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Questions ·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13-15回 -up

2013.10.04 07:25

arcadia 조회 수:778 추천:25




김대식의 'Big Questions' 1 - 15 回 (제304호 - 제345호) / 2013.01.06 ~ 2013.10.20 / 중앙SUNDAY Magazine








































































▲ 델 콘테 (Jacopino del Conte)가 1535년께 그린 ‘늙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 [사진 위키피디아]




 

15
'Big Questions'   노화란 무엇인가














 
  번식 끝내면 자연의 ‘관심’도 끝 … 그저 늙어갈 뿐!





20세기 최고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2009ㆍ아래 사진)는
1998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프랑스 한림원 겸 대학)가 마련한 그의 90세 기념 행사에서 늙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몽테뉴는 ‘늙음이 우리를 매일 조금씩 소멸시켜간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여기 서 있는 실제의 나는 더 이상 ‘레비스트로스’의 반에 반도 안 됩니다.
하지만 가상의 ‘레비스트로스’는 활기 넘치는 아이디어로 꽉 찬 여전히
완벽한 존재입니다.
가상의 나는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첫 장을 쓰며
실제의 나에게 말합니다. ‘자, 이제 자네가 계속 쓰게나.’

그러나 더 이상 능력이 없는 ‘실제의 나’는 ‘가상의 나’에게 말합니다.

‘아니, 이건 자네 몫이야. 여전히 전체를 볼 수 있는 건 자네뿐이라고.’

남은 인생 동안 나라는 존재는 이 둘의 낯선 대화들 사이에 살게 될 겁니다. ”







▲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 (Claude Levi-Strauss,1908∼2009).




처음은 항상 같다. 하나의 세포는 둘이 되고, 둘은 넷, 그리고 넷은 여덟이 된다. 몸이 만들어지고 피가 흐르고 뼈가 생긴다.
수천억 개의 세포가 만들어져
대뇌피질을 향해 이동한다. 신경세포들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 자극들. 마치
여름 밤하늘을 덮는 천둥번개 같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던 무질서의 신호들
사이에 점차 패턴이 보인다. 반복된 패턴은 의미가 있고, 반복되지 않는 패턴엔 의미가 없다.
이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엄마의 자궁이라는 작은 우주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약 9개월간의 포근함과 평화. 왜 행복은 영원할 수 없는 걸까?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어느 날. 우리는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한다.

밀어내려는 자연의 힘과, 존재의 본거지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우리. 거친 숨,
붉은 피, 이해할 수 없는 혼돈의 신호들.
먼 나중에야 ‘광자’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알게 될 그 무언가가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망막에 무시무시한 천둥번개들을 만들어낸다.
모든 게 너무 밝고 시끄럽다. 원하지 않게 만들어진 우리는
‘세상’이라는 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은 갑이고
인간은 을이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한 세상은,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명령하기 시작한다.
먹어야 한다. 걸어야 한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공해야 한다고.



직장을 얻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산다. 원치도 않은 세상에 태어나 인생의

게임 법칙에 휘말려 살던 어느 날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빠지기 시작한다.

배가 나오고 주름이 생긴다. 가슴이 처지고 팔에 힘이 없다.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고, 긴 문장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델 콘테(Jacopino del Conte)가 그린 ‘늙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처럼 말이다.

이제야 겨우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세상의 질서는 또다시 서서히 무질서의
암흑으로 사라져간다.



다음 세대 위해 늙고 죽어 자리 비워라?



늙음이란 무엇일까? 자연은 왜 그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투자해 만들어 놓은
우리를 다시 소멸하게 하는 것일까?
단순히 오래 사용해 망가지는 기계와
우린 다르다. 생명체는 망가진 부위를 고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시에 긁힌 손이 치유되고, 잘린 도마뱀의 꼬리가 다시 자라듯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이거다.
왜 생물학적으로 충분히 회복하고 치료될 수 있는 몸이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치료되고 회복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늙고 죽어 자리를 비워주어야 다음 세대가 번창할 수 있어 노화가 존재한다’

는 19세기식 아이디어는 물론 난센스다. ‘다음 세대가 번성해야 한다’ 라는
‘건전한 사회적 가치’ 는 자연에 아무 의미가 없다.



