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수필 모음

2017.10.11 21:47

정용진 조회 수:59

철학(哲學) 수필 모음

秀峯 鄭用眞 詩人

 

철학(哲學)은 인간의 올바른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학문이다. 그래서 역사 속의 성현과 지성들의 가르침들이 그 근본을 이룬다. 그들의 절절한 발자취를 통하여 우리 후예들이 옷깃을 바로 여미고 지상에서의 오직 한번 주어진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게 진실하고 진지하게 일러주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시란 직관(直觀)의 눈으로 바라다본 사물(事物)의 세계를 사유(思惟)의 체로 걸러서 탄생시킨 생명의 언어인 동시에 영혼의 메아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여기에 올린 5편의 철학수필은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고귀한 깨달음의 양식이 되리라 믿는다. 애독을 바란다.

 

1) 산의 철학(哲學)

2014217()/한국일보        정용진 시인

 

 산에는 장중과 정적과 고독이 있다. 태고로 부터 끝없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 속에서 부동하는 자세와 청정한 모습으로 하늘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겸손의 모습이 흘러 넘치기 때문에 선인들은 예로부터 산정사태고(山靜似太古) 음미하고 청풍명월이 깃을 펴는 영원의 고향 속에서 참선의 도와 인내를 배웠다. 

 인간들은 예부터 자신의 나약과 부족을 절대자 앞에 의지하려는 마음을 앞세우고 기암과 고목, 폭포와 절벽이 어우러져 산경을 이룩하고 춘풍추우 폭풍한설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와 지존의 의지를 굽히지 아니하는 산을 찾아서  속에서 간구하고 기도하며 명상하는 습성을 키워 왔다

 억만년의 세월 속에서  여기 쉬어 가겠노라고 웅자로 버티는 도도한 산의 자태, 무수한 생명들이 산을 찾아왔다가는  깊은 속마음에 심취되어 마침내 그도 산이 되고 만다. 산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엔 교만한  같고 잠들어 있는  같으나, 일단  품에 안겨 보면 봄의 빛과, 여름의 힘과, 가을의 향기와, 겨울의 소리에 이내 반하여 종래는 침묵하게 된다. 무궁한 세월을 같은 모습으로 버티고 서있는 거대한 뚝심과 무뚝뚝한  같은 외모와는 달리 새들의 울음과, 나비의 몸짓과, 맹수들의 포효, 그리고 천년을 소리 내어 울어 가는 물소리를 들어주는 인내와 무한한 도량이 있다. 하늘을 찌르듯 솟아오른 곧은 의지, 모든 것을 수용할 듯 우람한 능선, 차가운 솔바람 소리도 종래에는 깊은 잠으로 머무는 그윽한 계곡이 있다. 한순간 속에서도 열두 가지 생각에 잠기는 범부라도 산길을 오르다 보면 세심(洗心) 염이 생기고 정혼(淨魂) 마음이 솟으며 수신(修身) 도가 떠오르는 듯하다.  자체로서는 변하는 바가 없으나 사계를 도는 자연의 질서가 철을 달리하며 행장을 풀려 하기에  모습이 주야, 춘하추동으로 달리 느껴진다. 같은 산을 가지고도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라고 다르게 이름을 지어 부르는 우리 선조들의  멋과 풍미도 여기에 있다산이 첩첩한 곳에 물은 굽이굽이 흐르는  겹겹  굽이굽이(山重重 水曲曲) 철리와 산자수명의 우아미야말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빼놓을  없는 정경들이다. 세속을 떠나 산사를 찾아서 하루를 쉬고 둘러선 산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노라면 잔월효성(殘月曉星)과의 고요한 대화가 열린다

 인간에게 있어서 산은 아버지의 위엄과, 어머니의 자비와, 절대자의 신성불가침의 경지를 일깨워 주는 영원한 스승이다. 산은  자체가 청순하기  때문에 공해가 없고,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에 허욕이 없고,  모습이 단아하기  때문에 가식이 없다.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인간들의 발길이 오히려 산과 인간들에게 공해가 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

