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2016.02.16 03:16
담쟁이
정용진
올라라 올라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랴.
머리 위는 구만리 장천
발아래는 천만 길 벼랑
이 모두가 내 하늘이요 내 땅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고
사람도 의지처가 있어야 기댄다는데
돌담장을 손톱으로 후벼 파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끝없이 기어오르는 억척쟁이.
고목 등걸을 휘휘 감으며
철따라,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갯빛으로 변신하는 담쟁이
담쟁이는
실어증(失語症)의 고목(古木)과
고착증(固着症)의 석벽을 기어오르는
줄타기의 명수다.
담쟁이야, 너는 기는 주제에
초록 미니스커트 자락으로
죽은 고목과 굳은 석벽에
푸른 열기를 불어넣는
생명의 혼 불.
아! 과연 그 기개가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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