진화생물학자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hansky)가 말했듯
생명체의 의미는 진화적 차원에서만 설명된다.

진화의 핵심은 번식을 통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기 때문이다.

미래 후손(고로 우리들의 유전자)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유전적으로 더 우월한 또는 최대한 많은 파트너를 확보해야 한다.
수컷 공작이 무겁고
긴 꼬리를 세우며 힘을 자랑하듯, 인간 수컷들은 고급 승용차로 자신의 유전적
우월함을 표현하려 한다.
인간에게 수퍼 갑인 자연의 명령은 간단하다.
더 많이 번식하려면 성공해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선 남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먹고 마셔야 한다.



성장의 반대인 노화. 그렇다면 진화적 관점으로 노화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어쩌면 노화의 비밀은 ‘진화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진화적 무의미’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노화 증세는 20대 후반 또는 30대부터 서서히 시작된다. 그러나 번식은 10~12세만 돼도 가능하다.
더구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류의 수명이 25~30세 정도만 돼도 큰 문제 없어 보인다.
평균 수명이 30세
뿐인 뉴기니의 많은 부족도 조상으로부터 배운 전통과 문명을 다음 세대에
성공적으로 물려주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치명적 질환을 만들어내는 특정 유전자가 돌연변이로 만들어
졌다고 가정해 보자.
이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확률은 매우 낮다.
유전자를 가진 자는 대부분 번식하기 전에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 같은
노인성 질환을 만들어내는 유전은 다르다.
번식이 끝난 후에야 영향을 주는 병이어서 노인성 질병들은 진화적으로 중립적이다.
노인성 질병이 있건 없건 번식확률에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화는 근본적으로 불가피한 진화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노화는 ‘자연의 무관심’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일 뿐이다.


또 다른 예로 칼슘을 생각해 보자. 성장기에 칼슘은 중요하다. 튼튼한 뼈를
가져야 생존과 번식확률이 높다.
하지만 많은 칼슘은 노인성 관절염의 원인이기도 하다. 동일한 원인이 정반대의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튼튼한 뼈를 가진 어린이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노인. 그렇다면 칼슘 용도를 좌우하는 유전적
메커니즘은 어느 쪽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답은 물론 정해져 있다. 어린아이의 발달은 진화적으로 의미 있지만, 노인의 삶은 진화적으론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30세에 죽었어야 할 인간이 70년 더 사니…



바람둥이 남자에게 옛 애인이 무의미하듯, 자연에게 번식을 끝낸 나이의 인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성장과 노화는 ‘지나친 관심’ 과 ‘얄미울 정도의 무관심’
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자연의 결과물이다.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팬은
자연의 관심에서 자유로워지려 했고, 늙지 않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도리안 그레이(Dorian Gray)는 자연의 무관심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 150주년 탄생 기념으로 이탈리아 정부가 2011년
출간한 이탈로 스베보(Italo Svevo) 기념우표.




그래, 나이 먹은 나는 자연에 진화론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치자. 그래서
어쩌라는 건가?
망가져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냥 구경하며 우울해하라는 것인가? 아니, 조금 더 긍정적인 해석도 가능하겠다.
불과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평균 수명은 30세를 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100세 시대를 기대한다.
‘자연적’이라면 30세에 죽었어야 할 우리들이
과학과 기술 덕분에 70년을 더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진화하는 자연은 여전히 늙어가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하지만 자연의 무관심은 우리에게 뜻밖의 자유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던져져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성공하려고 발버둥치도록 프로그램돼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지만 노년은 다르다. 자연이 무관심하기에, ‘노년’이라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년엔 수퍼 갑인 자연이 요구하는 정답이 더 이상 없는 만큼, 우리는 우리만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꿈과 여유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걸작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실제 인물이었던
이탈리아 작가 에토레 슈미츠(Ettore Schmitz).
그는 항상 작가가 되길 꿈꿨다.
하지만 사업가가 된 그는 먼 훗날 재력가가 된 중년에 가서야 ‘이탈로 스베보”(Italo Svevoㆍ위 사진)’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늙은 신사와 아름다운 소녀』라는 짧은 작품에 등장하는 성공한
어느 신사. 이미 사랑을 포기했어야 할 늙은 나이에 신사는 다시 사랑에 빠진다.
아름다운 여자를 그리워하는 마음. ‘먼지보다 보잘것없는 나’ 를 ‘우주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 로 여기며 사랑해 주는 그이를 만날 때의 놀라움.
지구에서 하루에도 수백만 번씩 일어나는 사랑. 늙은 신사는 그런 하찮은
사랑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소녀에게 신사는 찌든 할아버지일 뿐. 늙은 신사는 결심한다.

