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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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5 19:44

실버타운 가는 친정엄마

조회 수 33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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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 나면 할 일이 부쩍 많아진다. 사무실 일이나 남편 식사 같은 일상의 일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놓고 싶어, 또 한국 지인들에게 줄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할까 싶어 내내 동동거린다. 여기에 더해 평소 안 하던 일까지 꼭 해놓고 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더 분주하다. 서랍장 정리가 그중 하나다. 눈에 보이는 거야 한 군데로 몰아 놓으면 되지만, 문제는 부엌 서랍장, 옷 서랍장, 책상 서랍장 등등.

보이지 않는 데가 은근히 켕긴다. 정리정돈을 잘하지 못하는 나는 한국 갈 때마다 심각하게 각성하지만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뭉개버리고 만다. 그런 내가 친정집 정리해 주러 한국에 간다.

그 집은 추억 가득 담긴 나의 집이기도 하다. 우리 다섯 남매가 자라고, 결혼하고, 엄마.아버지의 환갑, 칠순, 팔순 잔치까지 했던 집. 안방 다락에는 미국 올 때 맡겨놓은 우리 살림살이도 한 귀퉁이 잘 차지하고 있는 내 마음의 집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홀로 집을 지키는 엄마, 지난 겨울 계단에서 넘어져 한참을 병원 신세지더니 그렇게 미루던 실버타운행을 결정하셨다. 몇 해 전부터 권했지만 '짐 정리는 우짜노'라며 걱정이 늘어지길래 '내가 도와주러 나갈 테니 걱정 마세요' 라고 안심시켜 드렸는데 바로 그날이 온 것이다.

'힘들 낀데 뭐하러 오노?' 말씀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청 좋아하신다. 내가 짐 정리해 준다고 했잖아, 생색 좀 냈더니 '버릴 것밖에 없어. 몸만 가는 거야' 라신다. 호되게 아프고 나서 마음 정리가 많이 된 것 같다. 엄마 음성이 어찌나 홀가분하게 느껴지던지, 내 마음이 다 시원해진다. 서랍장마다 가득 찬 우리집 살림도 다 버려지는 거구나, 소중하게 잘 사용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리하는데 워낙 소질이 없는 데다 짐을 어떻게 버리는지 한국 상황도 모르는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만, 옛집에서 엄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는 데 의미를 두려고 한다. 엄마는 '내가 빨리 가야 너그들이 고생 안 할낀데 내가 짐이구나' 맨날 하시는 말씀 또 되풀이할 것이다. '왜 그런 생각 하세요. 엄마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삶이라구요.' 나는 또 위로의 말을 건넬 것이다. 무엇보다 짐 정리 하면서 많은 추억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친정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실감하게 될 것이다.

한국 간다니까 우리 네 자매 오랜만에 뻐근한 모임 좀 해야 하지 않냐, 강원도 여행이 어떠냐, 종로에 무슨 뷔페는 어떠냐, 완전히 딴 동네 이야기가 카톡방에서 오가고 있다. 한국 사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텐데 무슨 짐 정리? 자기들끼리 킥킥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암튼 나는 약속대로 짐 정리하러 간다고 공식 선언했다.

우리 결혼할 때만 해도 정정하셨던 양가 어른들, 이제 엄마 한 분 생존해 계신다. 한국 갈 일이 점점 뜸해지고 있다. 엄마 살아계시는 한국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살아 계심만으로 가치를 지니는 존재, 엄마 뵈러 한국 간다.

미주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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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예년 2015.11.16 17:46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납니다
    4일 쓰신글이니...
    좋은 추억 많이 쌓고 오셨지요?
  • 오연희 2015.11.25 10:51

    아...예년님...
    제가 이글 쓰고 바로 한국 갔다가 어제 돌아왔어요.
    스케줄이 빡빡해서 지인들 만남 제대로 다 못하고 부랴부랴
    미국으로 돌아왔어요.
    엄마는 실버타운 적기에 잘 들어가셨구요.
    경치도 환경도 좋아 네 자매 모두 나도 늙어면 여기 오고 싶다고
    이구동성 입을 댔으니까요. 다음에 예년님 만나 주실라나?

    제 얼굴 잊어버리셨을텐데...우리 만났던 그때가 언제에요? 도대체...세월도..참..
    늘 건강하시고 사업번창하시구요.^^

  • 김예년 2015.12.06 20:18

    하는거 없는데 바뻐서 이제서 글 봤습니다

    죄송합니다.ㅎㅎ

    반나뵐때가 있겠죠,,,

  • 오연희 2015.12.07 10:37
    예정 날짜보다 늦게 엄마가 실버타운 입주하는 바람에
    지인들 만날 시간이 없어서 전화로 대신 했는데
    잠시 한국 나가사는 이웃 분 만나기로 약속해놓고
    이런바보가 한국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은 거에요.
    상대는 눈빠지게 기다리고...엄청 섭섭해 하더라구요.
    가기 전에 전화번호 여쭤볼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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