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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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3.06.29 13:11

"내가 뭐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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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입학할 대학을 결정한후 맞게 된 방학이라 참으로 홀가분한 기분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친척분들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드리고 사촌들이나 친구들과 여행도 하면서 신나게 지낸다고 소식을 보내왔다. 한국방문 3주간은 너무 짧다며 그렇게 아쉬워하던 아들녀석이 드디어 미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나는 딸이랑 아침비행기로 LA공항에 도착한다는 아들을 마중나가기 위해 서둘렀다. 간신히 시간에 맞추어 기다리고 있으려니 아들이 건강미가 넘치는 거무티티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으면서 나왔다. 그런데 혼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웬 예쁜 여자애랑 눈길을 맞추며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무척 궁금해 하면서도 이해심 많은 엄마인척 하느라고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짜식! 지네 아빠랑은 딴판이네..' 혼자 웃으면서 슬쩍 누구냐는 몸짓을 했다.

사연인즉, 인천공항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아들이랑 같은 자리 앉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공항직원한테 이야기를 하더라는 것이었다. 나와 딸은 어리벙했지만 두 녀석의 하는 양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한눈에 척 봐도 내 아들보다는 여러모로 한 수 위인 것 같았다. 얘! 쟤 여간내기 아닌거 같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한마디 했다간 괜히 구닥다리 엄마소리 들을까봐 침을 꿀꺽 삼켰다.

하여튼 11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한잠도 안자고 그 여자애랑 수다도 떨고 카드놀이도 하면서 지겹잖게 왔다고 하는걸 보니 아들녀석도 그 여자애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눈치였다. 그 여자애는 한국에서 옷 샤핑을 많이해서 짐이 많은데 픽엎할 사람이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사람이 올 때까지 옆에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우린 개념치 않는다는 듯한 여유있는 표정을 지으며 멀찍이 서서 기다려 주었다. 한참후 그 애를 픽엎할 사람이 오고 나서야 집으로 향할 수가 있었다.

이럭저럭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온 김에 밖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가면 어떻겠냐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LA도착 한시간 전에 비행기안에서 음식을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 음식도 그립고 하니 어디 가까운 멕시코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음식을 먹으면서 아들녀석은 한국생각이 난다며 킥킥대며 웃었다. 엄마! 가는 집들마다 “너 제일 좋아하는 것(음식)이 뭐니?” “다른 집에선 뭐 만난 것 해주디?” 하고 묻더라면서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말은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리곤 90세가 되신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손자에게 “배 안고프냐?” 묻곤 열심히 음식을 만드신다. 조금 있다가 잔뜩 차려와서는 요것 먹어라 조것 먹어라 정신 없이 권하신다. “아네..먹고 있어요.”.한마디 하면 그것이 또 신통방통 하다면서 호호호… 웃으시다가 또 한참 혼자서 중얼거리신다. 어지간히 배가불러 수저를 놓으면 “넌 왜 요롷게 조금먹냐 ? ” ”애비는 너만할 때 아주 많이 먹었는데…에구!.. 요즘 애들은 많이 안 먹어.. “ 부엌을 왔다갔다 하시면서 어찌나 중얼대시면서 분주하신지 손자는 정신이 없다. 아침 먹고 방에 들어오자마자 과일을 한 접시 깎아오셔선 “얘! 먹을래?” 하고 물으신다. “아뇨..괜찮아요!” 대답했지만 몇 분도 안돼서 아예 방안으로 과일접시를 쏘옥! 집어넣어 주신다. 할 수 없이 와작와작 한 접시를 비우고 나면 그 다음엔 아예 묻지도 않고 과자를 한 쟁반 담아선 방으로 쑥! 넣어 버린다면서 아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어머님께선 당신이 마흔이 훨씬넘어서 가진 늦둥이 막내 아들이 낳은 17세의 손자를 몇 년 만에 만나 흥분하셨던 모양이었다. 옛날 여성 치고도 유난히 작으신 어머님께선 워낙 연로하신데다가 얼마 전엔 화장실에서 미끄러지셔서 허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시고 계셨다. 더욱 왜소해 지셨을 어머님이 180센티미터가 넘는 장성한 막내 손자녀석을 만나곤 너무 좋으셔서 허리 아픈 것도 잊고 신나게 요리를 하신 모양이었다. 손자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것이 맛난 것 만들어 손자 입에 넣어주는 것 외에는 없었으리라.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니 가슴이 미어지면서 와락 그리움이 몰려왔다.

“너 할머니 심정 이해하니?” 하고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네 조금..” 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아참! 잊을 뻔 했다면서 할머니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TV 소리를 어찌나 크게 틀던지 잠을 설쳤노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님의 불편함을 안타까워 하는 듯한 아들의 표정을 보니 할머니의 사랑을 가슴 가득 담아온게 분명했다.

막내 손자가 스무살 안에 장가를 가면 어머님은 막내 증손자까지 안아보실 수도 있겠다는 계산을 해보았다. 그계산을 하다가 갑자기 아까 공항에서 만났던 그 예쁘장한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아들에게 "너 결혼 일찍 할 생각은 없냐? "하고 은근히 물었다. 엄만?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펄쩍 뛴다.
내가 뭐랬냐? 그냥 한번 물어본 것 뿐이데 말이다.







2003년 미주문학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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