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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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수필
2004.01.14 12:00

양심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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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틴에이저의 앳된 이미지를 벗고 제법 성인  태가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전하면서 두 번의 대형 교통사고를 냈기 때문에 차를 몰고 외출하는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처음 운전할 때 고등학생 이었던 딸은 일년 동안 별 사고 없이 차분하게 운전을 해왔다. 그러기에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하는 딸의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다가올 즈음이라 이미 가을 학기에 진학할 대학도 정해진 상태여서 참으로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날은 대학가서 공부하기에 벅찰듯한 한 과목을 미리 하고 싶다는 딸과 함께 가까운 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딸은 프리웨이를 운전하던 중 사는 동네가 가까워 오자 출구로 나가려고 맨 오른쪽 차선에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차선에 있던 차가 갑자기 신호도 넣지 않고 몇 개의 차선을 가로질러 딸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아마도 그 뛰어든 차는 일차선을 달리다 보니까 갑자기 자신이 내려야 될 곳의 사인판을 보고는 놀라 맨 오른쪽 차선으로 급하게 진입하던 중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급박한 상황을 알아차린 딸이 급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조금 늦어 그만 딸 차가 앞차의 왼편 뒤쪽을 들이박고 말았다. 그 충돌로 앞차는 왼편 뒤쪽이 부서지고 딸 차는 에어백이 터지면서 차는 완전히 박살이 났다. 프리웨이를 빠르게 달려오는 차들 사이에 사고 난 두 차가 막고 있으니 사람들이 내려서 차를 옆으로 밀어내야 된다고 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황한 우린 그들이 하는 데로 보고만 있었다.

신호도 없이 무지막지하게 끼어 들었던 차주는 얼굴에 미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너무도 죄스러워 하는 차주를 보니 딱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그 사람의 잘못으로 알고 별 생각 없이 보험회사에 사고 경위를 보고만 하고 끝냈다.
그런데 어이가 없는 소식이 들여왔다. 끼어든 그 차주가 돌아서자마자 변호사를 사서는 딴소리를 한 것이었다. 그냥 자신들이 맨 오른쪽 차선을 드라이브 하고 있는데 딸의 차가 와서 들이박았다고 보고를 한 것이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변호사를 찾아서 맞고소를 했지만 대체로 사고가 나면 뒷차 책임이라는 일반론에 어긋남이 없이 51대 49로 패하고 말았다.

끼어든 것을 증명할 길이 없으니 가슴 아리지만 사노라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겠거니 위로하면서 잊기로 했다. 하지만 늘 상대 차주의 진실하지 못한 마음을 생각하노라면 약빠르지 못했던 우리 자신에게 화가 나고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월 속에 그때의 그 속상했던 순간도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며칠 전 딸이 다시 사고를 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딸이 신호를 넣지 않고 다른 차 앞에 끼어 드는 바람에 충돌사고가 난 것이다. 처음에 딸은 지난번 일도 있고 하니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딱 잡아떼었다. 너무도 당당하게 뒤에서 박은 차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뒷차 잘못이라고 너무도 단호하게 말하던 딸이 하루가 지나자 얼굴에 그 당당함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 와서 아무래도 자신이 잘못한 거 같다며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딸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그만 지고 만 것이 분명했다. 보험회사에서 사고경위를 조사하기 위하여 사고 리포트를 전화상으로 녹음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고백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서는 그만 우울증에 빠져버렸다.

나는 솔직히 딸의 그 고백이 못내 아쉽고 속상했다. 하지만 일생 동안 거짓말 했다는 자책감에서 사느니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딸에게 말했다.
“현아! 세상 살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 앞에 서게 되는데 그나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쉬운 거란다. 돈 걱정은 하지 마라! 부자는 아니지만 오른 보험료 낼 형편은 된단다. 그리고 정말 힘드는 일은 돈이 있어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지”
나의 위로에 딸은 어느 정도 우울한 마음이 걷히게 되었다. 하지만 딸과 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마음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주위 사람들이 변호사를 쓰라고 권하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의 흔들림이 다소 있기도 했지만 다시 거짓말을 해야 되는 일은 더욱 괴로운 일임을 아는지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분명히 당한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뭔가 남에게 당하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가끔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을 수는 없을까? 딸의 심정을 이해하고 기특해 하면서도 약지 못한 딸에게 괜히 짜증이 나는 도대체 딸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걸까?


미주개혁신학대학원
5학기과목:'뉴욕문학'의 문제 (수필쓰기)
2006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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