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창작 - 줄 두 개가 / 김영교

2017.11.03 18:02

김영교 조회 수: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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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두 개가 / 김영교

 

날씨 관곈가, 요즈음 들어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았다. 청소년 음악회 초대권을 받고 사람 많은 곳에 가 말어 망설이다가 바이올린과 플룻을 하는 조카 벌 수지와 민지를 위해서 우리 내외는 앞장을 서기로 했다. 일찍 출발하고 보니 LA 다운타운 디즈니 홀(Disney Hall) 지하에 여유 있게 주차할 수 있어 좋았다. 좌석에 안내되어 느슨하게 자리도 잡고 마음도 잡고 우리는 연주회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시작으로,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이 먼 거리 운전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늘 그렇듯이 서곡은 아름다운 화음으로 힘차게 아주 기분 좋게 다가왔다. 젊은 지휘자의 박력 있는 지휘 또한 처음 1부부터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시원함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이조여인도 아닌 내가 푹 빠진 순서 하나는 이름도 낯 설은 처음 만나는 해금 연주였다. 왠지 답답한 가슴이 트이며 시원한 바람의 왕래를 경험하였다, 기교를 부리거나 음악적 수작을 걸지 않았는데도 쉽게 빠져 들게 해 기분을 상승시켜주었다. 바로 음악에 있는 치유의 힘이 아니었나 싶었다. 품에 안긴 수줍은 해금은 참으로 귀엽고 앙증스러워 보잘 것 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지없이 작은 몸집이 무슨 대곡을 킬까 줄 여럿의 큰 악기에 익숙한 나의 안목에는 그랬다.

 

해금은 원래 두개의 줄을 문질르고 마찰하여 소리를 내는 한국 전통악기 중 사부(絲部)에 속하는 찰현(擦絃)악기라고 한다. 해금은 대부분 내림조가 편안하고 수월하여 서양악기 바이올린 소리와 비슷한 묘한 소리를 내는 관현악과의 악기라는 해설이 보충 설명을 한다. 해금은 어울림을 통해 상대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점이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두 줄 밖에 없어 지극히 외소 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마찰에 온 몸을 내 맡기는 해금이다. 저토록 조그만 울림통에서 어떻게 저토록 음역이 넓고 오르내림이 쉬운 융통성을 장점으로 지닐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했다. 예로부터 궁중음악으로 널리 쓰였다는 자료만 봐도 왜 왕실의 총애를 받아왔는지 납득이 갔다.

 

두 줄 밖에 없어 그야말로 빈약 해 보이는 현악기, 앉아서, 무릎 위에서 피가 터지도록 마찰해 내는 해금소리, 연주자는 대가다운 솜씨로 관현악과 어우르며 협주곡*을 서정적으로 잘 뽑아 청중을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주었다. 낯설음으로 조심스레 다가와 산들 바람으로 들판을 휘돌다가 산으로 올라가 나무들을 흔들기도 한다. 시원하고 경쾌하게 산비탈을 내리닫는 솜씨로 냇물이 되어 감미롭게 흐르다가 넓게 빠르게 흘러 가슴에 누적된 스트레스를 말끔히 내몰아 주었다.

 

작은 악기,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악기 하나가 큰일을 해내는 기적을 보며 가슴이 찡한 감동으로 번져들었다. 처음 협연을 할 때 이곳 청소년들은 볼품없는 동양 악기를 얼마나 신기해하고 또 해금이 내는 커다란 울림에 얼마나 놀라워했을까 싶다.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낯선 동양악기 해금이 해낸 장한 일은 이곳 이민자처럼 세계에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일이 아닐까 여겨졌다. 기회가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생명 퍼덕이는 이민 바다에서 외롭고 힘든 음악 항해를 선택한 1세, 1.5세 2세에게 열린 기회, 아름다운 꿈과 끈질긴 힘을 펼쳐 보여주고도 남음이 있는 음악회였다.

 

두 줄 뿐이라는 해금의 핸디캡은 바로 우리 이민자들의 언어의 핸디캡, 문화의 핸디캡을 대변해주었다. 그 핸디캡을 딛고 주류사회라는 트롬본을 위시해 현악기군으로 편성된 서양악기 바다는 노련하게 숙련된 기교나 전문적 출항을 선두로 기다려 온 커다란 무대였다. 큰 악기 물살과의 절묘한 조화,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은 기적 같았고 청소년들에게는 큰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모두 혼신을 다해 쏟는 매혹적인 협연은 참여의식과 동질감을 느끼게 해 한국적 정서에 눈뜨게 되는 소중한 체험이었을 게다. 음악적 성장을 확고하게 세운 줄 두 개의 커다란 기여를 부인할 수가 없었다. 긍지마저 느끼게 한 분위기였다. 수지 민지도 경청하며 점차 빠져 들어가는 듯싶었다. 해금과의 만남은 큰 수확이었다. 참으로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음악적 환경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이어주는 차세대를 위한 음악가 후원 양성 재단이 이곳에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만도 놀랍고 긍지를 느끼게 했다. 연주도 그렇지만 후원단체도 박수 받아 마땅했다. 꿈나무 솔리스트를 키워 음악인의 꿈을 세계무대에서 펴 보이도록 창단된 설립취지 또한 미래 지향적이어서 격려 박수를 받을만 했다. 그뿐인가. 3명 장학생 선발도 아름다운 이벤트였다. 또 트리플 콘체르트에서는 아버지(바이올린)와 아들(첼로)의, 아름다운 음악가족 출연 그림도 분명 화합장(場)의 한 음악행사였다.

 

지휘학 전공의 젊은 지휘자는 박진감 있는 솜씨로 지휘에 임했다. 귀에 익은 곡들을 빠른 속도, 경쾌하고 유쾌한 박자를 띄워 흥겹고 신나게 청중들을 안내했다. 지루하지 않은 레퍼토리 선곡은 그가 젊은 세대의 영향력 있는 주자임을 증명하였다. 서양 악기에만 익숙한 어린 단원들이 해금을 대할 때 생소함을 뛰어넘어 함께 모여 연습하고, 연주훈련을 통해 해금 같은 왜소한 동양악기가 해내는 특성과 친숙해지는 기회 역시 음악인의 폭을 넓히는 유익한 경험이라 믿어지기에 해금소개와 해금연주가 갖는 의미는 크다고 민지 수지에게도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가슴을 훤히 뚫으며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는 음악치료의 효과를 낸 해금, 줄 두 개 뿐인 그독특한 모습을 만난 기쁨,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추상’ (이경섭 작곡 이용희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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