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9 03:10

김학천 조회 수:549 추천:171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볼일이 있어 ‘팜 데저트’에 다녀왔다.
저녁 어스름할 때 도착하여 마침 그 곳에 개업한 후배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도 출타 계획이 없는 차라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부인과 함께 마중을 와서 우리를 태우고 새로 옮긴 치과사무실도 구경시켜주고 이곳 저곳으로 드라이브하였다.
차안 네비게이터에서 나오는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여성의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가 이 잔잔하고 조용한 도시의 분위기를 즐기는데 방해가 되는 듯 했으나 후배 말이 이 목소리마저 없으면 정말 삭막하다고 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 곳으로 이사온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가 짐작이 갔다. 둘만이서 오로지 서로 의지하며 고독을 이기고 사랑으로 어려움을 넘기면서 이제 둘째아이도 하나 더 생기고 열심히 살아간단다.
가깝게 붙어 있는 도시들을 지나던 중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고향인 랜초 미라지 시(市)에는 길에 들어서자 가로등 불빛이 전혀 없어 깜깜한 것을 의아해 하는 내게 후배는 그곳의 주민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자 가로등이 금지됐다고 말해 주었다.
하늘의 별이란 말을 듣자 갑자기 오랫동안 잃어버린 마음을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금은 네비게이터를 이용하지만 옛날에는 별을 보고 가는 길의 지도를 읽었다.
어디 그것 뿐인가.
별은 시인들에게는 삶을 표현하는 벗으로, 철학자들에게는 인생을 밝혀주는 스승이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선 천문을, 점성학에선 미래를 읽는 우리 생활의 다기능 네비게이터였던 것이다.
이토록 인간과 밀접한 그 별들이 아직 젊었던 아주 먼 과거에 자신들의 빛을 보내고는 우리의 입맞춤을 그리워 애타했지만 이미 그 별들은 기다리다 지쳐 아픈 마음을 쥐고 사라져 간다. 그리곤 수천 수억 광년 전 그 옛날에 보내온 윙크의 빛을 우리는 오늘에야 본다. 메아리 없는 그리움에 얼마나 가슴져렸을까.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가 생각났다.
산 위에서 홀로 양을 지키는 양치기 소년이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주인집의 아름다운 딸이 어느 날 그를 찾아왔다가 폭우 때문에 집으로 가지 못하고 남게 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성 자크의 길’이라 부르는 은하수며, 목동들에게 시계노릇을 해주는 ‘오리온 별’이며 그리고 별들의 횃불인 ‘쟝 드 밀랑 별’ 이야기들을...
그리고 프로방스의 피에르를 쫓아가서 칠 년만에 한번씩 결혼을 한다는 마글론이 목동의 별인데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사연까지.
밤이 깊어 피곤한 아가씨는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든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밤을 꼬빡 새운 소년은, ‘그래도 내 마음은 오직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게 해주는 맑은 밤하늘의 보호를 받아 성스럽고 순결한 생각을 잃지 않았습니다.’고 독백한다.
그러면서 소년은 ‘저 숱한 별들 가운데 가장 연약하고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내게 내려앉아 곱게 잠들어 있는 것이야.’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이 평생이었으면 하였을 것이다.
밤하늘의 별들 중엔 갖가지 색깔의 별들이 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등. 그 중 어두운 부분은 까만색 별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단다. 그것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빛을 내고 밝은 색의 별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그리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는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든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이 밝고 더 아름다운 색깔의 별이 되어 이 사막의 도시를 비추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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