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3
어제:
11
전체:
1,292,187

이달의 작가
수필
2008.08.22 08:24

야박한 일본식당

조회 수 157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저의 집 근처에 일본인이 경영하는 우동집이 있습니다. 친구들과 몇 번 간적이 있는데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갈 때마다 보게 됩니다.
저는 보통 런치스페셜 1번을 주문합니다. 우동과 튀김 그리고 몇 종류의 단무지가 정갈하게 담겨있는 벤또입니다. 풍성한 느낌은 안 들지만 담백하니 맛이 괜찮습니다. 보통 외식을 하고 나면 찬물을 마구 들이키곤 하는데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그런 증세가 별로 없습니다. 이웃 분이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아서 일거라고 일러줍니다. 음식가격이 그리 싼 것도 아니고 위치가 그렇게 좋은 곳도 아닌데 늘 그렇게 손님이 붐비는 것을 보면 역시 음식은 ‘맛’ 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제저녁 바로 그 식당을 남편과 함께 갔습니다. 제가 속이 좀 거북해서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었거든요. 진짜 맛있다’고 남편에게 몇 번 강조한 뒤 저는 뎀뿌라 우동을 남편은 닭고기 우동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동 한그릇만 달랑 나왔습니다. 김치대용이 될 만한 단무지 같은 것이 당연히 나오는 줄 알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줄 낌새가 아니었습니다. 우동이 반쯤 없어진 뒤에야 대충 감이 잡혔습니다. '단무지 좀 주세요' 그제서야 부탁했습니다. 왔다갔다 분주한 저 웨츄레스 도무지 소식이 없습니다. '김치좀 더주세요’ 하면 총알같이 가져다 주는 한국식당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참다못해 저희 테이블을 담당하던 웨츄레스가 보이길테 ‘단무지…’하고 힌트를 줬습니다. 오더 해 놓았다며 일본여성 특유의 그 상냥한 웃음을 흘리고는 그만이었습니다. ‘오더?’ 단무지 하나를? 아…..그제서야 눈치를 챘습니다.

그전에 몇 번 갔지만 그때마다 다른 분이 음식값을 내서 단무지 하나도 음식값에 추가되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그만두라 할 수도 없는 일이라 우동이 식든지 말든지 아주 천천히 먹었습니다. 거의 몇 가락 남았을 즈음 무려 4불이나 하는 단무지가 나왔습니다. 커다란 종지에 느슨하게 잘라놓은 단무지를 먹으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우동하나를 시켜도 김치나 깍두기정도는 따라서 나오고, 혹시 먹다가 모자라면 돈을 더 내지 않아도 당연히 더 주는 한식당의 풍성함이 떠올랐습니다. 너무 풍성해 버리는 것 또한 얼마나 많은지 말입니다.
.
일본인의 정갈함과 친절 그리고 야박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먹을 만치만 주문하도록 하는 음식문화 우리의 풍성한 식당문화와는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은 매콤한 신라면에 시큼한 총각김치나 와작 깨물어 먹어야겠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7 수필 "결혼 생활, 그거 쉽지 않지" 오연희 2015.07.06 291
176 수필 "내가 뭐랬냐?" 오연희 2003.06.29 906
175 수필 "정말 충분했어" 오연희 2003.07.12 832
174 수필 '드롭 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 오연희 2015.07.06 174
173 수필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오연희 2018.09.26 177
172 수필 '우두커니'를 거부하는 사람들 4 오연희 2017.11.30 182
171 수필 '우리'의 정서 오연희 2007.08.07 1694
170 수필 '조심조심, 미리미리' 오연희 2017.08.02 142
169 수필 '카톡 뒷북녀'의 카톡 유감 4 오연희 2017.03.14 231
168 수필 94세 시어머니 1 오연희 2006.05.09 1308
167 수필 [나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9/22/14 오연희 2014.10.07 327
166 수필 [열린 광장] 엄마 곁에서 보낸 짧은 나날들 11/22 오연희 2013.12.08 377
165 수필 [이 아침에] "거라지 세일, 장난이 아니네요" 4/22/14 오연희 2014.04.28 320
164 수필 [이 아침에] "엄마, 두부고명 어떻게 만들어요?" 10/22/14 오연희 2014.10.24 554
163 수필 [이 아침에] '길치 인생'을 위한 우회로(2/19/14) 오연희 2014.03.07 456
162 수필 [이 아침에] '백년칼라사진관'아직 있으려나 오연희 2013.05.31 826
161 수필 [이 아침에] 값이 싼 티켓은 이유가 있다. 5/20/14 1 오연희 2014.05.22 523
160 수필 [이 아침에] 공공 수영장의 '무법자' 11/26/2014 오연희 2014.11.26 248
159 수필 [이 아침에] 기다림의 낭만이 사라진 시대 오연희 2013.07.08 498
158 수필 [이 아침에] 기찻길 따라 흐르는 마음 여행 오연희 2013.07.08 75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