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푸른 마음이 산다

 

김태수

 

 

  숲에서 삶의 생기를 느낀다. 우거진 숲 너머로 펼쳐지는 산,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숲이 피워내는 숲 향을 한껏 들여 마셔본다. 내 몸 안의 불순물이 씻겨나가는 것 같다. 피톤치드로 마음을 헹구며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건강해지려 숲을 찾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숲을 자주 찾아간다. 좌절감과 배신감을 느낄 때, 뒤엉켜 풀리지 않는 난제를 안고 있을 때,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질 때, 글을 쓰다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날 때,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때, 외로움을 털어보고 싶을 때, 새로운 구상이 필요할 때...... 나는 몸과 마음을 담가 씻어내려 숲을 찾는다.

 

  나는 숲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운다.

 

  숲은 만물을 돋아 살게 하지만 뽐내는 법이 없다. 자신을 찾는 모두에게 혜택을 주면서도 역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구릉지와 골짜기를 가리지 않고, 산과 산을 이어 큰 산맥을 만들기도 한다. 숲은 있고 없음을 묻지도 가리지도, 높고 낮음을 탓하지도 않는다. 숲에 있으면 편안하다. 온갖 나무와 풀이 갖가지 형상으로 어우러져 언제나 나를 반긴다.

 

  숲 속의 벤치는 정취가 있다. 외롭고 힘들 때면 숲을 찾아 위안을 받는다. 바람 소리 새소리 물소리가 제각각 저만의 존재가치를 말해준다. 혼자 앉아 있을 때는 빈자리를 만들어 그리움과 추억을 불러온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하여 채워가게 한다. 누군가와 함께 앉아 있을 때는 다정함을 불러 와,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고 한 자리로 이어준다. 낮선 사람도 친근하게 만들어준다.

 

  숲은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는 생명체이다. 흐린 물도 시간이 지나면 맑아지듯 숲은 대기상의 오염물질을 잡아 가둬 자정 기능을 발휘한다. 스스로 정화해 맑은 물과 공기를 만들어 낸다. 이기심이 판을 치는 경쟁 사회에서 얼마나 나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고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숲은 평등하게 누구나 받아준다. 외로움을 털어내려 숲을 찾는 사람, 하소연할 상대가 없어 숲에 들어가 위로를 받으려는 사람, 마음을 비우기 위해 숲을 찾는 사람, 높고 험한 숲 속의 산을 삶의 도전으로 생각하고 정복하려는 사람, 심지어 훔친 물건을 들고 와 숨기려는 사람까지도 말없이 끌어안는다.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풀어놓고 가도 다 받아 준다. 건강한 사람은 더욱 건강하게 만들고, 병든 환자를 치료하기까지 한다.

 

  숲을 이루는 나무도 서로 경쟁하며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한다. 큰 나무 밑에는 작은 나무들이 살아가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기다린다. 키 큰 나무들이 된서리와 찬바람에 먼저 잎이 진다. 겨울을 나기 위해 덩치 큰 나무들은 제 몸 줄이기에 들어가고 윤기 나던 푸른 줄기는 빛바랜 색이 되어간다. 햇빛을 잘 보지 못했던 작은 나무들이 큰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온 햇살을 붙들고 파란 옷을 걸쳐 입는다. 다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이곳 이민생활의 모습을 본다. 오래된 이민자들이 자리를 잡아 떠난 자리를 초년 이민자들이 차지하여 늦게나마 햇살 붙들고 그들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자연의 질서는 참으로 묘해서 서로 경쟁하면서도 균형을 잡아 안정적인 숲을 이룬다.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자연 질서를 좇아 유지한다.

 

  숲은 단순하고 솔직하다. 햇살 한 움큼씩 주는 대로 받아먹고 시원한 바람 소리로 숨을 쉰다. 낙엽이 되어 자신의 몸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알고 실천한다. 단순해도 때맞춰 옷 갈아입고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찾는 이 없어도 시간을 묻어두고 기다린다. 한편에서는 새싹을 피우고 한편에서는 스스로 삭은 고목이 되어 산새와 다람쥐의 집과 쉼터로 함께 어우러진다.

 

  사계절의 분위기를 해맑게 노래한다. 봄 숲은 깔아놓은 따스한 햇살을 딛고 사랑꽃 피우기 위해 색깔을 풀어 봄바람을 끌어온다. 여름 숲은 비바람이 내리치는 몰매를 맞아가며 휘청거리면서도 열매를 맺기 위해 녹음으로 무장하며 저항한다. 가을 햇살이 숲 속 나뭇가지 사이를 비집고 찾아오면 단풍든 새들의 노랫소리에 취해 잎들은 몸을 부린다. 긴 겨울 눈보라를 피할 수 없어 나눠 맞으며 떠난 새가 다시 돌아와 노래 부를 수 있도록 언 땅속의 뿌리를 서로 끌어안고 기다린다.

 

  숲은 서로 더불어 사는 원칙이 있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어울리고, 동물과 식물이 어울린다. 나무들도 자기 목숨을 유지하고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름다운 잎과 꽃을 피워 향기를 내뿜어 다른 생명체를 즐겁게 한다. 그래야만 짝짓기를 통해 사랑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며, 열매를 맺어 다른 생명체를 먹여 살린다. 자신의 생명이 깃든 열매를 필요한 만큼만 거둔다. 그것도 안전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대가로 동물들에게 맛있는 먹이를 제공하면서.

 

  도시 숲은 소음방지, 산소배출, 기후 조절, 대기정화 등 다양한 혜택을 준다. 여름 한낮 평균 기온을 3~7도 낮추고, 평균 습도는 9~23% 높여준다. 숲을 15분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호르몬을 15.8% 낮추고, 혈압은 2.1%가 낮아진다고 한다. 또한, 숲은 많은 식물이 살균성을 가진 물질을 만들어내어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도 심폐기능을 강화하고 피부를 소독하는 약리 작용은 물론 항산화 효과를 낸다. 숲과 인간이 함께해야 하는 이유이다. 

 

  숲이 병들면 인간도 병이 든다. 물과 토양이 오염되어 숲이 아파하고, 몸살을 앓으면 이상기온이 온다. 인간이 건강하기 위해서라도 숲을 지키고 가꿔나가야 한다. 도시 개발보다 푸른 도시가 더 절실하다. 부족한 도심 숲일수록 더욱 소중히 여기고 아껴서 환경오염으로부터 지키고 가꿔나가야만 한다.

 

  숲 속에 있으면 생명의 숨소리가 들린다. 제자리를 지키면서도 어우러진 생명을 노래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독점하지 않고 남도 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만들어준다. 모든 생명체를 품고도 남아도는 푸른 숨을 쉰다. 숲은 여유로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녹이는 매력에 빠져 나는 숲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