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주인, 떨다

2006.12.17 09:02

이윤홍 조회 수:130 추천:27

  마켓주인, 떨다

       조용한 아이였다. 너무나 조용해서, 손님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띵-똥- 울리는
     촤임벨이 없었다면 언제 들어왔다 언제 나갔는지도 모를 아이였다. 눈이 크고
     동그스름한 얼굴이 같은 나이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앳되보였다.
       처음 그 아이가 마켓에 들어 왔을 때 꼭 나만한 키에 멜빵을 매고 있었는데
     그 멜빵을 보는순간 가위로 싹뚝- 잘라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었다. 나도 한 2미터는
    충분히 자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렇게 오척 단신인 이유는 어린시절
    내내 줄기차게 매고있던 멜빵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않기 때문이였다. 저 아이도
    나처럼 멜빵에 눌려 키가 크지못하면 어떻허나하는 생각이들자 그 아이와 나 사이에
    어떤 친밀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날부터 나는 그 아이가 오면 오늘은 키가 좀더 자랐는지, 그대로인지 아니면 키가
    줄어들었는지를 눈여겨 보게 되었는데, 놀라웁게도, 참으로 놀라웁게도, 그 아이는
    멜빵의 무게와 구속을 전혀 못느끼는지 하루가 다르게 마구 커가는 것이였다.
    그 아이의 키크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들어야 했는데
    급기야는 머리 바로위의 하늘을 올려다보듯 고개를 90도로 꺽어 그 아이를 쳐다
    보아야 했다.  허-참-. 하긴, 사람 사는일엔 어디서나 예외가 있지 않은가. 하물며
    키크는 일에 있어서랴.
     그런데 그때부터 아이의 옷차림이나 행동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날이 갈 수록 눈에 거슬렸다. 멜빵을 풀어서 손목에 칭칭감고 헐렁한 바지는 엉덩이
    저 아래 똥구멍이 보이는 곳에다 걸쳐입고는 사내녀석들과 계집아이들을 한 떼거리
    로 몰고와서는 마켓안을 휘집고 다녔다. 어떤 때는 계집아이들을 껴안고 카운터 앞
    에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히히낙락 거렸고 나를 부르는 호칭도 변했다. 전에는
    공손히 미스터, 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호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망할자식,
    내가 왜 호미냐, 곡갱이는 아니고?)
      그날 밤 늦게 그아이가 대여섯 명의 제 또래들과 마켓안으로 들어왔다.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켓에서 단련된 나의 직감은 무섭다. 그때
    나는 한 손님과 이야기 중이였는데 아이들이 몰려 들어오는 순간 나는 백개의 눈이
    달린 거인이되어 녀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네명이 그 아이앞으로 몰려
    들고 녀석이 무엇인가를 빤스 속으로 집어넣는 순간, 나는 벼락치듯 고함을 지르며
    달려 들었고 빤스속의 물건을 냅다 낚아챘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릉 거렸다.
    한번만 더 이딴짓을 하면 손목아지를 분질러 버리겠다고, 너같은 놈은 마켓을,
    아니 지구를 떠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흥분한 순간부터 나는 순 우리말로
    떠들어댔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멍- 해졌다.) 나는 아이를 밀었다. 얼떨결에
    문밖으로 밀려난 아이가 문기둥을 붙잡고 완강히버티기 시작했다.나는 아이를
    노려 보았다. 아이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다시 소리를 냅다 질렀다. 다시는
    오지말라고(이것도 순 우리말로)  아이는 What? What? 하면서 나를 노려보더니
    홱 몸을 돌려 마켓 모퉁이로 사라졌다.
     손님도 가고 아이들도 모두 가고난 뒤 나는 흥분된 마음을 수그려트리며 그 아이
    가 사라진 어둠속을 바라보았다. 왜 나는 필요이상으로  그 아이에게 거칠게
    대했을까. 그럴 마음은 전혀 아니였는데. 아, 나쁜녀석 같으니라구. 그러자 그
    아이가 정말로 나쁜녀석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꿈을 꾸었다. 그 아이가 마켓에 구멍을 뚫고 들어와 거대한 빤스 속으로 물건을
    마구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내 얼굴위로 자신의 얼굴을 바짝바짝
    들이 밀었다. 나는 도망칠려고 발버둥치다가 코를 골고있는 아내의 얼굴을 들이
    받았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내의 코피가 마켓을
    뒤덮기 시작했다.
      다음날 나는 하루종일 아이를 기다렸다.띵-똥- 소리만 나면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후가 다 지나도록 아이는 오지 않았다. 아이가 오지않자 나는 더 초조
    해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아이가 와야 하는데,
    와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저녘 한가한 무렵, 문 가까이에 있는 야채 진열대옆에 서 있던 나는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아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It,s me. It,s me. 그 아이가 나보다
    더 떨고 있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나의 떨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살아지고 나는
    아주 부드럽고 여유있게 아이더러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아이는 쭈빗쭈빗 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아이의 한 손이 호주머니속에서 무엇인가를 꽊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나의 온몸이 긴장으로 저려오기 시작했다. 손안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총. 단
    한 발이 장전되어있는. 총 소리도 크지않은. 10대의 어린 갱들이 갖고 다닌다는 그 총.
    그 아이가 손을 꺼내는 순간 나는 황야의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 보다 더 빠르게 캔디
    진열대 뒤로 몸을 굴렸다. 아이가 손바닥을 활짝 펴 보였다. 하얀 알약 두 개가 보였다.
    나는 옷을 툭툭털고 일어서며 씨-익- 웃었다.(시가를 물고 있었으면 더 좋았을걸.)
     아이는 자기가 지금 신경쇠약 치료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어젯밤에는 한 잠도 못
    잤다고 그래서 학교도 못 갔다고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나는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는 의젓하게 아이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괜찮다고, 언제든지 다시
    와도 된다고, 전 처럼 하루에도 열두 번 씩 다시와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가
    겁먹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혹시 경찰에 신고하지는 않았는지를 물었다. 나는
    이깟일로는 신고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이의 등을 도닥거렸다.
     아이가 $ 1.00을 꺼내더니 .5센트 짜리 캔디를 다 사고 싶다고 했다. 이제 막 14살이 된
    안토니가 허리를  굽혀 캔디를 고르고 있는 동안 나는 멜빵끈에서 해방되어
    키만 훌적 커버린 아이가 혼란스러운 사춘기를 지나가고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내, 안토니, 그 깟일로 떨긴, 쨔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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