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우애의 샘

2007.01.31 13:07

박봉진 조회 수:496 추천: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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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가 주룩주룩 창문가로 흘러내리면서 메말랐던 내 마음을 젖게 한다. 비가 귀한 사막성 땅이지만 이 한 철은 비가 잦다. 바깥일을 할 수 없는 이런 날은 이층에 있는 작은 서제가 안온한 공간이 되어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따끈한 설록차 한 잔을 들고 서제 문을 열었다. 매번 들어설 때 마다 그랬던 것처럼 맞은 편 서가 위에 걸려있는 휘호 한 점이 오늘도 지긋한 실눈 질을 하게하며 시공을 건너뛰는 추억 여행길에 들게 한다.

그것은 몇 년 전 내가 한국에 갔을 때 자형이 정표라 하면서 한지 두루마리에 일필휘지로 써 준 것을 가져와 표구한 것이다. ‘회중고원정(懷中故園情)’ 평서체로 써 나간 굵직한 글귀에 이어 작은 글씨로 연월과 아호 그리고 낙관도 선명히 찍혀있다. 비록 내색에는 둔하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내 어찌 써서 주신 분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겠는가? 몸은 이국땅에 살고 있을지라도 고향에서의 정분은 잊지 말라는 어의였으리라.

그 땅을 떠나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건너온 대양만큼이나 세월의 양안은 아득하다. 그러나 어릴 때 뛰놀던 고향 언덕과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묶인 일상 때문에 묵정밭이 되어버린 내 마음에 찡한 물기를 돌게 한다. 이런 시간엔 마냥 이대로 있고 싶지만, 이국땅에서 바삐 살아온 습성은 곧 시선을 다음의 작은 글씨에 옮겨놓는다.

거기에는 자형의 아호 죽천(竹泉)이 내게 궁금증을 일게 한다. 얼핏 낯 설은 것 같으면서도 어디에선가 상당히 익숙한 것 같기도 하다. 혹시 그의 유년의 마을에 대나무와 연(緣)이 있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대나무 같이 반듯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옛 선비들이 즐겼던 사군자(四君子) 중에 상록수종인 대나무의 기질을 닮아보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이름은 탄생의 의미로 지어진다지만, 아호는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지연이나 인연 그리고 인품이 보태진 결집의 상징이어야 하기에. 자형의 아호도 어떤 분에 의해 그저 몸에 잘 어울리는 옷처럼 자연스럽게 부쳐졌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그 아호에 얽힌 사연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데 대나무(竹) 다음자가 하필이면 샘(泉)일까? 내 상상의 날개가 자꾸 거기서 주저앉으려고 하는 찰나, 번쩍 뇌리를 스치는 한 영상이 있었다. 자형의 처가인 옛 우리 집이 대밭 밑이었다는 것이다.

육이오 전쟁이 난 그해 우리 가족은 소개(疏開)명령을 받고 거제도로 피란을 갔었다. 돌아와 보니 집들은 아군에 의해 미리 불 질려졌다고 했다. 큰 독에 넣어 땅속에 묻어두었던 귀중품들은 인근 마을에 남아있던 누군가에 의해 파헤쳐지고 깡그리 없어졌다. 그 폐허 위에 우리보다 먼저 자형이 와있었다. 그렇게 재회한 우리는 정글속의 미개인처럼 청솔가지로 얼기설기 위를 덮은 움막에서 잤다. 덜 영근 벼를 베어다가 끼니를 때우는 한집 식구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향리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그곳이 수 주간 적치 하에 들어갔을 때 총칼을 거머쥔 그네들의 지시를 거역할 수가 없었단다. 다시 아군이 들어오게 되자 그 동네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은 피할 길 없는 부역자 취급을 당하게 되고 말았다고 했다. 부득이 피신해야하는 신세가 되자, 몇 날을 굶주린 채 부서진 탱크와 대포와 시신이 즐비하게 널브러져있는 격전지를 가로질렀다. 낮에는 산속에서 쉬고 밤을 쫓아 그 먼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생명이 경각에 걸렸던 위기도 몇 차례 넘겼다고 했다.

