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20223.JPG



이 아침에 / 흐르는 물이 흐르지 않을 때 - 김영교

 

동남 유리창을 가진 우리 집 이층은 구조상 우리 몸의 상단에 있는 얼굴에 해당된다. 매일 씻는 얼굴이 탈이 났다. 이층 침실 목욕실 샤워 내장이 터진 것이다. 벽이 젖고 침실 바닥에 물이 고였다. 옷장이 놓여있어 그 밑 축축한 부위에 곰팡씨까지 침범한 것을 몰랐다. 친구가 소개한 목수 꼼꼼씨의 진단이었다.


처음 상담을 의뢰했을 때 스마트에 가득 저장된 실적경력이 놀라웠다. 고객을 위한 합리적인 설명에 신뢰가 가 드디어 약속된 날 침실은 공사장이 되었다. 작업상 수도 메인 파이프가 잠가졌다. 물을 못 쓰니 불편했다. 지척에 물이 있는데 물의 길이 막힌 것이다. 수도꼭지 열면 나오는 물이 너무 당연했고 잠가지면 물은 있는데 흐름이 없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길이 닫혀있으니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수도꼭지를 원망했을까?


물, 열림과 트임은 정상적인 건강한 물길에의 초대이다. 흐름은 움직임이며 생명 지향적이다. 마시는 물, 씻는 물, 빨랫물, 부엌, 화장실, 나아가 정원의 스프링클러까지 수로를 따라 물은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물을 쓸 수 있다는 말에 고마워 손을 넣어 물의 알몸을 만지며 투명한 실체를 체감했다. 수도꼭지는 열림과 닫음의 기능을 좌우해 열어야 나오는 우리 집 물, 절대로 의식 없이 대할 대상이 아님을 가르쳐 주었다. 파이프를 교체하는 등 배관 절단 수리며, 관리부실로 생긴 불편을 감수하면서 물의 가치를 배우게 된 것이 그나마 유익했다.


얼굴을 받혀주는 우리 몸, 글쎄 그 몸 70%가 물주머니라니.... 몸속 해독작용에 물의 역할은 필수이다. 세상 구비 구비 흐르는 물, 고이면 썩고 낮은 데로 흘러가는 물의 속성을 잘 관리 해독 보존하는 수고는 각자의 몫이라 하겠다. 흘러야하는 물처럼 인간관계나 왕래가 썩지 않으려면 흘러야 하는 물의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수단으로 임하는 태도와 그 직업이 좋아서 임하는 태도는 결과는 같을지라도 과정이 다를 수 있다. 크고 작은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힘들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말로 바로 프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집 얼굴에 새 타일을 붙이는 대수술 수리가 드디어 끝났다.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던 프로의 그 열성이 기억에 남아있다. 고장 난 집이나 고장 난 마음,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둘 다 수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 물의 길을 고쳐주는 꼼꼼씨나 생명의 길을 안내해주는 내가 아는 그 목수는 삶의 달인 목수다.

병들고 고장 난 내 몸이 무척 답답해하던 시기에 수리하고 회복시켜 준 적이 있었다. 인체의 물길을 터득한 지금, 물의 길을 알고 잘 관리 할 일만 남았다. 


집의 상단 이층 샤워장  리파이핑- 물이 제 길을 찾아 가게 하던 공사가  먼지투성이였지만 역시 불편은 유익을 깨닫게 하는 이점이 충분히 있었다. 내가 만난 두 목수는 프로 최상급이다. 아무도 부인 못하는 프로는 역시 자연스럽게 지극히 아름답다.


12월 1일 2017 금 <이 아침에> 중앙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0 시 창작 - 나팔꽃 / 김영교 [1] 김영교 2017.05.22 18466
669 여행수필 - 그리움은 흘러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22 9571
668 시 창작 - 셀폰소리 / 김영교 [3] 김영교 2017.05.22 9151
667 신작시 - 우린 같은 방에 / 김영교 3/26/2017 [2] 김영교 2017.03.26 8973
666 시 창작 - 나루터와 나룻배 - 김영교 [2] 김영교 2017.07.14 8938
665 3월의 단상(斷想) / 김영교 [8] 김영교 2018.03.07 4581
664 창작 시 - 날개와 지휘봉 / 김영교 [8] 김영교 2017.10.04 4332
663 에니미모 김영교 2010.12.13 1579
662 가장 아름다운 나무(Loveliest of Trees)/번역 김영교 2007.02.28 1482
661 수필 - 이름 꽃 / 김영교 [17] 김영교 2018.02.07 1363
660 수필 - 스카티가 남긴 자국 / 김영교 [10] 김영교 2017.04.11 1342
659 수필창작 -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교 kimyoungkyo 2018.08.08 1254
658 창작 시 - 가을표정 3 - 밤과 한가위 /김영교 [4] 김영교 2017.10.13 1209
657 창작 시 - 들꽃 학교 / 김영교 [9] 김영교 2017.09.17 1196
656 쉬어가는 의자 김영교 2016.11.06 1152
655 신작 수필 - 어머니날 단상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13 1134
654 창작 시 - 가을표정 4 - 호박 오가리 /김영교 [8] 김영교 2017.10.16 1101
653 창작 시 - 배경에 눕다 / 김영교 [6] 김영교 2017.09.23 1092
652 수필 창작- 바튼 기침소리 - 김영교 [5] 김영교 2017.10.18 1091
651 창작 시 - 답답한 이유를 묻거든 / 김영교 [1] 김영교 2017.10.24 1086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0
어제:
5
전체:
647,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