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곰
2008.02.14 09:28
백곰
해가 지기도 전에 산은 빗장을 걸었다
한치앞 가늠없이 편편편편片片- 흩날리는 하늘에 마을은 자꾸만 작아지고 깊어지고
창문마다 켜있는 한없이 순한 불빛들 사이로
눈발을 가늠하는 달뜬 눈동자들
이런 밤에는
산골짜기 마다마다 산봉우리 마다마다
둥둥둥 흰 북소리 울리고
눈보다 더 희디흰 백곰이 내려와
점 찍은 처녀 달랑 등에업고 간다했으나
해마다 풍문은 풍문이였을 뿐
언듯 동구밖지나 산 넘어가던 희끗한 그림자에
늙어만 간 긴- 한숨들
오늘밤,
이렇게 숫눈발이 쏱아지는 오늘밤엔
천년전설의 길고 긴 마지막 회랑回廊을 돌아
백곰은 온다 했는데
백곰은 온다 했는데
오호, 한마리재빠르게처녀손잡고눈발속으로사라지고
오호, 한마리재빠르게처녀허리껴않고눈발속으로사라지고
오호, 한마리기웃기웃거리다처녀손에낚아채어눈발속으로사라지고
오호, 오호,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릴 수 있는지
밤새도록 산마을 돌고돌다
그만 딱 마주친 저 풋풋한 초경의 인디안 처녀
오호, 나는 그만 한마리 백곰이되어
발목까지 빠지는 설원을 넘어질듯 뒹굴듯 사라지는 거였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22 | 구월 | 이윤홍 | 2008.08.31 | 907 |
221 | 오늘도 나는 그리움을 그린다 | 이윤홍 | 2008.08.13 | 1153 |
220 | 거울 | 이윤홍 | 2008.08.11 | 964 |
219 | 봄 개울에다, 나는 아기를 낳고 싶다 | 이윤홍 | 2008.03.21 | 1128 |
218 | 당신의 판소리엔 길이 없다 | 이윤홍 | 2008.03.19 | 964 |
217 | 살아가는 일도 사랑하는 일만큼이나 | 이윤홍 | 2008.03.18 | 929 |
216 | 고요함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 이윤홍 | 2008.03.17 | 960 |
215 | 삼월 -2- | 이윤홍 | 2008.02.26 | 665 |
214 | 삼월 -1- | 이윤홍 | 2008.02.26 | 545 |
213 | 야외미사 | 이윤홍 | 2008.02.14 | 581 |
» | 백곰 | 이윤홍 | 2008.02.14 | 612 |
211 | 폐광촌 | 이윤홍 | 2008.02.14 | 641 |
210 | 네 잎 클로버 | 이윤홍 | 2007.12.30 | 872 |
209 | 책의 향기 | 이윤홍 | 2007.12.27 | 734 |
208 | 나뭇잎, 그 배면을 보다 | 이윤홍 | 2007.11.21 | 648 |
207 | 물방울 하나 | 이윤홍 | 2007.11.21 | 779 |
206 | 소리 | 이윤홍 | 2007.11.21 | 628 |
205 | 물 | 이윤홍 | 2007.11.21 | 560 |
204 | 할머니의 십자가, 성당 찾아가는 길 | 이윤홍 | 2007.03.13 | 807 |
203 | 3월, 한 해의 첫 달 | 이윤홍 | 2007.03.13 | 6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