 산은 () 통하는 길이요, 도와 통하는 길이고, 시와 통하는 길이며, (.재능) 통하는 길이다, 시인 김삿갓(병연) 기암절벽 바윗등에 홀로 웃고 서있는  떨기 꽃을 바라보면서 감동을 금치 못하였고, 세속을 떠난 인간의 마음을 산중문답으로 달래며 세진을 털고 행운유수(行雲流水) 같이 동가식(東家食) 서가숙(西家宿)  있었으니 뛰어난 도인(道人)임이 분명하다.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마음도 깊다.(月白雪白 天地白 山深水深 客愁心) 읊으며 음풍농월(吟風弄月) 노래한 것도 한운야학(閒雲野鶴) 풍찬노숙(風餐露宿)  집념과 해탈 속에서의 고고한 경지로 받아 들여야 할 듯하다. 고고히 서있는 산에는 웅변의 빼어남을 넘는 침묵의 고귀함이 있고, 자존망대의 교만을 넘는 은인자중(隱忍自重) 철학이 있으며, 일확천금(一攫千金) 꿈꾸며 좌충우돌(左衝右突)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지성이면 감천(至誠感天)이라는 계명을 일러주는 위엄이 있다.

 성현 공자의 마음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는 인자요산(仁者樂山)과 지혜가 있는 자는 물을 즐겨한다.” 지자요수(智者樂水) 권면은 청산에 어리는 고고한 정기를 받아 폭넓은 인간관을 지니고 망망한 대해를 바라보면서 삶의 슬기와 덕을 배워 청산 원부동 백운자거래(靑山元不 白雲自去來)라 하였으니 이는 청산은 본래 움직이는 바가 없고 흰 구름이 스스로 오고 갈 뿐이다. 덕이 있는 스승을 찾아 제자들이 그 인품과 학문을 흠모하여 구름처럼 몰려온다는 뜻이다.

 

2) 물의 철학(哲學)


2014313/한국일보 정용진 시인

고대 철학자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며, 물은 물에서 생겨나고 물로 돌아간다.’고하였다. 지구상에서 생명을 기르는 것은 햇빛. . 토양. 씨앗. 그리고 노동력이다. 이것이 생명 보전의 5대 요소요, 하늘이 주는 인간과 자연을 향한 생명의 선물이다. 물은 열을 받으면 수증기가 되어 증발한 후 다시 비나 이슬이 되어 고향을 찾듯 지상으로 되돌아오고, 냉기를 만나면 얼음으로 변하였다가 녹으면 다시 물이 된다.

막았다 풀어놓으면 즉시 갈라진 자국이 없이 하나가 되고, 폭포를 만나 뛰어내려도 깨지지 아니하며, 흙탕물이 되었다가도 다시 자정(自淨)의 능력으로 청정수로 변한다.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바위틈을 가르고 샘물로 솟아 시내와 강을 이루며 목마른 생명들의 목을 추겨준다.

물은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면서 낮은 곳을 향하여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면서 도랑이 시내가 되고 시내가 강을 이루고, 종래는 바다에 이르면서 그 폭이 넓어지고 그 양이 크게 늘어난다. 겸손의 미덕이 물의 특징이요, 봉사의 정신이 물의 사명이다.

이를 보고 노자(老子)는 천지 만물 중에 가장 두렵고 힘이 센 것은 물()과 대나무()라고 하였다. 물은 갈라놓았다 합치면 흔적도 없이 하나가되고, 대나무는 휘었다 놓으면 곧 원형으로 다시 되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제자들에게 물을 보고 물에서 덕을 배우라고 일렀다. 물은 흐르다가 그 앞에 웅덩이를 만나면 아무리 갈 길이 급하고 웅덩이가 클지라도 반드시 채우고 난 이후에 넘쳐나서 앞으로 나간다는 영과이진(盈過而進)의 철리를 이른 것이다.

물은 겸손과 순종과 질서의 상징이다. 그러나 과하게 넘치면 때로는 노도(怒濤)가 되어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살상하고 재물을 쓸어버리기도 한다.