자형은 그 때 전장(戰場)에서 살아남는 비법을 체득한 사람처럼 틈틈이 집 뒤편의 대밭 언덕 밑에 우리 가족들이 대피할 방공호를 팠다. 그 처참했던 전장(戰場)은 우리에게서 상당히 멀리 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밀려올지 몰라 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곡괭이와 삽과 지렛대만으로 그 단단한 황토 땅을 파 들어가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부어터지는 것을 예사로 쳤다. “대밭 밑은 촘촘한 대나무 뿌리가 땅을 얽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포탄쯤은 끄떡없거든.” 자형이 들려주던 그 말이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입구 쪽은 얕은 수직이었다가 그 안쪽부터는 수평으로 이어진 작은 터널모양의 그 방공호는 그해 겨울을 지낼 무렵에야 완성되었다.

전쟁 중에도 계절은 바뀌어 이듬해 봄도 지나가고, 다시 여름이 되었을 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비가 갠 어느 날, 가족들의 대피소 역할을 해줄 줄 알았던 그 방공호는 얼음골보다 찬 샘물을 솟아내고 있었다. 봄과 여름동안 쏟은 빗물을 대밭이 집수장 마냥 땅 밑으로 스미게 해서 지하 수맥을 이뤘다가 그것이 터져 나오기 쉬운 지반을 만났던 것이다. 그 방공호는 한 번도 우리 가족들의 대피소로 쓰이지는 않았지만 해마다 무더운 여름과 가을이 지날 동안은 식구들과 이웃들 식수를 대주는 참 샘이 되어주었다.

이제는 자형도 작고하고 이 세상에 안 계신다. 헌칠한 키와 호인형의 안면에 걸맞게 속이 깊고 인정이 유달라 가족들의 구심이었던 분이셨다. 인걸은 간데없어도 산천은 그대로인 것이 예부터 세월이 남기는 표징이련만, 지금은 개발바람 때문에 수년 사이에 산천의 지형마저도 변하게 한다. 자형이 홍안 신랑으로 장가들었을 때, 달빛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가 신혼방의 창호지문에 아른거리게 했던 그 대밭. 누님과 따로 떨어져 있어야했던 그 어려웠던 처가살이 때, 바람결에 대나무 가지들의 서걱거림으로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게 했을 그 대밭. 지금은 옛 모습을 흔적조차 찾아볼 길 없다. 자형이 팠던 그 방공호 샘도 먼 훗날의 고고학 실습지로 남긴 듯 토사 퇴적층 아래 매몰되어버렸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야 맑은 물과, 탁류로 흐르는 빗물도 땅속으로 차분히 스미게 한다. 수맥을 따라 샘을 쏟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표면은 날로 경화증상이 더해가는 이기적인 사람들을 닮아서 그럴까? 도심의 구축물과 포장도로와 인조 자연들은 모두 잘 설계된 지상 개울과 지하 하수관으로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웬만한 비만 와도 곳곳의 도로가 금세 침수되고 만다. 교통 혼잡에다 정전사태까지 불러오는 난리가 난다. 그러다가 윗날만 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낯가림을 하기 일쑤다.

샘을 보기 어려운 곳에 살고 있다. 가슴에 샘을 묻고 사는 사람들을 이따금씩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설록차는 식어있어도 한 모금의 차 맛은 자형의 뒷모습처럼 여향이 남아있다. 그의 아호 죽천(竹泉)은 외관에 걸맞은 샘이기보다는, 긴 세월동안 그 빗물 같은 많은 사연들을 내심 깊숙이 스몄으리라. 그랬다가 한결같은 정으로 베어내었던 우애의 샘을 남기려 했나보다. 눈을 감는다. 내 귀를 여는 해후의 그 발자국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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