고 내년 1월이면 자신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 가야 한다고 했다. 전사한 동료의 사진을 베낭에
업고 가야 하는, 그 군인의 무거운 마음이 안쓰러워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부대 안 산악지대를 행군하는 것이라 구경하려 나와서 응원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2 마일 마다 물과 Gatorade 는 충분했고 오렌지나 바나나 또한 충분했다. 어느 Water station을 지날 때 내 머리 위에 꽂인, 미국과 한국 국기를 보고서, “와~아 멋지다”하고 속삭이듯 감탄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빛이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내 옆으로 오면서 “같이 갑시다.”  혹은 “힘들지 않아요?"  혹은 “괞찮아요?” 하면서 말을 걸어 오는, 그들은 한국을 좋게 바라보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내 등에 쓰인 “I Love My two country”를 보고 내 옆을 지나가는 어느 군인은, 자기 역시 나의 두 조국을 사랑한다. 매우 사랑한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지나갔다.

우리가 19마일 지점에 왔을 때 한 팀에 문제가 생긴 것을 보았다. 자신의 베낭을 지고 갈 수 없는 
한 사람을 위해서 두 팀이 합쳐서 동료의 베낭을ㅡ 동료들이 돌려 가면서 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한 사람이 70~80파운드를 얼마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 ,결국 그 사람은 혼자서도 걸을 수 없어 마지막 2 마일을 을 남겨두었을 때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우리 앞에서 완주를 했다.

사막의 산을 오르고 돌고 내리면서 9시간 17분으로 26.2 마일을 완주했는데 남편은 약간의

탈수증을 느껴 나보다 힘들어 했다. 햇볕에 달구어진 아스팔트 길이 아니라서 였을까, 나는  걱정했던 왼쪽발의 통증도, 궁둥이의 통증도 참을 만했다.

Bataan Death March Marathon,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 행군이었다.

2013년 3 월 17일 죽음의 행군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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