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2012.09.26 06:31

김학천 조회 수:439 추천:73

  수소(H) 분자 두개와 산소(O) 분자 한 개가 만나면 물(H₂O)이 된다. 수소도 폭발성이 있고 산소도 산화력이 있으니 둘이 만나면 두 배로 위험할 것 같지만 반대로 안전한 물로 변한다. 그러면 일산화탄소(CO) 한 분자와 철(Fe) 두 분자가 만나면? 커피(Coffee)이다. 일산화탄소는 우리 몸에 해롭지만 철분은 필요한 성분으로 이 둘이 만나서 유혹의 검은 음료 커피가 된다.
   앞의 것은 화학적으로 맞는 얘기이고 뒤엣 것은 난센스 퀴즈이니 혼동 없으시길. 허지만 반드시 우스개 소리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체에 대한 득실의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는 커피에 아주 잘 어울리는 말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스타벅스 커피. 그 로고 속에서 묘한 발견을 했다.
   로고에 있는 여인은 ‘사이렌’이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님프인데 아름다운 노래로 그곳 해로를 지나는 선원들의 영혼을 유혹하여 생명을 앗아가는 마녀이다. 오디세이가 귀향 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을 때 선원들의 귀를 납으로 막고 자신은 기둥에 밧줄로 몸을 꽁꽁 묶었다. 마녀의 노래에 미쳐서 배를 정지하라고 아무리 소리쳤지만 귀를 막은 선원들이 그것을 듣지 못하는 덕분에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갔다.
   스타벅은 백경(모비딕)이라는 고래잡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다. 집착에 매달리는 선장과는 달리 이성적인 행위를 주장하는 일등항해사다. 이성을 마비시키려는 유혹자 사이렌과 반대로 이성을 지키려는 스타벅의 두 상반된 인물이 이 커피회사의 상징인 것이 과연 우연인지 아닌 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절묘한 조화일 수도 있겠다. 물과 같이 안정성을 가질 수도, 아니면 커피처럼 양면성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 외교가 탈레랑은 ‘커피의 본능은 유혹이다.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호메트에게 주었다는 이 검은 음료는 반 박카스적이다. 술의 신 박카스가 인류에게 와인을 선물했는데 이것이 헬레니즘 문화와 크리스챤 문화 속에서 전성기를 맞다가 이슬람 문화 속에서 배척 당하고 커피와 대립하게 된다. 그것은 와인이 인생과 문학, 예술을 논하는 근간이 되는 반면 해이한 정신과 방탕한 생활을 초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와인은 긴장을 완화시키고 잠을 재워주지만 커피는 정신을 깨워주고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힘 때문에 아라비아 문화의 중심에 서서 나아가다가 유럽으로 건너가 발전되면서 이슬람에서 탄생한 문화가 크리스챤 문화권에서 꽃을 피우게 된 격이 된 것이다.
   허지만 서로 대립하는 두 문화권의 이 두 라이벌 음료가 성격이 아주 다른 것만은 아니고 닮은 점도 있다. 포도 종류에 따라 와인의 맛이 달라지듯 커피도 품종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이나 장소 그리고 분위기나 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쿠치 마모루는 그의 책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카페라테를 마시고 점심 후에는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밤에는 카페모카나 마키아토로 하루를 마감한다. 새하얀 눈 내리는 겨울엔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리시 커피를, 땀이 송골송골 맺는 여름엔 아이스커피로 향기롭고 시원하게 보낸다.’ 라고 했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와인이나 커피를 즐기는 것을 우리들 삶의 조그마한 순간 순간들을 기리는 작은 축제라 한들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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