이는 마치 불이 강해지면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태워버리는 화마(火魔)가 되는 것과 같다. 이를 보고 인간들이 잔혹하고 포악무도한 행동을 저지르면 물불을 가릴 줄 모른다고 자탄한다. 그러나 물은 불을 끄고 불은 물을 끓이는 철리(哲理)도 알아야하고 약한 물방울이 낙수 물로 떨어지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위를 뚫는 인내도 배워야 한다. 석간수(石間水)로 시작하여 세심천(洗心川)의 맑은 시냇물로 변하면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죽은 물고기는 물에 떠내려가는(生魚逆水 死漁流水)의 진리도 깨달아야 한다. 녹수청강(綠水淸江)과 장강대해(長江大海)를 눈앞에서 바라다보면서도 돌같이 오래살고 샘같이 재산이 많기를 바라는(石壽泉資軒) 욕망을 내보이는 것이 곧 인간의 마음이기도 하다. 산은 겹겹이 쌓이고 물이 그 사이를 굽이굽이 흘어 가는(山重重 水曲曲) 정경을 바라다보노라면 마치 세상 인간사를 대하는 듯하다. 내가 평생 스승으로 모시고 존경하던 철학자 이당(怡堂) 안병욱(安秉煜) 선생님께서 내 농장을 방문하시고 손수 써주신 세심정혼(洗心淨魂)의 네 글자를 보면 임께서 타계하신 오늘에도 생존의 모습이 절절하다. 스승은 성실한 제자를 맞이할 때 보람을 느낀다. 선생님께서 말년에 술회하시기를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실 때 두뇌가 명석하여 학업성적이 뛰어난 제자들을 유달리 사랑하셨는데 학창시절 학업성적은 좀 떨어졌어도 근면하고 성실한 제자가 사회에 나와서 더 큰 인물로 성장한 것을 보시면서 과거의 내 생각이 잘 못 되었었구나, 후회하셨다고 들었다. 명심보감에 보면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아니하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따르는 자가 없 (水之淸則無魚 人之察則無徒)고 하였다과일을 딸 때는 나무를 생각하고 (落實思樹물을 마실 때는 원천(源泉)을 생각하라(飮水思源)는 말이 있다.’남북조시대 양()나라 장군인 유신(庾信)이 남긴<徵調曲>말이다.

일찍이 시인 김황원(金黃元)은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 천하절경에 감동한 나머지 부벽루에 오른 시인묵객들이 한수씩 적어 내건 현판의 시들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즉석에서 부벽루 송(浮碧樓 頌)을 읊었으니 긴 성의 한편으로 강물이 넘쳐 넘쳐흐르고(長城一面 溶溶水), 너른 들판 동쪽으로는 점 점 점 산(大野洞頭 點點山)’이라고 단 두 줄로 눈앞에 전개되는 풍광을 단숨에 읊어 놓고는 해가 지도록 다음 연을 생각 하였으나 종래 잇지 못하고 부벽루 기둥을 붙들고 울다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속담에는 한사람의 망동으로 사회가 혼란해지는 상황을 보고 한 마리의 물고기가 바닷물을 다 흐려 놓는다.’고 일어탁수(一魚濁水)라 하였다. 물이 빈곳을 채워 수평을 이루듯 국가는 수요와 공급에 형평을 이룩하고,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기에 전력을 다하여 복지사회를 형성하여야한다. 그래야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3) 눈의 철학(哲學)

2010326/코리아 모니                 정용진 시인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생명의 거울이다우리는 눈을 통해서 미와 추를 만나고 아름다움을 발견 하였을  그것을 사랑하고 싶고 소유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선인들도 () 사랑을 낳는 간판이다.’라고 설파하였다. 미목이 수려한 인물을 만났을 때에는 가슴이 뛰고, 안목이 높은 인품을 접했을 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눈을 통해서 아름다운 미와 고귀한 덕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만나는데  의미가 있다. 너와 내가 만나 친구가 되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애정 관계 속에 후예가 탄생한다. 

