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처럼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이편 강둑에서 저편으로 걸어서 건너가는 일은 이제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 며칠 전 강 가장자리에 얇은 얼음을 드리우는가 싶더니 오늘의 날씨에도 그 자리엔 말간 햇살에 물비늘이 반짝인다.
사람들은 벌벌 떨며 움츠리고들 다니지만 겨울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매달리는지 새벽버스에 성에꽃이 피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버스를 탈 기회가 없어 모르긴 해도 80년대에 피었던 그 성에꽃이 완전히 멸종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이 토해낸 '막막한 한숨'이 소멸되지 않는 한.
문정희 시인은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이 성에꽃을 ‘투명한 니르바나의 꽃’이라 했다.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으로 일어선 것이라고 했다. 정윤천 시인은 새벽기차에 피어난 성에꽃을 ‘하얀 누비옷을 입고’있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에 나도 본 것 같다. 비록 아파트 베란다 창에 소박하게 핀 성에꽃이었지만. 성에꽃은 ‘엄동 혹한일수록’ 더욱 선연히 피고, 가혹한 고통의 밤을 통과할 때 가장 눈부시게 피어난다. 어두운 시대의 아픔이 크고 삶의 애환이 깊고 고통스러울 때 무슨 기가 막힌 ‘전람회’의 작품처럼 다채롭게 피어난다.
사실 힘겨운 삶은 어느 시대 어떤 정권 아래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지금도 새벽버스를 타고 가는 ‘입김과 숨결’ 앞엔 성에꽃이 피고 또 진다.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Ode to joy.
성에꽃 /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 시집 『성에꽃』 (문학과 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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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살던 아파트를 포함하여 동촌 강이 내려다보이는 동네에 둥지를 틀고
산지도 20년 가까지 되건만 단 한 번도 깡깡 얼어있는 강을 보지 못했다.
그 옛날처럼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이편 강둑에서 저편으로 걸어서 건너가는 일은 이제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 며칠 전 강 가장자리에 얇은 얼음을 드리우는가 싶더니 오늘의 날씨에도 그 자리엔 말간 햇살에 물비늘이 반짝인다.
사람들은 벌벌 떨며 움츠리고들 다니지만 겨울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매달리는지 새벽버스에 성에꽃이 피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버스를 탈 기회가 없어 모르긴 해도 80년대에 피었던 그 성에꽃이 완전히 멸종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이 토해낸 '막막한 한숨'이 소멸되지 않는 한.
문정희 시인은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이 성에꽃을 ‘투명한 니르바나의 꽃’이라 했다.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으로 일어선 것이라고 했다. 정윤천 시인은 새벽기차에 피어난 성에꽃을 ‘하얀 누비옷을 입고’있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에 나도 본 것 같다. 비록 아파트 베란다 창에 소박하게 핀 성에꽃이었지만. 성에꽃은 ‘엄동 혹한일수록’ 더욱 선연히 피고, 가혹한 고통의 밤을 통과할 때 가장 눈부시게 피어난다. 어두운 시대의 아픔이 크고 삶의 애환이 깊고 고통스러울 때 무슨 기가 막힌 ‘전람회’의 작품처럼 다채롭게 피어난다.
사실 힘겨운 삶은 어느 시대 어떤 정권 아래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지금도 새벽버스를 타고 가는 ‘입김과 숨결’ 앞엔 성에꽃이 피고 또 진다.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보면서 그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만 간다.
그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도
스쳐지나간다.
그 친구는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거나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게도 가까이 지내진 않았으나 그런 친구가 있다.우울한 시대와 맞장을 뜨다 고꾸라져
지금은 어느 차가운 별에서 홀로 새우처럼 잠들어 있는지.
벗을 생각하며 없는 꽃 대궁마저 빡빡 주먹으로 지워버린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