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ㅣ 아기 오리와 어머니

2017.05.15 16:05

채영선 조회 수:67

아기 오리와 어머니/ 소담 채영선

 

 

옆집 주인은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그 집의 전 주인이 독특한 것이지요. 이사 오던 해부터 집을 수리하던 흑인 주인은 다음해 이사를 갔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사는 동안 손도 안 보던 집을 팔기 위해서는 대대적으로 수리를 합니다. 정원도 새로 가꾸고 완전히 다른 집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 중에도 제일 독특한 것은 앞마당 언덕에 갈대를 심어 놓은 것이지요. 어느 집에도 없는 갈대가 이젠 갑절 이상으로 불어나 언덕을 이루며 가을바람에 물결을 치면 오며 가며 내다보며 남다른 정취에 빠져듭니다. ‘사람은 갈대와 같아, 맞아 저 출렁거리는 걸 봐, 꺾어질 것 같지만 꺾이지 않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대처럼 이리 굽이치고 저리 굽이치며 살아갈까요.

 

바람 잘 날이 없는 사는 날 동안 어미라서 아비라서 외동아들이라서, 또는 무남독녀라서 등등의 이유로 아니면 예전처럼 대가족 속에서, 인간 사회 속에서 각자의 길을 가며 혼자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예전 같으면 모르고 지나갈 타인의 일을 엮어 만들어낸 스토리를 보며 다시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걸어갑니다.

 

곧은 성격을 자랑하는 선비 집안이라서 또는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력을 가훈으로 삼으며 그것을 지키려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조차 하지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밤이 늦어야 돌아오시던 시절에는 아버지의 모습은 가물가물하고 목소리나 가르침은 들을 수도 없는 형편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손에서 교육과 육아가 이루어지던 시절에 우리는 자라났습니다. 엄마 한 사람의 가르침으로 충분하던 가정교육이 지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육아의 일을 감당해야할 어머니들이 가정을 떠나야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목표와 사회적인 성취를 위하여 대부분의 여성들이 어린 자녀를 뒤에 두고 문을 나섭니다.

 

전문적인 기관에서 돌보지 못할 경우 대부분의 아기들은 조부모의 손에 맡겨지기도 합니다. 한 살이 되기까지 습관이 결정이 된다는 논리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표현을 못한다 해도 느끼는 것과 보고 생각하는 인지 능력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연히 본 동영상에는 놀랍게도 날개가 나지도 않은 아기 오리가 밥그릇에서 밥알을 물어다가 주변에 모여드는 붕어들에게 먹여주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잠간이 아닌 긴 시간동안 반복하며 붕어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아기 오리를 보면서 미물이 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더 큰 능력을 잠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몇 년 보고 배운 것이 전 인생을 좌우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 아닐까요. 어머니덕분에 일찍부터 찬송을 익히고 초등학교 때부터 주일예배 순서지 뒤에 나오는 성경 문제를 어머니와 풀다보니 교회에서 열리는 성경퀴즈 대회에서 어머니와 둘이 결선에 남는 해프닝이 일어난 일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교육이 곧 가정교육 아닐까요. 요즘은 전화기로 언제든지 상황을 첵크 할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 모든 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의 발생 현황을 보면 어머니가 직장으로 떠난 가정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어른이 된 이 시대에 감성이 메마르고 더욱 이기적이 되어가면서 현실은 따라서 암울해지고 있지 않나요.

 

쉽게 돌아다니고 무엇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편리함으로 남게 되는 귀한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소비하며 지내고 있을까요. 이유를 알 수 없는 필요에 의하여 더 많이 배워야하고 더 많이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무엇이 우리의 삶을 끌고 가는지 모르게 우리는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밥풀을 붕어에게 나누어주며 아기 오리는 분명히 기쁨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복해서 하는 모습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어떤 행위가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 행위가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면 더욱 가치가 높은 일일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를 사라지게 하는 컴퓨터 앞에서 컴퓨터를 책잡는 것이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컴퓨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람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버린 컴퓨터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성경에서 666이라는 숫자로 표현되는 알 수 없는 대상이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가 의문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에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허상의 사회 속에 갇혀서 거기에 매달려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그 시간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일종의 중독일 것입니다. 무엇에든 인 박이지 말라고 성경 말씀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술이나 마약처럼 끊을 수 없는 정도가 되면 곤란합니다. 어머니의 부재와 동시대에 나타난 이상한 현실과 결과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머니는 지상의 어떤 말보다 가장 고귀한 단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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