일찍이 마틴 부버는 만남의 철학을 통하여 너는 내길 위에 있고 나는   위에 있다.’  인간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세상의 사물을 있는 모습대로 바라보는 것이 안목(眼目)이요, 무의식 속에서 허망하게 바라보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맹목(盲目)이다. 그리고 육안으로   없는 사물을 꿰뚫어보는 천안(天眼) 있다사람이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분명하여, 진리의 소리를 들을  있는 . 사물을 바로   있는 , 양심에 입각해서 말할  있는 , 신선한 것과 썩은 것을 분명하게 구분할  있는 코를 지녔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세상 사물을 바르고 정확하게 보기 위하여 창조주는 두개의 눈을 주었고, 귀에 거슬리는  말씀이 듣기에는 싫으나 몸에는 이로우니 듣고  들으라고 두개의 귀를 부여 하였으며, 많은 것을 보고 들을지라도 그것을 직선적으로 바로 내쏟지 말고 자기 가슴의 깊은 용광로에 용해시키고 걸러서 삶의 덕이 되는  만을 내놓으라는 의미심장한 뜻으로 입은 하나만을 부여하였다. 이를 뒷받침이나 하듯 선인들은 일신천금(一身千金)이면 일월(日月) 구백  이라고 인간 몸값의 대부분을 눈에 할애 하였다. 눈을 감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이나 미라도   없고, 관심이 있는 곳에는 눈길을 돌리며, 갖고 싶은 것엔 눈독을 들이고, 거슬리는 미운 자에겐 눈총을 보낸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거나 떠나 보낼 때엔 눈시울을 적시고, 눈으로 아름다움을 보아서 가슴과 머리로 느끼게 되는 것이 인지 상정이다

 인생을 길고 원대하게 보는 형안(炯眼) 있는 반면눈앞에 글자를 못 읽는 문맹(文盲) 있고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목불식정(目不識丁 있는가 하면.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 추태도 수없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겉볼안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외모를 유심히 바라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슴에 지니고 어떠한 모습으로  인생의 행로를 걸어 왔는가를 짐작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의 식견을 가지고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찾고 일생을 약속 하기도 한다먼데서 일어나는 일을 직감적으로 터득하는 능력의 천리안(千里眼) 있는 백성이라야 지상에서 승리 할 수 있다. 

 민족에게는 오늘을 바로 보는 안목(眼目) 있어야 하고, 인류에게는 세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탁견(卓見) 있어야 하고, 역사 앞에서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조망하는 식견(識見) 있어야 한다소리를 내어 읽는 낭독(朗讀) 혹은 음독(音讀), 눈으로 조용히 대화하듯 읽는 목독(目讀), 깊이를 생각하면서 읽는 숙독(熟讀속에서 우리 인간들은 삶의 깊이를 배우게 된다독서삼매경(讀書三昧) 높은 경지, 주경야독(晝耕夜讀) 근면한 삶의 태도설안형창(雪案螢窓)의 부단한 인격 수련은 자아개발의 아름다운 귀감이다저마다 총명한 눈으로 세상을 밝고 정의롭게 보며 진리를 통찰하는 능력을 지니자이것은 미래를 바로 조망하는 시금석이요,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다분명히 눈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진리와 양심의 빛나는 두 개의 별이다

 

4) 길의 철학(哲學)

20141222()/한국일보 정용진 시인

 

옛 부터 길은 도()와 통한다. 고 일렀다.

진리로 통하는 길에는 특별한 문이 없다는(大道無門) 부처님의 가르침도 있다.(無門慧開. 自序) 인간이 참되게 살아가는 길이 곧 삶의 행로요, 도덕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성현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군자는 대로행(君子大路行)이라고 일렀다. 좁은 길에는 잡다한 세상 모습들이 널려있어서 부패하고 악취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만나는 길이 곧 대로요, 남을 도와주는 봉사의 길이 바로 대로다. 로마가 세상을 제패했을 때 세상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일찍이 사상가요 종교철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나는 네길 위에 있고, 너는 내길 위에 있다.’라는 명제로 만남의 철학을 역설 하였다.