그녀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젊은 그녀가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성공의 비결’이라고. 신사는 소녀에게 돈을 주고, 옷을 사주고, 좋은 책을 읽어준다.
나이 많은 남자들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면서 늙은 신사는 자신의 ‘주옥같은’ 교훈을 책으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한다.
밤새워 글을 쓴 신사는 웅장한 ‘노인의 철학’을 완성한다.

인류의 모든 업적은 노인들이 만들어냈다고!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노인들 없인 불가능했다고.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해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고?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문장에 도달한다.



“…그래서 결국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빚진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창살에 부딪히는 눈부신 햇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소녀. 꿈과 욕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

추하고 늙은 지금의 자신과 젊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자신을 비교하던 늙은
신사는 책을 포기한다.
그리고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한다. “아무것도 없다.”



… 중앙SUNDAY | 제345호·김대식 KAIST교수 | 2013.10.20

















 

14
'Big Questions'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 장미는 왜 아름답다고 인식될까. 아름다움이란 인식은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
철학이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을 고민하게 만든 주제다.














 
  갖고 싶은 것, 이로운 것, 생존에 우월한 유전자!





‘미(美, beauty) 또는 아름다움은 감각적인 기쁨을 주는 대상의 특성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調和, harmony)의 상태이다.
아름다움을 고유하게
정의하는 것은 곤란하며, 자연의 사물 등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소박한
인상으로부터,
예술 작품에 대해 갖는 감동의 감정, 혹은 인간의 행위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해석이 있다.’(위키피디아)



‘아름다운 것은 사랑받지만,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랑받지 못한다.’
(테오그니스, 기원전 6세기)



‘아름다움은 천재의 한 형태다. 아니, 설명이 필요 없어 천재보다 우월하다.

그것은 햇빛, 봄, 어두운 바다에 반사하는-우리가 달이라 부르는-은빛 껍질
같은 이 세상의 현실 중 하나다.
의심할 필요 없으며 그것만의 신성한 권리가
있다. 아름다움이 있어 인간은 왕자가 될 수 있다.’(오스카 와일드)



우선 아름답지 않은 것들부터 생각해 보자. 시체, 썩은 음식, 배설물…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이 당연히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추하고 역겹게 만드는 것일까? 대부분
우리 몸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만지거나 냄새 맡고 먹을 경우
건강에 치명적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가능한 한 멀리해야
한다.
미처 몰라 먹거나 만졌다면 이미 늦다. 위험한 행동을 하기 전, 가능한 한 최대한 먼 거리에서 이들을 알아보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멀리서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진화된 방법은 아마도 냄새 분자들의 화학적 구조를 분석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바로 코를 통해 주변 분자들을
빨아들이는 후각적 인식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자 확산’을 통해 전달되는 지독한 냄새라도 먼 거리에선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더구나 우리가 피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 추하고 역겨운 분자들이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 아니었던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죽은 동물이나 썩은 음식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청각적 구별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방법은 어떨까?

우선 멀리서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거기다 시각은 물체에서 반사되는
광자들로 인식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병균이나 질병들은 광자를 통해
전달되지 않는다. 인간은 보는 것만으론 죽지 않는다.







▲ 사람들은 대부분 다양한 얼굴들의 평균값으로 만들어진 얼굴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다.





‘보는 것’ 은 가장 뛰어난 생명의 무기



그렇다. ‘보는 것(시각)’ 이 촉감 · 후각 · 청각을 통한 인식보다 뛰어나
인간 같은 영장류는 뇌의 3분의 1 이상을 시각정보 처리에 활용한다.

