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94세 시어머니

posted May 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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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94세 시어머니'


한국에 사시는 나의 시어머님은 올해 94세시다. 너댓 발자국 걸으면 일단 멈춰 허리 한번 펴야 할 정도로 힘드셔서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신다.하지만 가끔 전화를 드리면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음성은 어찌나 카랑카랑한지 백 살은 거뜬할 것 같다. 장수하는 집안 전통도 그렇지만 성품이 워낙 낙천적이셔서 95세에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기록을 깨고도 남을 거라는 친척 분들의 의견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 70세를 바라보는 큰 시누이 말에 의하면 건강상태가 딸인 자기보다 낫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조금 이상하다. 전화를 드리면 내가 하는 말은 무시하고 당신 할 말만 실컷 쏟아놓고는 뚝 끊어버리는 것이다. 그 할 말이라는 것이 주로 ‘애들 잘 있냐’ ‘애비는 건강하냐’ ‘네가 고생이 많다’ 등등 주로 안부의 말이지만, 여하튼 예전의 서로 주고받던 대화 흐름은 전혀 아니다. 다시 전화를 드리면 귀가 잘 안 들리는 어머님이 TV을 하도 크게 틀어놓아 온 집안이 떠나간다는 사연을 시작으로 시누이의 하소연이 늘어진다. 어머니…
막내아들 밥해준다고 와 계시던 아파트 공터 텃밭은 어머니 세상이셨다. 내가 시집와 보니 새벽녘이면 신주단지처럼 요강을 껴안고 텃밭에 나가 가시지 않은 가족의 온기를 골고루 뿌려주며 흙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렇게 해마다 온갖 야채를 심어 백김치, 통김치, 열무김치, 총각김치 한껏 담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시는데 그 중에서도 맛이 폭 배인 백김치의 싸르르한 맛은 요즘말로 ‘인기 짱’ 이었다.
일흔이 넘은 그 당시에도 노래 부르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시는지 소녀처럼 ‘아 아~’ 하면서 발성연습을 하셨다. 지나가던 이웃이 누구 음성이 그렇게 곱냐고 물으면 ‘아...네…우리 막내 메눌 아기에요.” 하시면서 까르륵 웃으셨다.
외동딸로 곱게 자라신 어머니는 수양아들이 내 몰라라 하는 당신의 친정어머니를 모셔와 대소변 받아내는 병 수발을 십수년 하셨다. 그로 인해 시로부터 효부상을 받으셨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찬장 정리하다가 상으로 탄 찬합 세트에 새겨진 글을 보고 여쭈었더니 자신의 어머니 모신 것이 무슨 자랑이냐고 되려 부끄러워 하셨다.
막내 아들이 가족 데리고 미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 나오신 어머님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당신 생전 다시 만날 수 있겠냐며 울음을 삼키시던 어머니. 세월이 좋아 비행기는 휙휙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를 수시로 날라다주어 올 때마다 감격하셨다. 그러나 보낼 때는 또 이것이 마지막인 듯 만져보고 또 만져보며 애닯은 눈으로 바라보셨다.
“멀리 사는 자식은 자식도 아니에요”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하면 “아니야, 건강하게 살아만 있으면 그것이 효도야”하시며 일본 간 뒤 십 수년째 행방불명 된 당신의 둘째 아들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해 이맘때쯤 한국 가서 어머님을 뵈었다. 옛날 분 치고도 유난히 체구가 작으신데다 허리가 완전히 꼬부라지셔서 소파에 올라 앉아 몸을 웅크리고 있을 때는 조그만 공 같았다. 큰절을 하고 가까이 가서 껴안으려는데 몸이 폭 사그라질 듯 가냘프고 생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 늙어 추해진 당신의 모습 남에게 보이기 싫다 시며 문 밖에 나서기도 꺼려하셨다.
귀가 잘 들리지를 않으니 무슨 말을 하나 눈만 끔뻑 끔뻑 하시다가 그 마저도 곧 힘을 잃었다. 어머니도 5월의 장미 같은 고운 시절이 있었을까? 부드러운 음성으로 아아 노래를 불렀을까? 사랑하는 가족에게 맛난 음식 먹이려고 부엌을 날라 다니셨을까? 매일 아침 설탕과 프림을 가득 넣은 초이스 커피를 마시며 “카!” 소리를 내셨을까? 텃밭에 지린내 난다고 투덜거리던 이웃이 백김치 다시 얻으러 왔을 때, 돌아서서 웃으셨을까? 어머니…


한국일보 문인광장
2007 1.23 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