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11
전체:
1,292,110

이달의 작가
수필
2012.06.13 06:07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조회 수 1179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조그만 만화가게가 있었다. 학교가 파하면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내 발길이 그 쪽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만화방 벽면에는 탐정만화 순정만화 공상만화 무협지 등 정말 입맛대로 진열돼 있었는데 나는 순정만화와 공상만화를 즐겨 읽었다.

그날 나온 만화는 통독하다시피 했을 정도로 만화 맛에 홀딱 빠져 있었는데 가끔 집에까지 들고 와서 읽다가 엄마한테 혼이 나곤 했다.

그런데 학교 숙제나 과제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허둥대는 일이 잦아지자 엄마는 빌려온 만화책을 몽땅 아궁이에 쑤셔 넣어버렸다. 빌린 만화책을 돌려주지 않으면 돈을 물어내야 하는데 어린 내가 돈이 있을 리도 없고 결국 단골 만화가게를 포기하고 골목을 한참 돌아서 있는 만화가게까지 원정 가서 읽기 시작했다.

지금의 현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당시 만화 속의 로봇과 엄희자의 순정만화 속의 서양공주 모습을 꿈속의 연인처럼 책이고 노트고 빤한 구석이 없을 만큼 그려댔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도 그때 갚지 못한 만화책 값이 마음에 찜찜하게 남아있고 만화가가 되고 싶어했던 친구 오빠를 은근히 좋아했던 기억이 내 입가에 살며시 웃음을 번지게 한다.

그렇게 좋아하던 만화를 언제부터 멀리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만화가 아이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명작만화도 많이 보급돼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말 오랫동안 만화를 외면하고 지냈다.

대신에 소설을 즐겨 읽는다. 장편이나 단편소설을 사서 읽기도 하지만 국내외 문학지에 두 세편 실리는 단편도 재미있다. 한번 손에 쥐면 끝장을 보게 하는 '읽히는 힘'이 대단한 소설도 좋지만 사람 감질나게 하는 신문 연재소설도 좋다.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 중에는 아빠가 다른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며 겪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공지영의 '즐거운 우리집' 과 서문경과 반금련의 정사이야기를 빌어 어둡고 추악한 사회상을 폭로한 '반금련'은 잊혀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언젠가 신문만화를 본적은 있지만 지면이 아깝다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내용을 접한 후 만화가 그렇지 뭐 격하시키는 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중앙일보에 연재되는 만화 '국수의 신'은 범상치 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득한 경상도 사투리와 생동감 넘치는 그림도 좋지만 달관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어록이 매호 보석처럼 박혀있다.

놓친 전편들이 아까워 웹사이트 검색을 해 보았다. '국수의 신 중앙일보'라고 쳤더니 작가 박인권, 만화를 그린 지 37년,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국수의 신' 탄생 인기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대물' '쩐의 전쟁'의 원작자 등등…. 관련자료가 좌악 떠올랐다. 지난 호를 볼 수 있는 블로그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앱도 있다.

무엇보다 "스토리의 승부는 인간으로 귀결된다. '국수의 신'도 결국 국수를 만드는 인간의 얘기다"라는 작가의 말이 내내 마음을 적신다.

인간을 사랑하는 작가 정신과 탄탄하게 쌓아올린 작가의 내공이 만화라는 장르를 업그레이드 시킨 것 같다. 실력이 주는 힘이다.


-미주중앙일보 '삶의 향기' 2012. 6. 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57 수필 94세 시어머니 1 오연희 2006.05.09 1308
156 수필 그냥 주는데도 눈치 보면서 1 오연희 2008.12.01 1286
155 수필 좋은이웃 오연희 2009.04.10 1242
154 수필 인연 1 오연희 2006.07.20 1241
153 수필 너무맑아 슬픈하늘 오연희 2003.09.17 1209
152 수필 관계회복이 주는 기쁨 1 오연희 2009.04.10 1192
» 수필 만화 '국수의 신'을 읽는 재미 오연희 2012.06.13 1179
150 수필 고흐의 '밀밭'을 벽에 걸다 오연희 2012.07.12 1174
149 수필 멍청한 미국 샤핑몰 1 오연희 2004.08.09 1102
148 수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오연희 2003.07.23 1096
147 수필 공공 수영장의 백인 미녀 1 오연희 2012.08.10 1029
146 수필 양심의 소리 오연희 2004.01.14 1020
145 수필 [이 아침에] 엄마표 '해물 깻잎 김치전' 오연희 2013.02.15 994
144 수필 쥐뿔도 없지만 오연희 2012.05.25 990
143 수필 동거-결혼-이혼 오연희 2003.08.08 974
142 수필 장모누나 시언니 오연희 2012.03.20 937
141 수필 아들아! 오연희 2003.10.15 931
140 수필 "내가 뭐랬냐?" 오연희 2003.06.29 906
139 수필 발칙한 미국 할아버지 오연희 2003.10.02 888
138 수필 한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오연희 2003.06.30 88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Nex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