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나무

2014.08.11 14:43

김학천 조회 수:258 추천:29

   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일행 중 한분 동생이 사는 펠란을 다녀왔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농가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궁궐같이 잘 지어진 집과 그 주위에 넓은 매실나무 농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졌다.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인근 산 속에 매물로 나와 있다는 통나무집 얘기가 나와 들렀다. 산기슭 언덕 끝자락에 지어놓은 이층 큰 통나무집과 바로 아래쪽에 따로 마련된 작은 집도 한 울타리였다. 기슭을 따라 이리 저리 둘러보고 나오려던 차에 그만 무언가에 찔렸는지 정강이에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바지자락을 올려보니 예리한 도구에 찔린 듯 상처가 나있고 피가 양말에까지 물들어있었다. 곁에 있던 한분이‘조슈아 나무’라고 가르쳐 주었다.
  19세기 중반에 신앙순례자들이 모하비 사막을 횡단하던 중 발견했다는 데 나무 가지들의 모습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기도하는 형상으로 마치 그들에게 약속한 땅을 가리키는 여호수아의 팔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상처를 응급처치하려고 약국을 찾는데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않아 애 좀 먹었다. 옛날 선조들은 밤엔 별을 따라 낮엔 나무의 모습 따라 길을 찾았다는 데 과학이 발달했다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 정도라는 생각에 그들의 지혜가 새삼 슬기롭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별이나 나무가 안내한 것이 어디 길 뿐이랴. 그들이 인간에게 삶과 꿈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문득 엘레나 파스퀄리의‘세 나무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먼 옛날 산마루에 아기나무 세 그루가 각자의 꿈을 갖고 있었다. 아름다운 보석상자가 되기를 원했던 올리브 나무, 왕이 타는 멋있는 배가 되고 싶었던 떡갈나무, 산마루를 떠나지 않고 남아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기를 원했던 소나무였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아기나무들이 커다란 나무가 되었던 어느 날 나무꾼 세 사람이 산으로 올라와 하나씩 베어갔다.
  첫 번째 올리브나무는 가축들의 여물을 담는 초라한 구유가 되었고, 두 번째 떡갈나무는 조그만 고깃배가 되었다. 마지막 소나무는 막대 기둥으로 잘려 뒤뜰에 그냥 쌓인 채 모두 어릴 적 꿈들을 다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첫 번째 나무로 된 구유는 마구간에 있었는데 한 젊은 여인이 와서 아기를 눕혔다. 그러자 찬란한 별빛이 구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사람들이 보물을 가지고와 예물로 드렸다. 둘째나무로 만들어진 고깃배는 사람들을 싣고 바다로 나갔다가 큰 폭풍을 만났는데 배안에서 자고 있던 한 남자의 잠잠하라는 한마디에 폭풍은 이내 조용해졌다.
  둘째나무는‘내가 천지의 왕을 모시고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목재소 뒤뜰에 팽개쳐 있던 셋째나무는 금요일 아침 한 남자의 어깨에 걸쳐진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사들이 그 남자의 손발을 묶고 몸에다 못을 박았다. 그런 일이 있은 사흘 뒤 세상은 새롭게 변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은 셋째나무를 생각할 때마다 위대한 창조주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고 보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값지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할 수 있듯이 우리도 마음에 무엇을 품고 꿈꾸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질 게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온 넓은 앞마당에 불피우고 모여 이야기의 꽃을 피우는데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나와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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