시각이야말로 진화하는 생명체의 최첨단 무기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추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은 대부분 시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초음파를 통해 세상을 인지하는 박쥐나 콧수염을 통해 주변을 알아보는 쥐에게 아름다움과 추함이란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지각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각할 수 없는 것은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다.



인간에게 추함과 아름다움은 대부분 시각적이라 생각해 보자.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움은 눈의 판단’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일랜드 시인
헝거포드(Margaret Wolfe Hungerfod)가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안에 있다’고 했듯 말이다.
그만큼 인간에게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뒤샹(Marcel Duchamp)은 그렇기에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전통 예술을
‘망막의 예술’, 고로 단순히 망막을 자극하는 장난이라고 조롱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눈은 마음과 정신의 창문일 뿐이다. 눈과 망막은 세상을 보지만, 세상을 인식하는 것은 마음과 정신이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보고 생각하는 자의 마음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아름다움이란 결국 인간이 두뇌 안에 있는 개념 중 하나라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보는 자의 마음에 있다는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예를 들어 장미 그 자체가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망막에 꽂히는 장미라는 ‘광자적 확률 분포’에 이미 우리가 갖고 있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추가되는 것일까?
이것이 중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이 수백 년간 다투었던 개념의 보편성 문제다.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가 보고 경험할 수 있는 장미는 수도 없이 많다. 비슷하게, 세상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개념적 장미’와 ‘개념적 아름다움’은 그중 어느 것일까?
‘실념론(實念論, Realism)자’로 불리는 대부분 중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플라톤과 플로티노스를 따라 개념이란 보편성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이슬람 최고의 아리스토텔레스 해설가 아베로에스(Abu I-Walid Muhammad bin Ahmad bin Rusd, 라틴어 Averroes, 1126~1198) 역시
개념적 장미는 물리적 현실에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장미가 아닌 플라톤식 이데아 세상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장미의 이데아’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플라톤은 아름다움을 ‘이데아 중의 이데아’라고 부른 바 있다.

아름다움이란 독립적 개념이 아닌 우주의 모든 이데아들의 질서를 좌우하는
원초적 이데아라는 것이다.
5세기 신학자 ‘위(僞)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스(Pseudo-Dionysius Areopagitas, 기원후 5세기)’는
플라톤의 ‘이데아 중 이데아’는 결국 ‘신’을 의미하므로 논리적으로 ‘신=아름다움’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플라톤식 이데아 세상의 존재를 주장하는 순간 난감한 문제들이 생긴다. 도대체 이데아 세상이란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보이지도 느끼지도 지각할 수도 없는 이데아 세상이 물질적 세상과 어떻게 원인적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일까?
단순한 말장난으로 문제를 풀려는 게 아닌가? 윌리엄 오브 오컴(William of Ockkam, 1287~1347)
반대로 “개념은 개체를 기반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이라 불리는 이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유대 철학자 마모니데스(Moses Mamonides 또는 RaMBaM, 1135~1204)가 주장했듯
‘개념적 장미’란 우리가 경험한 모든 장미들의 집합이라 가설한다.

‘개념적 아름다움’ 역시 경험적으로 아름다웠던 모든 개체들의 공통점을
표현한다는 말이다.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기억해 보자.
책에서
주인공 ‘윌리엄 오브 바스커빌’은 당연히 윌리엄 오브 오컴과 셜록 홈즈 시리즈 ‘바스커빌 가문의 개’를 합친 이름이다.
소설로서도 흥미롭지만, 이 책은
유명론적 스토리 구성으로 더 유명하다. 그리고 유명론적 철학에 치명적인
질문을 하나 던진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개체의 공통점이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어쩌면 수많은 장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장미’라는 이름 하나만일 수도 있다.
12세기 수도사 클루니 베르나르(Bernard of Cluny) 역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제의 장미는 이름만이네. 우리 손에 남는 건
빈 이름뿐이구나.”







▲ 자연의 방대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의 ‘바다안개 위의 산책자’(1818).




좌우 균형 신체는 ‘유전적 품질’ 보증



다시 한번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추한 것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우리가 피하려 한다는 점이다.

끝없는 진화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것들의 형태를
회피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것,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정하면 어떨까?