인간의 길은 너와 내가 서로 의지하고 동행하면서 대화로 소통할 때 가장 행복하다. 고독은 인간을 외롭게 하고 영혼을 고갈시켜 인성(人性)을 악하게 하기 때문이다.

대유학자 이퇴계의 시조 간운데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녀 던 길 앞에 있네. /녀 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녀고 어쩔고. 란 시조가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해도 선인들이 가던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대학생 때 존경하던 철학자이신 스승 안병욱 교수님 댁을 방문하였는데 서재에 유심소작(唯心所作)란 스승님의 좌우명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는 불경에 나오는 말로 삶속에 행불행은 자신의 마음속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에서 유래한 말이다. 또 사학(史學)의 태두인 이병도 박사님 댁을 방문하였을 때는 도재이(道在爾)라는 좌우명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는 논어에 나오는 말로 도는 가까이 있는데 멀리서 찾으려는 어리석음을 경계한 말이다.

나도 시를 쓰고 농장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인생의 좌우명을 하나 갖고 싶어 깊이 생각하다가 유비를 만나기전 제갈량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너무나 소박하고 아름다워 보여 날이 밝으면 들에 나가 밭을 갈고 날이 궂으면 서제에 들어 책을 읽으리라는 마음에서 청경우독(晴耕雨讀)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를 말라.’는 격언이 있다.

옳은 길이 인간들의 삶 속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예시해주는 교훈이다.

성현 공자는 논어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삼인행 필유아사언(三人行 必有我師焉)이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다가 보면 반드시 한 사람쯤은 내게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는 뜻이다. 또한 장자(壯者)는 길은 다녀서 만들어지고(道行之而成) 사물은 불러서 그리 된다.(物謂之而然) 제물론(齊物論)에서 말했다. 인생의 행로를 살펴보면 결코 평탄하지만 않다. 그 앞에 진흙길도 있고, 자갈밭길도 걸어가야 할 때가 있고, 모래밭이나 수렁에 빠져 헤맬 때도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좌절하거나 방황해서는 안 된다.

행동은 습관을 낳고, 습관은 성격을 형성하고, 성격은 운명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인간의 삶은 오랜 수련을 통해서 형성된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인류의 고전 명심보감에 보면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날이 오래야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다.’(路遙知馬力 日久見人心)언이 금과옥조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는 천산산맥을 넘고 고비사막을 지나 유럽으로 통하는 험하고 멀고 긴 상도인 비단길이 있고, 우리 민족에게는 남북이 통일을 이룩하여 하나가 되어야하는 통일의 길이 커다란 숙제로 남아있다. 인간이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하여 스승에게는 사도(師道)가 있고, 부모에게는 부도(.婦道)가 있고, 자식에게는 효도(孝道)가 있고, 상인에게는 상도(商道)가 있다. 길은 선()도 되기 때문에 정도(正道)를 벗어나 잘못 가면 탈선하게 되고 불륜에 빠지게 되며 결국은 패가망신하게 된다. 한 번의 실수로 일생 쌓은 공로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10년 공부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실례를 우리는 국내외 명사들의 한번 실수 속에서 보고 듣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미주에 이민와서 자녀들을 잘 키우며 사업으로 성공한 우리 해외동포들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 국력의 신장이요, 영토의 확대가 된다. 세모(歲暮)를 보내고 희망의 2015년을 맞이하는 우리 동포들의 행복한 신년이 되기를 삼가 기원한다.

 

5) 돈의 철학(哲學)

정용진 시인

 

돈은 만인의 원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돈이 너무 없어서 고개를 숙이고, 저두굴신(低頭屈身)의 슬프고 불행한 일생을 살아가며, 가난하면 소인이 된다는 빈자소인(貧者小人)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 이와 반대로 태어나다보니 금 숟가락을 손에 쥐고 태어나서 별로 한일이 없이 허랑방탕하며 부실하게 살다가 남의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허다하다.

