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를 뛰어넘는 통합의 징검다리

송기한

언어 속에 감추어진 의미를 발굴하고 이를 서정화하기 위한 작업이 유봉희 시의 요체이다. 시인은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간 것들, 다수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응시와 이를 통해 피어나기 시작한 서정의 장들을 자신이 만들어나가야 할 서정의 성채로 사유했던 것이다. 시인의 시들 속에 묘파된 대상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 일상의 영역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모두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시인의 그러한 방법적 특징들은 이번에 발표한 시작시에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시인이 포착해낸 대상들은, 만약 시인의 정서 속에 편입되지 못했다면, 그저 평범한 일상이나 사실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 속에 들어온 대상들은 새로운 서정의 옷을 입고 의미있는 존재의 변신을 하게 된다. 그 존재들은 발견의 미적 성취라 불러도 좋을만큼 독자에게 이미지를 새롭게 환기시키거나 아름다운 정서의 변용을 불러온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면 물은 폭포가 된다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목청이 터지고

노래의 날개로 지상을 덮는다

한 소절 노래는 목마른 뿌리에 닿아

푸르름을 올리고

한 소절 노래는 하늘로 올라

무지개를 피운다

시인들이 꿈꾸는 폭포

「시인의 꿈」전문

이 작품의 소재는 물인데, 이 평범한 물이 절벽을 만나면 폭포라는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이런 대상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현상이란 시인의 정서를 통해 여과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단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 물리적 전이과정을 단지 사실의 차원에서 한정하지 않고, 정서의 물결 속에 편입시켜 새로운 음역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떨어지는 폭포는 ‘목청’으로 의인화되고, ‘노래의 날개’로 사물화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다시 ‘푸른 하늘과 해’와 조우하면서 ‘무지개’로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시인은 ‘물’이라는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옷을 입혀 이렇게 여러 존재론적 다양성을 만들어간다. 이런 변화를 통해서 물은 이전의 물리적 특성과 관성을 잃어버리고, 보다 높은 차원의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변신은 일상을 꼼꼼히 관찰하는 세심한 정서의 깊이없이는 불가능한데, 시인은 대상을 향한 그러한 방법적 발견을 위해 스스로 이미지스트임을 자청하는 듯 보인다. 하기사 대상에 대한 참신한 발견과 인식의 새로움이란 이미지적 충격이나 환기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시인은 이미지가 주는 참신한 효과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이야말로 이번 신작시의 주제일 것이고, 또 시인이 지금껏 추구해왔던 꿈, 곧 유토피아적 자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용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시인이 말하고자 한 근본 의도는 바로 ‘꿈’, 곧 유토피아 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물의 비상’을 “시인들이 꿈꾸는 폭포”라고 했거니와 실상, 이런 상승의 이미지들이야말로 꿈의 세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라 하겠다. 시인은 자신이 탐색해야 할 목표가 ‘날개’라고도 했거니와 경우에 따라서는 ‘무지개’라고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갖는 공통의 정서가 유토피아와 분리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할 것이다.

실제로 시인이 이번 신작시에서 그려냈던 것은 모두 이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인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꿈을 간직하고 있다. 강렬히 낙하하는 폭포처럼, 시인의 의식을 자리하고 있는 것은 거침없이 나아가는, 그리하여 끝없이 비상하고자 하는 한 마리 새가 되고자 한다. 다음 시의 부엉이처럼 말이다.

 

마을 입구 큰 소나무 우듬지에

쌓이던 부엉이 울음

습습한 잠자리로 흘러든다

창밖은 달무리 촉촉히 깊은 밤

오늘밤 부엉이는 사각모와 뿔테안경 벗어놓고

달무리 할로햇(halo hat)*을 썼을 것이다

세 명의 목격자들**이 땅에 떨어진 할로햇에 놀랄 때

누군가 부엉이성운에 감추어 두었던 모자

소리 날개를 짜던 부엉이가 드디어

날개소리도 들리지 않게 부드러운 깃털을 펴서

이천육백 광년을 날아 그 모자 찾아 쓰고

역병에 시름 살 깊은 여기, 푸른 점으로 돌아온

달무리 서늘한 오늘 밤

울음도 걸러내고 어루만지면 노래가 되는 것이지

솔바람이 걸러내고 달빛이 어루만진 부엉이 노래

그 속에 창백한 별에게 보내는 새 처방전 있을 것인데

마음 귀 밝은이 어서 나와서

그 노랫말 풀어내어야 할터인데

*halo hat : 세 사람 증인과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성모 마리아

**막스에른스트 1940년대 독일 초현실주의 화가작품

「부엉이의 노래」 전문

꿈을 꾼다는 것은 그 반대의 대항 담론이 있어야 가능하다. 물론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불온이 있어야 그를 딛고 나아가는 힘 역시 강렬해지기 때문이다. 시인이 판단하는 지금 여기의 불온한 현실은 “역병에 시름 살 깊은” 공간이다. 그것은 ‘자아’의 것이면서 또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다가오는 압박은 사뭇 강력하다.

