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렌트로 살기, 주인으로 살기

posted Aug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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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집 렌트 놓고 다른 주로 이사 간 친구의 부탁을 받았다. 수준있는 백인 가정이라는 것 외 테넌트에 관한 몇 가지 정보는 이미 갖고 있었다. 친구네 집 나뭇가지가 옆집으로 넘어가 통행이 불편하다고 하니 잘라주고, 관리소에서 거라지 도어 페인트를 새로 하라고 하니 그것도 좀 해결해 달라는 거였다.

심하게 탈색되어 있는 도어의 색깔을 확인한 후 거라지 문을 올렸다. 거라지 안팎으로 깨진 곳이 너무 많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같은 시기에 지은 다른 집들을 둘러보았다. 워낙 새 동네라 한결같이 깨끗하다.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들어갔다가 자연스럽게 집안을 보게 되었다. 실내에서 신발 신는 문화인 것은 알지만, 카펫과 마룻바닥이 어찌나 때가 찌들고 상했는지 비명이 나왔다.

잘라야 할 나무를 보려고 뒷마당으로 갔다. 친구가 떠나기 전에 깔아놓은 인조잔디는 3마리나 되는 이 집 개들의 대소변으로 냄새가 진동하고, 인조잔디를 뚫고 올라온 잡초는 또 얼마나 무성한지. 주변에는 쓰레기장 방불케 할 만큼 지저분한 뭉텅이가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2년 만에 집이 이렇게 험해지기도 하는구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우리 가족도 오랫동안 렌트 집에 살았다. 주재원 가족으로 미국 와서는 한국 돌아갈 예정이어서, 영국 가서는 미국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렌트를 선호했다. LA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도 신중을 기하기 위해 2년 또 렌트를 살았다.

처음 미국 와서 살았던 집 주인은 중학교 교사 부부였는데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었다. 브레이크 밟는다는 것을 엑셀을 밟아 거라지 속으로 돌진, 벽을 뚫고 들어가 집 전체가 틀어지는 큰 사고를 낸 적이 있다. 멀쩡한 집을 망쳐놨으니 얼마나 화가 날까, 말 꺼내기가 두려웠는데 보험으로 처리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병원부터 가보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LA에 와서 렌트한 집 주인 노부부는 고장 난 곳이 없는지 정기적으로 물어보고 손봐 주며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렌트 사는 분들의 억울한 사연을 종종 듣는다. 경우 없는 집 주인이 제법 있는 것 같다. 못된 집주인을 혼내고 있다는 이야기에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집주인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아 한마디 하고 싶지만 불난 집 부채질하는 분위기가 될까 봐 침을 꿀꺽 삼키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렌트 집에 살 수도 있고 자기 집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은 테넌트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테넌트는 내 집처럼 소중하게 사용해준다면 서로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집안에서의 신발 착용여부가 집 상태와 직결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신발 벗는 문화를 가진 테넌트가 하도 청소를 안 해서 집을 떡을 만들어 놓았더라는 경험담도 듣는다. 집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 것은 문화 차이가 아니라 사람 차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친구 집 테넌트가 예전에 소유했다는 자기 집도 이렇게 험하게 사용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6.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