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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캐럴에 가슴 속 어디쯤 작은 파문이 인다. 성탄의 계절과 한해의 마지막이 갑자기 들이닥치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의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하지만 감상에 젖는 것은 잠깐이고 쇼핑을 서둘러야겠다는 현실의 일이 눈앞에 다가온다.

평소 고마웠던 분들에게 작은 성의라도 표해야지 별렀음에도 아차 하는 사이에 시기를 놓치고 만다. 막상 선물을 사려고 쇼핑장을 둘러봐도 마땅치가 않다. 풍요로운 물질 세상에 무엇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이 안 될 정도의 액수에 상대가 기뻐하는 물건이면 좋겠고 오래 기억될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런 선물을 고르는 것이 어렵다. 발품 팔아 산 선물에 예쁘게 포장까지 해서 전하면 더 좋지만 고민만 하다가 선물권 카드로 대신하기도 한다. 요즘은 그것이 더 효과적인 선물이 될 때가 있다.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나 선물권 카드를 전하게 되는 이들은 대부분 현재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래된 인연을 이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선물보다는 오히려 이 계절에 띄우는 한 장의 성탄카드이다. 일 년 동안의 소식을 간단하게 적고 그리운 마음을 실어서 보내는 일은 연말에 치러야 할 큰 숙제이다.

크건 작건 내 삶에 영향을 끼쳤던 이름들이 정겹다. 작년에 카드를 보낸 사람 중에는 이젠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이름이 있음을 새삼스레 발견한다. 떠난 이의 이름 앞에 머문다. 전생을 더듬듯이 그와의 지난 시간을 떠올린다. 서둘러야 할 일이 많음을 깨닫고 그와의 추억은 마음 저 안쪽으로 접어 넣는다. 새로 맞이하는 이름도 있다. 생명의 순환이 느껴진다.

선물시즌이 오면 오래 전의 한 이웃 미래엄마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미국 와서 우연히 다시 만난 기가 막힌 인연의 사람이다. 몇 해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다가 남편 직장 때문에 다른 주로 이사를 간 미래네. 이사 후에도 외동딸인 미래의 전학문제로 한참을 서로 소식을 주고받았다. 도와줘서 고맙다고 선물을 보내왔고 연말을 핑계 삼아 나도 작은 선물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인연에 대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런데 선물 잘 받았다는 말만 하고는 그만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았더니 선물만 쏙 빼고는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것이다. 선물 밑에 편지를 넣었던 나의 불찰이었다. 편지는 선물 위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한 순간이다. 내 정성이 날아가 버린 그때의 쓸쓸했던 심정이 되살아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주고받는 선물이나 편지는 마음 속에 담겨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구체화 시켜준다. 선물을 주고 싶다거나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즐거운 감정에 충실한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성탄과 연말연시 분위기에 편승한 들뜸 혹은 쓸쓸함, 자칫 한쪽으로 치우치지 아니하도록 스스로를 잘 다독여야 할 것 같다. 한 해를 무사히 건너온 것이 기적이라 믿으면 해가 가든 오든 즐거울 일 하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런 감정들에 묻히지는 않으리라.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2.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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