모딜리아니의 ‘빨간 누드’는 진화생물학적 (남성)본능에 너무나도 충실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콜라병 같은 몸매, 공작의 멋진 부채꼴 모양 꼬리,
고릴라의 넒은 가슴…나름대로 모두 생존에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것들에 대한 표현이다.
비현실적으로 큰 눈을 가진 만화 주인공들의 아름다움은 상대적으로 눈이 큰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유전적 모성애를 바탕으로 할 것이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미의 조건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균형과 조화
역시 대부분 진화적 기원으로 설명해 볼 수 있겠다.
얼굴과 몸의 좌우 균형은
-적어도 간접적으론-유전적 ‘품질 보증’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부분 사람은 다양한 얼굴의 평균값으로 만들어진 얼굴을 가장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값 얼굴’의 진화적 장점은 무엇일까? 개체적 얼굴보다-단순히 수학적인 이유 덕에-더 조화로워질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연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어떨까? 영장류인 인간에게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제공하는 풍요한 녹색 환경은 아름답다.
반대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어두운 늪지는 두렵고 추하다.



중세기 스콜라 철학자들의 ‘실념론 대 유명론’ 대립을 현대 과학을 통해 풀 수 있을까?
우리의 개념들은 물론 물리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유명론자들이 주장했듯 말이다. 반대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개념의 ‘미적인 질’은 보편성에서 온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성은 플라톤의 ‘고매한’ 이데아 세상에서 오는 게 아니다. ‘진화’라는 긴 과거의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눈을 뜨고 장미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수천만 년 동안 태어나고, 사랑하고, 희망하고, 실망하고, 사라진 우리들 모두의 조상과 공감하는 것이다.



… 중앙SUNDAY | 제342호·김대식 KAIST교수 | 2013.09.29







▲ 빌러의 ‘바다안개 위의 방랑자’(1983). 자연의 인간화


















 

13
'Big Questions'   인간은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 히로시마 · 나가사키에 떨어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핵폭탄.
그 폭탄을 만든 과학자의 책임은 무엇인가? [사진 위키피디아]














 
  무리에 묻어갈 수 없는, 하나뿐인 ‘원본’이니까





1937년 12월 13일, 중국 국민당 정부가 충칭(重慶)으로 피한 뒤 수도 난징(南京)에 갇힌 시민들은 일본군의 사냥감이 된다.
남자들은 총살당하거나 생매장
당한다. 100명의 목을 누가 먼저 베느냐를 놀이 삼아 경쟁하고, 매일 수천 명의

여자들이 강간당한다. 임신부는 총검에 찔려 죽고, 배 안의 아이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껴보기도 전에 죽는다.
6주 동안 난징(南京) 시민들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밟아 죽일 수 있는 바퀴벌레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난징에 살던 독일 나치당원 욘 라베(John Rabe) 마저 야만적이라며 항의할
정도로….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朝香宮鳩彦王) 왕자.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삼촌으로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 현장 책임자.

프랑스 유학 때 아르 데코(art deco·1920~30년대 프랑스 파리의 장식예술 풍조)에 빠져
도쿄 시로카네다이(白金台)에 멋진 아르 데코 집까지 지었다는 사람.

난징에서 모든 포로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지? 아니? 자신은 책임 없고,
다 참모가 몰래 한 짓이라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면책받아 우아하게 골프장이나 설계하다 93세에 따뜻한 침대에서 죽었다지.







▲ 1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 군인. 뭐가 그리 즐거웠을까?

2 좋은 할아버지로 행복한 노년을 즐겼던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자, 이시이 시로(왼쪽부터).





‘인간 백정’ 아사카노미야 · 멩겔레 아이러니



난징에서 아사카노미야 왕자가 샤토 오 브리옹 와인을 마시며 아마도 예전
프랑스 애인들을 기억하고 있었을 무렵,
수천㎞ 떨어진 독일에선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가 나치당에 가입한다.
‘인종위생학자’로 줄곧 독일 민족의
절대 우월성을 주장했던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특히
쌍둥이 유전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 의사가 된다.