서정적 자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현재 깊은 시름 속에 잠겨 있다. 그 시름은 실존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고, 또 코로나 팬더믹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시인이란 정신을 다스리는 선지자이며, 치유의 행위자이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의 위기들은 시인의 예지와 정서의 예리한 통찰에 의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선지자에 대한 목마른 그리움을 표명한 육사가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러한 위기의 순간을 딛고자 하는 시인의 처방 역시 육사의 그것과 분리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한 예지를 위해서 시인이 지금 기대고 있는 것이 상승의 정서이다. 그 정점에서 치유의 손짓을 내밀고 있는 것은 ‘달무리 할로 햇’이다. 하지만 그러한 높이의 이미지에만 시인의 정서가 올곧이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면이야말로 이 작품의 미학적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는데, 시인은 이 이미지와 함께 새로운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법적 의장을 시도한다. “마을 입구 큰 소나무 우듬지”는 먼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역사나 전설이고, ‘부엉이의 울음’은 그 역사적 공간에 켜켜이 쌓인 것으로 묘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속성이 달빛이라는 수직성과 만난 자리, 그 합일점에서 꿈을 향한 「부엉이의 노래」가 만들어진다.

잘 알려진 것이지만, 현재가 위기의 순간으로 인식되는 것은 모두 근대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이를 만들어낸 중심이 인간이거니와 그 저변에 자리한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것은 인간 중심주의적인 사고를 만들어냈고, 그 이외의 것은 단지 인간을 위한 수단 내지 도구에 불과했다. 이런 분리주의적 사고, 혹은 이원주의적 사고야말로 근대가 저질러온 불온성의 핵심이며, 그 초월을 위해서는 이 이원적 사고에 대한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한 테제로 자리했다. 그것이 조화의 감각임은 잘 알려진 일인데, 실상 유봉희 시인의 이번 신작시에서 전략적 주제 가운데 하나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불편한 왼쪽 손을 무릎 위에 올리는데

중닭의 무게다

오븐에 놓고 찜통에 넣던 통닭 무게

(중략)

새삼스레 왼손을 쓸어본다

나비의 양 날개처럼 새의 두 날개처럼

양쪽 팔과 손이 함께 할 때

푸른 하늘이 열리는 걸 이제 알았다

닭은 날개 달린 공룡의 후손이라며?

중닭의 무게가 왼팔의 드레*가 되는 이 시간

우리란 말을 고요히 완성시키는

세상의 왼손들에게 고마움을

「왼손의 드레」 부분

무딘 감각이 어떤 사유의 중심에 자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가령, 평소와 다른 감각이 수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예전의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작품의 표현대로, 지금 시인의 ‘왼쪽 손’은 편한 상태가 아니다. 그 일탈은 평소의 감각과는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시인이 이질성을 느끼는 경우는 그 일상의 경로를 벗어나는 경우뿐이다. 그 불편부당한 상태가 지금인데, 시인은 이를 통해서 지금껏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인식성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조화의 감각에 대한 강렬한 희구이다. 일상의 진실에서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세계, 그리하여 지금과 다른 새로운 일상이 감각될 때, 시인의 정서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가령, 이 일깨움은 “양쪽 팔과 손이 함께 할 때/푸른 하늘이 열리는 걸 이제 알게” 해 주는 정서의 변화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평소에는 둘이되 결코 둘이 되지 못한다면, 조화란 불가능하다는 사유의 전환인 것이다.

시인이 이런 정서에 도달한 것은 인식에 대한 새로운 환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경우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 다가온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획득에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일상의 진실에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인간은 그러한 진실에 대해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아니 회피한 것이 아니라 이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이기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입과 코를 마스크로 가리고 딸애가

눈으로 웃고 있다

저만큼 혼자서 피어있다*

눈 속에 넣을 수 없게 다 자란 딸아이

저만큼 혼자서

그래도 저만큼 안에 이만큼이어서

꽃도 피고 새도 울고

딸도 나도 웃는다

저만큼에서 딸아이가

눈꺼풀을 손끝으로 들어올리고

온몸으로 수영하는 몸짓을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나보다

드디어 모국어 바다에서 헤엄치는 딸

저만큼에 바다가 이만큼에서

출렁출렁

역병이 물러가는 발걸음 소리

*소월의 「산유화」에서 가져옴.

