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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5 09:43

두 개의 생일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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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생일 기념 사진

양가 부모님 중 이젠 친정엄마만 생존해 계신다. 가능한 한 자주 찾아뵐 작정으로 엄마 90세 생신에 맞춰 2019년 말에 2020년 2월 비행기표를 사 두었다. 중국 우한이라는 곳에서 발생했다는 코로나, 우왕좌왕하면서도 항공권을 사 뒀으니 무조건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한국, 자매들한테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더니 “이번엔 아닌 것 같다”는 답이 왔다. 그리고 얼마 후 “언니야. 한국 안 오기 천만다행이야. 여기 요즘 난리야. 엄마 면회도 안 되고. 병원에서 보내온 생신 기념사진이야”하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머리에 생일 고깔을 쓴 채 간호사가 내미는 생일 케이크를 보며 웃고 계신 사진 하나 달랑 카톡방에 올라왔다.  
 
이어지는 한국의 마스크 대란, 학생들은 휴교라도 난 출근해야 하거든, 교사인 셋째 여동생의 한마디에 어찌나 마음이 쓰이던지 급히 마스크를 주문해서 자매들 모두 함께 나눠 쓸 수 있도록 보냈다. 택배로 부친 그날 일본에 유학 중인 조카(언니 아들)한테도 마스크 좀 보내 줄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는 마스크 해외 반출 금지령이 내려졌고 무엇보다 일본행 항공편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은 확진자도 별로 없고 올림픽 취소 전이라 아베한테 충성하느라 마스크 쓰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더니 상황이 급변했다고 했다. 조카는 박사고 뭐고 관두고 일본을 탈출하고 싶은데 그것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주문한 마스크를 기다리는 동안 미국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나는 정말 잽싸게 마스크를 주문했지만 도착 기간이 길어져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렵사리 도착한 마스크는 우리 것 조금 남겨두고 몽땅 일본으로 보냈다. 코로나 전파력이 무섭기도 했지만 마스크가 여유롭지 않아 남편이 나가는 길에 장을 봐 오는 등 외출을 자제하는 집콕 생활로 접어들었다. 한국 자매들은 매주 번갈아 혹은 함께 엄마를 찾아뵙기에 멀리서 사는 나는 늘 빚진 기분이어서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작년 연말에는 우여곡절의 사연으로 점철된 만 2년여의 코로나19의 어둡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침 조카(여동생 딸)의 올해 2월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쁨으로 들떠 남편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알렸다. 남편 비즈니스 성격상 두 주 정도 여유가 있는지라 빠듯하긴 해도 한국 가서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도 만들었다.  
 
하지만 완화될 줄 알았던 격리 기간이 코로나 변이 오미크론의 강한 전파력으로 단기 외국인은 열흘이라고 발표가 났다. 주변에서는 사나흘 머물려고 한국 도착해서 코로나 검사를 세 번이나 받아야 하는데 생각 좀 해보라고 거든다. 결국 또 못 갔다. 하지만 하루 결혼식 참석하고, 창문 너머로 엄마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후회가 밀려왔다.  
 
며칠 전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었다. 한국행 여행객이 폭증해 항공회사들이 바빠졌다는 기사가 났다. 이젠 정말 가게 되는구나 했는데 자매들 카톡방에 올라온 소식에 기운이 쭉 빠진다. “언니야. 여기 오미크론으로 요즘 난리야. 엄마 면회도 안 되고. 병원에서 보내온 생신 기념사진이야.” 2020년 봄에 받았던 내용과 같은, 그러나 부쩍 늙은 모습으로 누워계신 엄마 모습에 오열했다. 4월 말이면 모두 괜찮을 것이라는 말에 또 희망을 건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22년 4월 4일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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