인류의 경전 명심보감에 보면 인간의 의리는 가난을 쫒아서 끊어지고, 세상의 정은 돈을 향해 기운다.(人義盡終 貧處斷 世情偏向 有錢家)는 말이 있다. 또 집안을 일으키는 사람은 거름을 돈처럼 귀히 아끼고, 집안을 망치는 사람은 돈을 거름처럼 헤프게 써버린다.(成家之兒 惜糞如金 敗家之兒 用金如糞)이라고 하였다.

돈은 돌아서 돈이라 하였다는데 물이 한곳에 오래 고여 있으면 썩어 악취를 풍기듯, 돈도 한곳에 너무 많이 쌓이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고 도적의 소굴이 되어 사회의 큰 병폐가 된다. 가난하던 시절 형제자매들이 한 이불 속에 발을 묻고 뒹굴며, 한 냄비 속에 숟가락을 집어넣으며 된장찌개를 휘젓던 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황금이 귀한 것이 아니고 안락이 값진 것이다. 황금미시귀(黃金未是貴) 안락치전다(安樂値錢多)란 뜻이 바로 그 것이다. 우리는 항상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해야한다. 왜 그런가? 우리들의 현명한 조상들이 가난할 때의 죽마지우는 버려서는 절대로 안 되고, 쌀겨를 먹으며 가난을 함께 이겨낸 아내를 뜰아래로 내려놓아서는 결코 안 된다.는 말씀의(貧賤之交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진리를 깊이 깨달아야한다.

부모가 부를 누리는 대 기업의 총수가 되면 더 많은 재산의 분배를 받으려고 형제지간에 송사를 벌리는 사례가 허다하다.

올바른 사회가 되려면 근검노작의 피리소리가 울려 퍼져야하고,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이룩하는 적소성대(積小成大)의 노력과 티끌을 모아 태산을 이룩하려는 진합태산(塵合泰山)의 수고를 다해야한다.

황금만능주의를 경계하고 땀 흘려 수고하여 이룩한 부()를 병들고, 가난하고, 힘든 이웃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 따뜻한 사회가 그립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어진 재상이 생각나고, 집안이 가난 할 때는 착한 아내가 생각난다.(國難 思良相 家貧 思良妻)는 말이 삭막한 이사회에 얼마나 많은 감동을 안겨주는 명언인가. 사회가 풍성하고 국가가 부흥하려면 실력 있는 양심적 지성이 넘쳐나야 하고, 윤리와 도덕의 질서가 정립되어 사랑이 가득 차 포근한 이웃관계가 형성되어야하며, 국가 경제가 성장하여 복지국가가 이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 명연설처럼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하여 무었을 할 것인가를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한다,’ 돈의 철학은 바로 공유하고, 공생하고 공존하는, 공동체의 더불어 사는 사회의 첫 번째 덕목이다.

미국의 부호 록펠러는 뉴욕 맨해탄 가에 록펠러 센터를 건립하고 뉴욕시에 많은 돈을 빌려준 후 그 돈을 되돌려 받지 아니하고 가난한 시민들의 수도세를 앞으로 100년 동안 받지 말라 고하여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 그이기에 말년에 부자가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인생의 치욕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북유럽의 노르웨이나 스웨덴. 덴마크. 같은 국가들은 사업가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징수하여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 까지국가에서 국민을 책임지는 복지국가를 형성하였다. 가난은 나라도 책임질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국가가 책임지고 극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국민 의료제도가 이에 해당되는 덕목이다.

우리나라의 소수 악덕 기업들은 재산을 외국에 빼돌리고, 세금을 포탈하고, 내가 많이 벌어 놓았으니 자식들아 너희들은 대대로 놀고먹어라 식의 퇴패주의 사회 풍조를 조성하고 있으니 실로 한심한 일들이다.

복지사회 건설에 국가가 솔선수범하고 기업이 뒷받침하는 양심사회 건설이 요구되는 현실이다. 자신이 땀 흘려 축적한 부()를 춥고 배고픈 이웃들을 위하여 곳간 열쇠를 푸는 따뜻한 이 겨울이 되었으면 한다. 돈은 목적이 아닌 행복의 수단이다. 돈은 소수의 집단이 아닌 다수가 공유할 때 사회는 아름답고 풍성하고 훈훈해 진다. (전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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