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 일요일 아침의

2007.02.03 02:12

이윤홍 조회 수:399 추천:31



      가로수, 일요일 아침의
      


      평소보다 더 이른 일요일 아침, 손을 흔들며 레지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집을 나서고 나는 마켓으로 차를 돌린다. 주중내내 차량의 물결로 뒤덮히던 대로도
    한가하고 길을 오가는 보행자 하나 보이지않는다. 오늘 만큼은 조금은 게으름 피어도
    좋은 나의 아미고들이 아침잠에 포근히 잠겨있는 동네를 바라보며 이곳에도 이처럼
    평온한 시간이 있음을 새삼스레 느낀다. 나는 마켓뒤 파킹랏에 차를 세우고 내 마켓앞을
    지나 천천히 걸으며 옆 건물의 커피샾으로 향한다.
      구월을 지나가는 가로수들이 쉴새없이 꽃잎을 날리고 아직 노랗게 물들지않은 잎들에
    게도 간간히 손을 놓고있다. 내 마켓 바로 앞에 서 있는 두 그루의 가로수. 계절의 이 때
    쯤이면 둘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하루종일 붉은 꽃을 날린다. 재작년 봄이였던가,
    그 중 하나가 후진하던 컨데이너 차에 받혀 길가로 뻗은 왕가지를 부러뜨리고 몸에 큰
    상처를 입었었는데 그 후유증인지 그 해 내내 나무는 심한 몸살을 앓는것 같았다.
    바로 옆 나무는 허공으로 길을 찾아 전선줄을 덮고 내 마켓벽 한 면을 가릴만큼 꽃과
    잎을 무성히 피워냈지만 차에 받힌 나무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작년에도 잎만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던것이 올해에는 더는 견딜 수 없다는듯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전보다 열배도 넘는 꽃잎을 피워내고있다. 하룻밤 사이에 떨어진 꽃잎과 낙엽들이
    포도(鋪道)를 덮고있다.
      낙엽 하나를 집어든다. 전신이 노랗게 물들기에는 이른, 그러나 초록의 계절을 지나가
    고 있는, 반은 노랗고 반은 아직도 초록인 나뭇잎. 때가 와 떨어지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때가 오고 있음을 알아 스스로 제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참 아름답다. 그 속에서 한 계절
    이 가고 한 계절이 오고있는 것을 본다.
      마켓을 벗어나 길위에 서서 가로수 아래로 수북히 쌓이는 꽃과 낙엽들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정취를 느끼게 하고 사색에 잠기게하고 시상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이 생업에
    끼어들려고 할 때는 참으로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되고만다. 오늘처럼 마켓문을 열기 전
    커피를 사러가며 바라보는 가로수와 마켓문을 연후의 가로수는 어찌 그리 다른지 나는
    내 생각이 너무도 진중(鎭重)하지 못함을 스스로 자책하곤 한다.
      밤 사이 마켓 문앞에 몰려와 있는 낙엽들. 잠시 그들을 잊어버리고 다른 일에 한 눈을
    팔고있는 사이 대형트럭이나 버스가 엄청난 바람을 몰고 지나가는 순간이면 마켓입구는
    난리가 난다. 그럴 때면 나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하루에도 몇번씩 나무를 벤다. 가지를
    하나씩 쳐내다가는 밑둥까지 싹-뚝- 자르고 들어와서는 시간이 지날 수록 편안한 마음
   보다 불안한 마음이 산같이 커지고 얻은 것 보다는 잃은 것이 훨씬 더 많다는 후회가
   서해안 밀물처럼 밀려와 나는 다시 밖으로 나가 나무를 어루만지며 마음의 시퍼런 칼을
   멀리 던져 버리는것이다. 그리고나면 나무는 꽃과 잎으로 나를 감싸려는듯 전 보다 더
   맹렬히 꽃을 날리고 잎을 떨군다.
      갓 뽑아낸 커피의 구수한 냄새를 맡으며 한 모금 들이키자 온 몸이 훈훈해진다. 내가
    마켓앞을 부지런히 쓸고있는 것을 보고 지나가던 늙은 아미고가 부에노스 디아스하며
    아침 인사를 하더니 자기가 걸어온 길을 멀리 가리키며 빗질하는 시늉을 한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떡이다가 그래, 오늘아침은 이 빗자루 하나로 길을 쓸며 지구 한 바퀴
    돌아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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