수용소에서 그는 절대 신이었다. 웃음을 머금은 표정 때문에 ‘죽음의 천사’
라고 불린 멩겔레.
배설물로 범벅 된 기차에서 내리는 유대인, 집시들,
선생님, 어린아이, 할아버지, 여배우 앞에서 그는 크게 외친다.

Zwillige heraustreten!(쌍둥이들 나와!). 나오면 살고, 아니면 죽는다.”

하지만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행복했던 곳이 바로 아우슈비츠 아니었던가?
‘선택된’ 아이가 울면 설탕을 주며 달래다 짜증 나면 벽에 내던져 죽이고,
살아 있는 아이의 몸을 해부한다.
‘의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쌍둥이들을 서로 꿰매고, 7살 여자 아이의 요로를 대장에 연결하며, 울부짖는 어린아이의 간을 마취 없이 꺼내 본다.



배고픔과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삼촌’이라 부르게 했던 멩겔레.

전후 그는 유럽에서 잘도 빠져나와 볼프강 게르하르트(Wolfgang Gerhard)

로 이름을 바꿔 아르헨티나ㆍ파라과이ㆍ브라질에서 승승장구했다.

사업도 크게 벌여 멋진 목장에서 살았고 바다에서 수영하다 67세에 익사했단다. 하긴 멩겔레뿐만이 아니다.
전쟁 포로들을 마루타 삼아 생체실험하던
이시이 시로(石井四) 관동군 731부대장도
전쟁 뒤 소아과 의사로 평화롭게 살다 역시 67세에 식도암으로 죽었다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 에서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는 인류가 구질구질한 도덕에 얽매여 사는
벌레 같은 인간들과 비범하고 강력한 ‘나폴레옹’식 인간으로 분류된다고 주장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던 위번멘쉬(초인)랄까?
세상의 갑이 바로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집주인인 악덕 할머니를 살해
한다.
도덕을 초월한다던 라스콜니코프는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고 자수한다.

원작의 제목은 ‘프레스투플레니에 이 나카자니에(Prestuplenie i Nakazanie)’,
그러니까 ‘범죄와 처벌’이다. 영어로 ‘Crime and Punishment’라고 하듯
말이다.
그런데 독일어 제목은 ‘Schuld und Suehne-죄와 속죄’다.
범죄와 죄, 그리고 처벌과 속죄. 인간은 죄를 짓지만, 진정한 책임과 속죄 없는 처벌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이다.



일본군 일병, 멩겔레, 이시이, 아사카노미야, 히로히토, 히틀러.

그들에겐 교집합이 하나 있다.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를 찾아 브라질로 온 아들에게 멩겔레는
“나는 굶는 아이들에게 설탕을 나누어줬다. 그러니 영웅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단다….
악마이며
정신병자이며 천사 같은 웃음을 가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난징에서 칼부림하던 군인은 장교가 시켜서 했다 할 것이고, 장교는 장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장군은 왕자의 명령을, 왕자는 왕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겠다. 왕은 나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라 할 것이고,
왕자는 장군의 보고를 들은 바 없고, 장군은 현장의 장교가 제대로 하지 못해서라고 한다.
장교는 어차피
칼질은 군인들이 했다고 하며 군인들은 또다시 상관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란다…
세상만 돌고 도는 게 아니다. 주인 없는 책임들도 돌고 돈다.



라스콜니코프는 한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눈으로 쳐다보며 죽였기에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내
책상 위의 빨간 버튼을 눌러 눈에 보이지도 않는 100만 명을 죽일 수 있다면?



미학자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은 기계적 복제가 가능한
현대 사회에
더 이상 ‘원본’이라는 개념이 가능한지 물었다.
사진으로 ‘모나리자’를 100만 번 똑같이 찍어낼 수 있는데,
왜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한 장의 그림만이 특별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베냐민의 사촌 동생이자

철학자였던 귄터 안더스(Guenter Anders)는 책임감의 복제에 대해 생각한다.

한 사람이 한 명은 죽일 수 있지만 혼자 100만 명을 죽일 수는 없다.

100만 명을 죽이려면 그렇게 할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를 만들 공장이 필요
하다.
공장은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과학과 기술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100만 명을 죽인 책임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을까?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이 재회한다면…



미국 뉴멕시코주 사막 한가운데 로스앨러모스(Los Alamos).

