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함께 밥 먹는다는 인연의 대단함

posted Jan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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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만 지나면 조금 한가해지겠지, 기대하는 심정으로 새해를 맞았는데 1월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작년에도 그랬다.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닌가 조바심 내보기도 하지만, 필연에 무게를 두니 대부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 가슴 뿌듯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교회 식당 밥 짓는 봉사다.

토요일 아침 새벽 예배 후 부엌으로 직진해서 20파운드짜리 쌀 봉지들을 꺼낸다. 봉지 위를 풀거나 잘라 큰 양푼이에 쏟아 놓고 수돗물을 튼다. 중금속이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까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는 의견과 대충 씻어도 된다는 의견이 있지만, 부엌일에 일가견이 있는 권사님의 말을 좇아 깨끗하게 씻는 편을 택했다. 바퀴 달린 카트 위에 엄청나게 큰 냄비를 올려놓고 씻은 쌀을 퍼담아 냉장고로 밀어 넣는다. 1~3부 예배 시간에 맞춰 세 차례 밥을 지어야 하므로 미리 씻어 준비해 두는 것이다.

주일 이른 새벽, 먼저 1부를 위해 세 개의 커다란 밥솥에 망을 깔고 바가지로 쌀을 퍼 넣고 정수기 물을 붓는다. 질지도 되지도 않은 밥을 짓기 위해 손을 펴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물의 양을 가늠한다. 됐다, 싶으면 망으로 쌀을 감싸 안듯 덮고 뚜껑을 닫은 후 솥 아래 장착된 두 개의 스위치를 동시에 눌러 가스 불을 켠다. 따닥 소리와 함께 구멍 사이로 불빛을 확인하고 오가며 밥이 익어가는 밥솥에 마음을 둔다. 솥에서 방금 퍼낸 밥 냄새, 밥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사이로 아련한 그리움이 솔솔 피어오른다.

'밥상머리 추억'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듯이, 우린 밥과 함께 성장했다. 이땅을 떠난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이 함께 출연하는 가장 따뜻한 무대, 밥을 먹으며 나누었던 이야기나 밥과 관련한 대화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 때가 있다. 난 정말 보리밥이 싫었다. 아버지와 오빠 밥은 하얀 쌀밥이고 우리 딸들은 쌀이 보일락말락한 보리밥, 엄마는 쌀이 전혀 없는 꽁보리밥이었다. 어린 나는 쌀이 적게 섞인 것에 수시로 불평했다. 보리밥이 쌀밥보다 입맛이 거칠기도 했지만, 방귀가 잦은 것이 더 싫었다. 마침 방귀가 나오길래 '신체건강이가 잘 안될라 칸다~' 하며 울상을 지었다. 나는 정말 심각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엄마 아버지가 '하하하'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 같다. 교회에서 먹는 밥은 특별하다. 예배시간이 달라 대면이 어려울지라도 한 식구가 되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혼밥'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는 세상에 소박한 밥 한 끼로 삶을 함께하는 것이다. 한국인인 우리가 미국까지 와서 일주일에 한 번 같은 말씀 듣고 같은 밥 먹는 사이, 쉽지 않은 인연이다.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식탁에 앉아 활짝 핀 표정으로 조잘대는 사람들, 밥 앞에 찡그리는 얼굴은 드물다.

환절기에는 돌아가시는 분이 많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1월 들어 슬픈 소식이 더 많이 들린다. 같은 밥 먹던 사람들의 떠남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새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모두 밥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새해 새 봉사자들의 섬기는 손길에 축복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미주 중앙일보 < 이 아침에> 2017.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