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by오연희

관계회복이 주는 기쁨

posted Apr 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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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계시는 분에게 가장 힘드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언어와 문화의 차이 운운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관계'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오지에서 조차 가장 힘드는 부분이 '관계'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는 말씀이셨다.


  '관계'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을 그만둬야 했던 친구가 있다. 절친하게 지내던 이웃과 혹은 친구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며 어떻게 처신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도 종종 듣는다. 참으로 '관계의 어려움'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우리 모두의 '화두'다.


선교사는 선교에 충실하면 될 것이고 직장인은 업무능력이 뛰어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 실무적인 일에 더하여 원만한 '관계'를 가져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꺼떡대다가는 큰 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런저런 일들을 통해 많이 깨닫게 된다.


스스로 믿었던 그 능력이라는 것도 사실은 별게 아닐 수도 있다. 경쟁시대에 뒤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PR해야 하는 세월이긴 하지만 어떤 일과 관련된 사람의 가치는 사실 남이 평가하는 것이다. 덕스러운 인격과 함께한 '관계'의 능력이 포함돼야 진정한 평가가 될 것 같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족처럼 늘 얼굴을 맞대야 하는 사이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애써 회복시켜야 되는 관계는 피하게 된다.


직장동료 교우 혹은 자신이 속한 어떤 모임이라도 가족은 아니지만 내 삶에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데도 관계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를 꺼린다. 좋은 마음으로 시도했다가 되려 일이 꼬일까봐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잘 해 보려는 마음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너무 멀리 와 버리면 잘 해보려는 마음도 없어지고 편안하지 않은 그대로 그냥 굴러간다.


어릴 때는 친구와 하루에도 몇 번씩 티격 대며 싸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죽자고 붙어 다녔는데 어른이 되면 쉽지 않다. 한번 어긋나버리면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지를 못한다. '관계'의 어려움에 있어서는 남녀가 따로 있을 수 없지만 요즘은 여자들이 통하면 남편들끼리도 그리고 아이들도 가깝게 지내는 추세다. 아들만 있는 가정은 며느리들이 친해야 가정이 평안하다. 이처럼 많은 부분 관계의 중심에 서있는 여자로서의 역할을 생각할 때마다 나와 인연이 닿은 사람들과의 좋은 관계를 지속적으로 잘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려움은 늘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책을 많이 읽거나 신앙이 좋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해결능력이 있을 것 같지만 가까이 가보면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역시 비슷하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결국 호흡하고 있는 동안은 늘 '관계'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간다는 이야기다. 관계개선을 위한 좋은 책도 강의도 많지만 만남의 역사가 타고난 성품이 그리고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비결은 드물 것이다.


결국 즐거운 삶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지만 좋은 인연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것이기에 겸손히 나를 낮추고 관계의 기쁨을 누릴만한 좋은 생각들을 품도록 노력해야겠다.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 2009년 3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