1942년 이곳으로 당시 최고의 천재들이 모인다. 승승장구하는 나치 독일을
막을 비밀병기 원자탄을 만들기 위해서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리처드 파인맨, 폰 노이만 같은 당대 최고의 물리학 천재들과
26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1945년 여름 드디어 완성된다.
독일은 이미 항복해 원자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일본 역시 항복한다.
하지만 두 도시에서
섭씨 1억 도가 넘는 화염에 불타 단말마의 비명 속에 사라진 수많은 목숨.

왜 그들이 난징 대학살과 진주만 공격의 책임을 지게 된 것일까?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에 괴로워한다.

그들이 다시 만난다고 상상해보자.







▲ 오펜하이머ㆍ노이만ㆍ라이너스 폴링ㆍ파인맨



오펜하이머=“핵폭탄이 터지는 순간. 해보다 더 밝은 또 하나의 해를 탄생시켰지. 우리 과학자들의 손으로.
나는 그때 힌두교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의 시 한 줄이 기억나더군.
내가 죽음,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구나.”



노이만=“오피(오펜하이머의 별명), 당신이 맨해튼 프로젝트 총책임자로서
괴로워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그 폭탄 없인 Japs (2차 대전 당시 일본인을
낮춰 부른 말)들이 절대 항복하지 않았을걸.
더 많은 군인이 죽었을 거라고.
그리고 어차피 우린 폭탄을 개발했지 사용자는 아니잖아.
책임은 군인들이,
아니 정치인들이 지면 된다고!”



라이너스 폴링=“나도 한마디….”(미국의 물리학자 폴링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원자 · 수소폭탄 반대운동을 벌여 196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노이만=“폴링! 당신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도 않았잖소!”



폴링=“(노이만을 무시하며) 책임을 백만 조각으로 나눠버려 잔인한 인류 범죄도 무죄로 만드는 게
오늘날 현실이오…하지만 책임 없인 인류가 동물하고 다를 바가 없지 않나요?”



파인맨=“책임지려면 절대 독립적인 인간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계몽주의적 사고요.
인간은 독립적이기에 자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것.
하지만 고도로 발달하고 분업화된 세상에서 그 누구도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 없소.
우리 과학자들은 사회라는 기계의 수많은 톱니바퀴 중 하나일 뿐이오.
우리가 나선다고 바뀔 게 없고, 나서봐야 인생만 복잡해진다고요.

어차피 세상은 나쁜 곳이며 바꿀 수도 없는 것인데…
한 번뿐인 인생을 쓸데없이 낭비하느니 차라리 재미있게 연구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며,

술잔을 기울이며 바닷가 노을을 즐기는 게 더 현명하지 않나요?

우울한 책임론자보단 행복한 무책임론자로 살겠습니다….”



폴링=“(불쌍한 듯 쳐다보며) 책임 있는 인생과 재미있는 연구는 모순이 아닙니다.
뭐,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한 연구했고, 노벨상도 두 개(54년 화학상, 62년 평화상) 나 받았거든요.
물론 현대 사회에선 그 누구도 절대 자유로울 수 없지만, 우리 과학자들이 그나마 가장 자유롭지 않나요?
우리가 그 무기들을 창조했고, 그 무기들은 우리 없이는 세상에 탄생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결국 우리의 존재와 노력이 필요조건이었다는 겁니다.



베냐민은 복제품과 원본의 차이는 원본이 갖고 있는 ‘아우라(aura)’라고
했지요.
원본의 창출 조건과 배경 그 자체가 복제품과 차별화해준다는 겁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연구의 배경과 창조 조건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 기술의 아우라를 기억한다는 거지요.
그런 우리야말로 복제된 지식의 추한 모습을 사회에 알리고 이해시킬 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원본입니다. 자신은 톱니바퀴 같은 복제품이 아닌 우주에 하나뿐인 원본임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이라는 원본의 아우라 중 하나가 바로
피할 수 없는 책임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중앙SUNDAY | 제339호·김대식 KAIST교수 | 2013.09.08



















  • 김대식 · KAIST교수


  •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 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학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 · 인공지능 · 물리학 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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