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삶이다./ 수필

2014.07.13 09:40

박영숙영 조회 수:296 추천:79

이것이 삶이다.

      
                          박영숙영

    
마라톤을 하는 날의 마라톤 완주는 힘든 것이 아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마라톤보다 , 더 힘든 것은 달리기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발자국마다 그것은,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고,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아도 세워놓은 목표를 향하여, 더워도 달려야 하고, 추워도 달려야 한다. 달리기 싫은 날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야 하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왼쪽 궁둥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4~5년은 되는가 보다.
재활치료를 2(두)번 받았고, MRI도 찍어보고 의사의 처방을 받아 운동을 하지 않고 몇 개월을 쉬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운동을 안 하는 동안, 근육이 풀어져서 죽은 생선 배처럼 물컹거릴 것 같아 초조하기도 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다음날은 통증이 가중되어, Orthopedic 전문의사를 찾아가 보라고 나의 주치의사가 권했지만 , 전문의사를 만나면 수술하라고 권할까 겁이 나서, 주치의사가 처방해준 바르는 약(Voltaren gel)으로, 고통과 친구하며 계속 달리기를 하고 있다. 고통이 아무리 참기 힘들다고 해서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고, 달리기를 할때 조금의 고통이 있어도 달리기를 멈출 수 없는 것은, 달리기가 나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Little-Rock에 도착해서 방을 정하고 2블락쯤 떨어진 Convention center에 갔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며 느끼는 감격과 기쁨과 흥분이, 그리고 꼭 금메달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의 그 복합적인 심정이, 아마도 지금의 내가 번호표를 받아 든 심정과 같지 않을까.
  
완주를 하고 메달을 받는 그 순간보다도, 번호표를 받아 든 그 순간의 기쁨과 흥분이 자꾸만 나를 달리게끔 만든다. 마치, 생명을 출산시키는 어머니가 출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생명을 탄생시키듯이 말이다.  
8시간 이내 완주하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 6시 출발선에 섰다. 기온은 54도라고 했지만 일기예보에는 오후가 되면 비가 올 것이고 날씨도 추울 것이라고 했다. 5마일쯤에서 이슬비가 간간히 뿌릴 때 준비해 간 비닐봉투 하나를 입었고, 8마일 지점쯤에서는 보슬비가 내리며 바람도 심하게 불기 시작하여 기온이 점차 내려가는 것을 느껴서, 또 하나의 비닐봉투를 껴입었다.      
10마일쯤을 지나서는 날씨가 너무 추워 길거리에서 구경하는 사람도, 응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라톤 도중 주최 측에서는 마라톤이 closed 되었다고 했는데, 또 어떤 사람은 마라톤이 canceled 되었다고도 했지만, 앞을 내다볼 수 없도록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나는 발 아래만 내려다보고 걸어서, 그 싸인을 보지 못했다. 옆에서 걷는 남편의 다리는 돌에다 박박 문지른 것같이 실핏줄이 터진 듯 붉었고, 남편과 잡은 손은 얼어서 굳어버린 듯 풀리지 않았다.
        
냄비에 물이 졸아들어 냄비가 타 들어가는 듯, 내 온 몸의 차가운 피는, 더운 피를 공급 받기 위해 덜덜덜 소리를 내면서 심장은 졸아드는 것 같았다. 쪼그라들고, 오그라들다 더 이상 졸아들 수 없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마시며, 쪼그라든 심장을 바로 펴면서 걸으려 했지만, 발이 땅에 붙어 뭉그적거리고 있었다.  
19마일 지점에서 봉사자가 비닐봉투를 나누어 주면서 하는 말이, 여기서 멈춘다면, 조금 후 버스가 와서 실어갈 것이라고 했다. 경찰차도 지나가면서 방송을 했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20마일 반을 지나왔을 때는, 앞으로 천둥과 폭우가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남편이 내게 멈추겠냐고 물었다. 고생이 된다고 삶을 포기할 수 없듯이, 고생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포기를 하다니, 나는 남편에게 계속 걷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들의 뒤에는 두 사람이 보일 뿐이고, 앞에는 폭우로 쏟아지는 비만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머리 위에서 팔딱거리던 두 국기는 일찌감치 빼 버렸지만, 모자를 썼다고 해도 머리에서 타고 흘러내린 빗물이 온몸을 흠뻑 적셨다. 나는 긴 바지를 입었지만, 이제 남편의 다리는 동상에라도 걸린 듯, 시퍼렇게 죽어있는 듯 했고, 내 몸 속의 신경도 얼어붙은 듯 발과 손은 감각이 없었다.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24마일 지점에 왔을 때 큰길로 나왔고, 앞으로 언덕을 2번이나 올라가야 하는데, 접착제로 내 발을 땅에 붙여 놓은 듯, 발이 길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도저히 왼쪽 무릎을 구부릴 수 없어서, 나는 내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면서 쇳덩이를 끌고 가듯 뭉그적거리며 뒤뚱이고 있는데, 간혹 차를 몰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멈추어 서며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기온이 얼마나 내려갔을까, 얼음 같은 폭우가 내리다 못해, 이제는 돌팔매를 맞는 듯, 콩알보다 큰 우박이 쏟아지며, 천둥과 번개까지 쳤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는 차도 지나가지 않고, 핸드폰도 없으니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 길의 종점에 도착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내 삶의 목표인데, 뒤로도 물러 설 수도 없으니, 힘들어도, 천둥 번개 치는 두려움을 뚫고서, 고통을 가로질러 목적지까지 가지 않는다면, 나는 이 길 위에서 삶의 낙오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완주시간 8시간 19분, 완주 선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남아서 박스에 넣었던 메달을 꺼내었다.  
내가 메달을 받기 위해 머리를 숙이는 순간, 몸이 약간 휘청함을 느꼈다. 그때 남편이 내 손을 잽싸게 낚아채어 내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을 것이다.
  
남편이 먼저 샤워를 하는 동안, 나는 앉지도 서지도 못해서, 침대에 팔꿈치를 세우고 엉거주춤 엎드려 있었는데, 남편이 샤워를 하고 나와서도 한기가 든다며 덜덜 떨면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이중으로 덮어주고, 나는 탕 속으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두 번이나 바꾸어 가며 오랫동안 탕 속에 앉아 있다가 나온 후, 어제 저녁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 보려고 했지만, 한입 목으로도 넘어가기 전에, 토할 것 같아서 먹지 못하고 침대로 들어갔다.
      
남편은 마라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으러  방을 나가면서, 나에게 이불을 이중으로 덮어주며 한숨 자라고 했다. 나는 심한 한기를 느끼면서도, 온몸은 땀을 비오듯 흘려서 누운 자리가 축축하였는데도,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오고 있음을 어슴푸레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피를 펌프질해서 내 몸을 데우기에는, 내 심장이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두 번째 마라톤에서 기절하고, 그리고 스스로 깨어나서 완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피를 쏟고 2박3일을 병원에 입원할 당시의 몸 상태를 느꼈는데, 허리 아래를 잘라 낸 듯, 발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남편얼굴도 못 보고 죽을 것 같아, 눈동자도 움직일 수 없는 혼몽한 상태에서 눈을 뜨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기온 54도에서 시작한 마라톤이 27도로 내려가서, 지금 얼어붙은 길 위에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밑도 없는 깊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듯 나는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2014년 3월 2 일 ㅡ Arkansas Little Rock Full marathon 완주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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