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백목련 한 그루를 심어놓고

2007.01.31 13:01

박봉진 조회 수:704 추천: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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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한 그루를 심었다. 꽃말이 연모(戀慕)라고 하니 마냥 그리움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목련은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는 이른 봄, 잎보다 먼저 우아한 옥 색깔의 꽃을 피운다. 난초꽃 향내를 낸다. 그래서 옥란(玉蘭)이라고도 한다. 또한 꽃봉오리가 붓끝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이라고도 한다.

백목련은 언제나 내 마음자리를 떠나지 않는 첫사랑이다. 고교 시절, 화창한 어느 봄날이었다. 그 때 유명 시인이셨던 M선생님은 전교 문화행사의 서막인 백일장 시제를 발표했다. ‘사월’이라했다. 학생 천이백 여명은 모래바닥을 스미는 봇물처럼 모두들 시상을 떠 올리기 편한 장소를 찾아 뿔뿔이 사라져갔다.

그날의 내 장원 시를 지금 다 기억할 순 없다. 등굣길에 만나곤 했던 하얀 세일러복 여학생을 목련에 비유한 한 구절은 써너었다. ‘사월의 잔디밭’ 제목이었다. 그 때 돌담 너머로 솜 구름 한 움큼씩을 봉긋봉긋 던져 올렸듯이 백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 꽃가지 아래서 단물 오른 송기가지처럼 싱그럽고 갸름했던 안면의 눈길들을 마주치곤 했다. 그러나 누구도 첫 말 꺼내기가 힘들어 마음 들킨 두 볼만을 붉혔다.

백목련 같은 연인을 그렸다. 그런 인연은 사십 여년이 걸린 한 종족의 엑소도스처럼 그리도 멀고 긴 세월을 맴돌게 했는지 모르겠다. 예견했던 것일까? 사회의 초년생 딱지를 겨우 떼었던 시절이었다. 지인의 묘목 장에서 불문곡직하고 백목련 한 그루를 파왔다. 주지는 아직 덜 자란 것이었지만 소녀 가슴의 옷깃을 살짝 부풀린 듯 했던 꽃망울이 눈길을 잡았다. 고향집 양지바른 화단에 심어놓고 들고 날 때마다 보고자했던 그 백목련! 이국의 나그네 되어 한 세대를 훨씬 넘긴 이 봄에도 그 옛날처럼 꽃을 피우고 있을까.

백목련은 온화한 표정에 목이 약간 긴 한 여인처럼 우아하다. 그리고 같은 방향을 향해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런 화심이었기에 사람들은 사려 깊은 정서와 역사 앞에 숙연해졌을 게다. “새벽종이 울리네. 새 아침이 밝았네.” 그 때 ‘보리 고개’를 넘기려는 결연한 의지는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졌다. “한 송이 흰 목련이 봄바람에 지듯이/ 아내만 혼자 가고/ 나만 남았으니...” 결국 그 작시자도 그렇게 떠나갔다. 해마다 그 집 뜰의 백목련은 피었다 지곤 하고 있을게다. 그러나 들고 난 그 푸른 기와집 주인들 마다 매서운 꽃샘바람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낸 백목련의 안목(眼目)과 헌심(獻心)을 이어갔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목련이라고 해서 모두 같지는 않다. 우리가 좋아하는 백목련은 중국이 원산지다. 한국의 토양에 식재되어온 귀화종이다. 키는 그다지 크지 않고 낙엽을 지우지만 단아한 교목과(喬木科)에 속한다. 잎은 달걀모양으로 가름하고 꽃은 유백색으로 우아하다. 자목련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자생했던 품종이라고 한다. 또 일본이 원산지인 자목련도 따로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목련(Magnolia)은 흰 꽃을 피우긴 해도 고온 건조한 기후에 적응되어 온 별종 목련이다. 이름만 같을 뿐, 한국의 백목련과는 전혀 같지 않다.

백목련은 시종 어떤 인연으로 나와 조우한 걸까. 오십 견을 앓아 잠시 일손을 놓았던 적이 있었다. 가을 햇볕에 탄 내 모습이 너무 낯설었다. 그 때 저만치 앞서 가는 첫 사랑의 뒷모습이 보였다. 원고지가 없어 흔한 종이에 수필 몇 편을 육필로 썼다. 그것은 내 심중에 잠재해 있은 백목련의 환생이었던 것 같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하지 않던가. 마음 문을 열고 심기일심(心氣一心) 바라보고 있노라면 해묵은 가지에도 새싹이 돋고 꽃이 피지 않을까.

백목련은 내 구원의 여인상이며 잊고 있은 글과의 해후이자 살아볼만한 가치의 근원이다. ‘마뇽레스꼬’는 그것을 위해 고국 프랑스에서 대서양을 건너지 않았던가. 신천지에서 썼던 그녀의 사랑 서사시에 탐닉한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화원과 정원수 농장을 두루 돌며 찾아보았다. 그러나 일본산 자목련은 많았지만 내가 찾는 백목련은 있지 않았다. 묘목이나 씨앗 반입을 엄격히 막고 있는 나라이기에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로 이사한 집엔 둥치와 키가 큰 캘리포니아 목련(Magnolia)이 세 그루나 있었다. 가로수를 겸해 심긴 것이다. 고온 건조한 땅에 뿌리를 내렸기에 상록수종으로 변종된 것 같다. 문득 내 수필문학도 그것들과 아우르면 제대로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절제 없이 웃자란 키에 둥치는 몸 관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지 한 아름이나 된다. 잎사귀는 일꾼의 투박한 손바닥만큼 억세다. 그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이라니. 흰 꽃을 성글게 매달았으면 활짝 피워 보일 일이지. 잎사귀 사이에 숨어 피었다가 솔방울보다 딱딱한 열매를 잔디밭에 어질어놓는다. 미안한 기색은커녕 사철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은 또 뭐람.

궁성거리다 말고 한 순간 갈퀴를 들었던 손에 맥이 풀렸다. 아, 더러는 깊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써내고 있는 오늘날의 글들이 그러하다. 특히 내가 쓴 수필이 그 같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한 편의 글을 써도 오래된 장맛처럼 은은한 맛이 베어나는 글을 써보고 싶다. 갈 길은 멀고 걸음은 서툰데 열정만 넘치는 글이면 마음에 두지 않으련다. 혹, 백목련 같이 깊은 속내를 풀어낼 수 있는 글이면 좋으련만. 하다못해 설익음을 면한 과일이거나 아집을 걸러낸 단풍잎 때깔의 수필이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백목련은 자목련과는 다른 면이 있다. 수종(樹種)이 다르므로 취향도 다를 수밖에. 거의 모든 자목련은 꽃을 피우면 꽃술을 드러내며 꽃잎을 제 한도 이상으로 펴 보이려 한다. 하지만 백목련은 수필의 진수를 머금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만개해도 꽃술을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 꽃잎을 제 한도대로 다 펴려고도 하지는 않는다. 언제쯤 백목련은 내 미완의 정념을 꽃 대궁 안으로 맞아주고 온 몸에 꽃분이 묻어나게 해줄까.

제대로 된 수필 한 편을 위해서는 백목련의 깊은 속내부터 알아차려야하리. 어쩌면 그것은 다시없을 연인의 첫발 내딛기일 것만 같다. 백목련 한 그루를 심저에 심어놓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묵시일 듯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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