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老年), 인간답게살다 인간답게 떠날수 있어야

새해 벽두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인기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31·본명 박정수)의 아버지와 조부모가 동반 자살한 뉴스가 있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그 배경에는 오랜 기간 가족을 괴롭혀온 치매와 사업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이로 인한 우울증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이 사건이 일어난 날이 이특의 아버지 박모(57)씨가 치매를 앓는 부모를 요양병원에 모시기로 한 날 하루 전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찰은 "이들이 아들인 박씨가 양친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남긴 유서에는 '부모님은 내가 모시고 간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유명 스타 아들이자 손자인 이특의 사진으로 집안 벽을 도배해 놓다시피 할 정도로 자랑스러워 했던 가족이었지만, 이들을 짓누른 현실의 무게는 너무 컸던 것 같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조사에 따르면 이특의 아버지 박씨는 1998년 부인과 이혼한 뒤 홀로 노(老)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평소 부모를 극진히 모셨지만, 수년 전부터 시작된 부모의 치매 수발로 주변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은 "할아버지가 외출 후 집을 못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할머니는 항상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렸다"고 말했다. 박씨의 어머니 천씨는 작년 폐암 말기(末期) 판정까지 받았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그 동안 매년 100세 노인은 20~300명씩 는다고 한다. 99~95세 인구가 각 연령마다 연간 1000여명씩 늘어나고, 94~90세는 각 연령마다 연간 4000명씩 느는 추세여서 앞으로 100세 인구의 증가 속도는 갈수록 빨라질 전망이다. 그리고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그 중 치매 환자가 전체의 33.9%나 된다고 한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게 됐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늘어나는 게 문제다. 수명은 쑥쑥 늘고 있으나 노인들의 삶의 질(質)은 갈수록 저하(低下)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조선일보가 연재 보도한 '한국인의 마지막 10년'에는 가난·고독·병마에 시달리는 한국 노인들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있듯이 한국의 노인들에게 수명이 는다는 것은 비참한 노년(老年)이 길어진다는 뜻일 따름이다. 한국 노인들은 이 기간 동안 아픔과 외로움과 가족들의 부담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自尊感)을 상실하고 죽음을 맞는다. 가족들 역시 치료비 부담에 짓눌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틋한 정리(情理)를 아름답게 마무리할 생각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지고 만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노인 복지의 틀을 '아프게 된 다음 진료비를 대주는' 치료(治療) 중심에서 '건강을 잃지 않게 해주는' 예방(豫防) 중심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복지관은 전국에 수백 곳이 있지만 이용자는 노인 열 명 중 한 명꼴(이용률 8.8%)도 안 된다고 한다. 교통 편한 곳에 노인 복지관을 늘려 노인들이 탁구·요가 같은 운동을 하며 남과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고, 지자체들은 으리으리한 체육관이나 경기장 짓는 데만 골몰하지 말고 동네마다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산책로 나 배드민턴장 등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부의 건강 증진 사업 예산을 대폭 늘려 아기나 어린이에게 예방접종 맞혀주듯 노인층에 생애 주기별 건강 진단과 건강 상담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박상철 가천의대 원장은 "의료 환경과 영양 상태가 좋아져 90세 이상이 급증하고있다" 며 "심혈관 질환과 당뇨·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하고, 노인들이 외로움에서벗어나도록 정서적인 안정을 주는 분위기를 만들면 건강한 100세 시대를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는 장수(長壽)의 개념을 물리적 수명만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존엄성을 갖고 살다가 인간답게 삶을 완결(完結)지을 수 있는 노년을 말하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런 노년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노인 복지를 타일 붙이기 식으로 그때그때 늘려가서는 안 된다. 건강한 노년을 위해 정부 재정은 물론 건강보험 운영, 공공의료 시스템, 기업 정년 제도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 국가적 연구가 필요하다들 하지만, 글쎄… 이게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니 그냥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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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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