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부고에서 읽는 세상살이

posted Oct 1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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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갑니까, 안면을 튼 이웃 분이 남편의 본관을 묻는다. 어디 이갑니다. 답이 나오자 큰아버지뻘이라며 악수를 청하는 이웃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졸지에 조카보다 어린 삼촌이 된 남편도 까마득한 조상님이 내려다보기라도 하는 듯 친근함으로 다가간다. 돌림자에 따라 항렬이 드러나기도 하는 한국 이름, 이민 1세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친분맺기의 유쾌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나의 가까운 지인들의 1.5세나 2세 자녀들 중에는 한국 이름과 영어 이름 둘 다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촉촉해지는 우리 아이들의 한국 이름도 서류상의 미들네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한국 조카들과의 교류로 그나마 항렬에 대한 개념은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한 혈족 안에서 상하 질서 유지를 위해 만든 항렬자, 종종 신문 부고란에서 발견하곤 한다. 돌아가신 분이 연세가 많은 부고일 경우 그 가족 관계를 좀 더 유심히 살피는 편이다. 칠팔십에 떠나는 것은 이르다 할 정도로 최근에는 백세 장수하신 분의 부고가 심심찮게 올라와 수명이 길어졌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 얼마 전의 한 부고가 언뜻 내 눈을 헷갈리게 했다. 101세에 돌아가신 분의 5남 3녀의 이름이 같아 보여 오자가 난 줄 알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흔치 않은 성에 이름의 끝자리가 모두 같아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항렬을 염두에 두고 지은 이름에, 우애 있게 살기를 바라는 돌아가신 분의 뜻도 담겨있는 것 같아 이름을 거듭 들여다보았다. 딸까지 돌림자를 넣어 지은 것으로 봐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할 때 상당히 깨신 어르신일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보았다. 손자, 손녀, 증손의 숫자도 헤아려 보았다. 무려 55명. 자손 번성 면에서 축복받은 집안 같았다.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지만, 손주의 삼 분의 이 이상이 영어 이름이다.

항렬이 혹여 고리타분한 옛 관례로 보일지라도, 부고란에 쭉 늘어선 자손들의 돌림자 이름에 아련한 향수를 느낀다. 항렬자 관계없이도 한 집안 딸들의 이름 끝자리를 '희' '숙' '자' 같은 것으로 통일해서 지었던 어린 시절의 이웃들 안부도 부쩍 궁금해진다.

한편 부고란을 보면 결혼과 출산 기피 현상이 높아지고 있는 현대인의 미래를 상상해 보게 된다. 열심히 일하고 여행 다니며 재미나게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나면 그만이지 꼭 결혼해야 되나? 애를 낳아야 하나? 부고 낼 필요가 뭐 있나? 라고 해도 어쩔 수는 없다. 남편, 아내 혹은 자손 대신에 친구나 친척 혹은 직장 동료끼리 떠나보내는 절차를 서로 밟아주게 될지도. 추세에 맞춰 모든 과정을 대신해 줄 대행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현대인의 모습이 알맹이를 빠트린 인생으로 보이는 내 기분 또한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자손 이름이 가득한 부고를 접하며 작은 감회에 젖는다. 그리고 한 역사가 사라져감을 느낀다. 백년의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으셨겠지만, 참 잘 살다 가신 인생길이었기를 바라며 잠시 내 눈을 붙잡았던 부고 속의 이름을 떠나보낸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