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꽉 막힌 도로와 한국 정치

posted Nov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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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소설보다 더 기묘하다'고 했던가. 요즘 한국 소식을 듣다 보면 하도 기묘해 진실 같지가 않다. 미국 온 이래로 집에서든 차에서든 한국 뉴스에 이렇게 귀를 세웠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미국 생활의 동반자인 차, 기계치에 길치인 나는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는다고 차가 움직인다는 것이 늘 신기하다. 차의 구조와 이치를 누누이 설명해줘도, 길을 잘못 들었을 때의 대처방안을 수없이 들어도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만 하다. 그 방면으로 앞뒤가 꽉 막힌 내가 목적지를 향해 오늘도 달린다. 달리며 우리 인생의 얼마나 많은 순간을 차 안에서 보내고 있는지, 차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행사가 줄을 잇는 연말에는 코리아타운 나갈 일이 잦다. 차량이 부쩍 많아진 로컬 길, 시간을 좀 더 잡고 길을 나서야 하는데 어영부영하다가 또 급하다. 프리웨이만 올라타면 금방이야,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힌다. 프리웨이 역시 밀린다는 것을 진입한 후에야 깨닫는 어리석음이라니. 거대한 주차장을 연상케 할 만큼 꽉 찬, 슬슬 기어가는 차들 저쪽 편에 고장 난 차를 한쪽으로 밀기 위해 애쓰는 경찰 모습이 언뜻 보인다.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어느 여름날의 110번 프리웨이를 떠올린다. 속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길래 걱정스레 앞쪽을 살폈다. 빨강 파랑등 번쩍이는 경찰차가 프리웨이 6차선을 지그재그로 나아가며 차량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과감하지 못한 나는 10번 프리웨이 푯말이 보이기 시작하면 출구 차선으로 미리 들어간다. 출구가 가까워져 오면 옆 차선으로 빠르게 달려오던 차들이 끼어들기를 시작한다. 머리 디밀고 들어오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들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적당하게 양보를 해준다. 길을 잘 몰랐거나 다급한 일이 있어서겠지 혹은 내 남편과 아이들도 가끔 저러겠지,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리다 보면 코리아타운 로컬 길로 꼬부라진다.

평소의 배가 걸려 다다른 코리아타운, 오는 내내 차창 밖의 상황을 유심히 살피면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 소식에 귀를 활짝 열고 있다. 연말 만남, 한국 상황에 빗댄 농담을 하면서도 씁쓸함을 감출 길 없는 지인들의 표정이 한국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럽다. 정치라면 '까막눈' 수준인 나도 작금의 한국 소식에 속이 부글거리다가 점점 걱정으로 돌아선다.

정치의 '정'은 바르다와 일을 하다가 합쳐서 이루어진 말이고, '치'는 물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기계치 길치인 내가 원하는 곳을 잘 찾아다닐 수 있는 것은 도로 표지판과 신호등도 있지만, 차들이 너무 달리면 못 달리게 조절하고 막히면 뚫어주는 경찰의 역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티켓도 발부하지만 결국은 전체 차량의 안전을 다스리는 것, 바르게 되어져 가도록 잘 수습한다는 의미에서 이것도 정치의 한 부분이 아닐까.

정치, 단어가 무거우면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난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싶다.




미주 중앙일보 <이 아침에> 2016.11.29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NEWS&source=LA&category=opinion&art_id=4806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