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2.06 01:50

정용진 조회 수:1072 추천:270

눈(雪)이 덮여서 설
가난이 서러워서 설
설빔에 잠을 설쳐서 설
설은 해마다 어김없이
새해 첫날 우리들을 찾아온다.

조상에게 누를 끼친 사람들
부모에게 불효했던 사람들
형제에게 소원(疏遠)했던 사람들
친구에게 섭섭했던 사람들

조그마한 선물 꾸러미를 싸들고
시골 행 버스에 짐짝처럼 실려
벌거벗고 미역 감던
마을 앞 실개천을 건너
쏜살같이 초옥으로 달려간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핸 후
돗자리를 말아 둘러메고
다과를 등에 지고 가서
성묘를 끝낸 다음
큰 아버님의 조상음덕을 한참 듣고
마을 어른들께 세배를 올린 뒤
죽마지우들과
정갈한 세배상에 둘러앉아
떡국을 들며
어린 시절 회상의 꽃을 피운다.

아무개 아들은 성공하고
누구의 딸은 시집가서 애를 낳고
이웃집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뒷집머슴 돌이 는 장가가고
순이 는 이웃 총각과 바람이 나서
서울로 간 후 소식이 끊기고
이야기꽃이 밤을 엮는다.

도 개 걸 윷 모 외치는 소리가
온 마을에 가득하고
이장님 뜰 앞에 멍석을 펴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어른들은 윷놀이가 한창이다.

어린것들은 제기를 차고
처녀들은 널을 뛰고
청년들은 자치기에 열을 올리던
추억의 시간들...
밝은 해는 중천에 떠서
황금 햇살을 뿌려댄다.

송구영신(送舊迎新)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지붕마다 소복이 쌓인 눈처럼
풍성한 새해가 되거라
아름답고 즐거운 명절
우리들의 설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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