「저만큼 안에 이만큼」 전문

 

작품을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용시는 소월의 「산유화」의 정서적 공감대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저만큼 혼자서 피어있다”가 그러한데, 소월은 이 작품을 통해서 근대적 인간이 필연적으로 처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말하고자 했다. ‘저만큼’이 지시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화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거리였던 것인데, 이 거리야말로 근대인의 비극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시인은 소월이 묘파했던 인간과 자연의 화해할 수 없는 이 절대적 거리를, 딸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 좁히고자 했다. 소월이 설정한 ‘저만큼’ 속에 ‘이만큼’이라는 징검다리를 만든 것이 그것인데, 이 다리를 통해서 절대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거리가 통섭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분리가 아니라 화해이기에 “꽃도 피고 새도 웃고/딸도 나도 웃을” 수 조화의 지대로 승화하는 것이다.

‘거리’는 ‘조화’와 상대적인 자리에 놓인다. 전자가 지배하는 곳에서 어떤 근대적 건강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인이 꿈꾸는, 아니 우리가 꿈꾸는 인식의 통일성, 곧 유토피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조화’라는 감각을 획득해야 한다. 시인은 이를 위해서 ‘저만큼’이 분리시킨 ‘너’와 ‘나’ 사이의 절대적 거리에, ‘이만큼’이라는 화해의 다리를 만들어놓았다. 그 다리는 시인의 꿈만 아니라 우리의 꿈도 실현시켜주는 다리임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다리를 통해서 “역병이 물러가는 발걸음 소리”를 듣게 된다. 세상을 향한 따듯한 음성이 조화의 맥락 속에서 아름답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먼 바다 그 끝 바다로

바람은 더 나가보라고 등을 밀지만

깊은 숨으로 뒤돌아보니

바다가 내 발걸음에 귀 기울여 준 자리

아득하다

 

해 기우는 모래 둔덕에 앉아

노을 풀어내는 바다를 마주하니

마음 깊은 동굴 벽에 음각된 소리들

어머니 벽에 기대 밤톨처럼 영글어 가며

세상으로 향하는 두근거림과 두려움

풋 외로움을 새겼을

처음 그 소리 들린다

바다가 언제나 나에게

수위 높은 그리움의 중심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저, 물결이며 바람이며

신발 신지 않은 먼 발걸음 앞에

나도 신을 벗는다

십일월 찬 물결

도요새 발목 새록새록 붉어지는 바닷가

「그리움의 중심」 전문

‘이만큼’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서 시인이 건너가 발견한 것은 자연의 지대이다. 자연이란 분리가 아니라 통합이며, 파편성으로부터 통일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정신의 피난처이다. 유봉희 시인이 이전에 펼쳐보인 이상이란 자연의 서정화와 분리하기 어려운 것인데, 그러한 서정적 초월들은 이번 신작시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인용시의 중심 소재는 ‘바다’이다. 바다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한다면, 이 시인의 추구하는 전략적인 주제의식이란 지속적이며 항구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항상심을 갖고 “바다가 언제나 나에게/수위 높은 그리움의 중심이었음을” 과감하게 선포한다. 이런 자신감이야말로 자신의 정서의 빈 지대를 채워나가고자 하는 서정적 열정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며, 그것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 치유를 향한 갈망의 표현이었다.

치유란 분리적인 사고에서는 불가능하다. 그 차단의 벽을 뚫고 통합이라는 성스러운 길로 나아가야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탈이라는 과거의 원죄를 벗어던져야 한다. 인간은 애초에 자연의 일부였지만, 근대적 욕망이 이로부터 떨어져나오게 했다. 지난 시절 펼쳐졌던 유토피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원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자연이라는 성스러운 공간, 통합의 공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인간적인 요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인용시에서 “신을 벗는 행위”는 여기서 비롯된다. 그것은 ‘저만큼’의 거리를 무화시키는 ‘이만큼’의 징검다리와 같은 것이다. 인간들의 신이란 그들만의 질서와 존재를 위한 거추장스런 매개일 뿐이다. 자연과 일체화되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것을 규정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

따라서 시인이 신을 벗는 것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고뇌의 표현이다. 그것이 평범한 일상이 아닌, 실존을 향한 윤리적 결단인 것은 이런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되는 순간은 숭고한 것이기에 일상의 바다가 “새록새록 붉어지는 바닷가”로 존재의 변이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붉은 바다는 이제 단순한 물상이 아니라 통합의 공간으로 존재의 변신을 시도한다. 이 붉은 바다야말로 조화를 향한, 유봉희 시인이 꿈꾸는 세계이고, 유토피아의 구경적 지점일 것이다.

송기한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비평 당선. 주요 저서로 “1960년대 시인 연구”, “한국 현대시와 시정신의 행방”, “한국시의 근대성과 반근대성”, “현대시의 유형과 인식의 지평”, ‘정지용과 그의 세계“등이 있음.

2011년 버클리대 객원교수, 현재 대전대학교 국어국문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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