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Ode to joy.


995A404A5A432E181E7804



성에꽃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이파리 하나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가 금지된 친구여.

 

시집 성에꽃』 (문학과 지성사, 1990)

.......................................................................

 

 전에 살던 아파트를 포함하여 동촌 강이 내려다보이는 동네에 둥지를 틀고 

산지도 20년 가까지 되건만 단 한 번도 깡깡 얼어있는 강을 보지 못했다

그 옛날처럼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이편 강둑에서 저편으로 걸어서 건너가는 일은 이제 영영 불가능할 것 같다며칠 전 강 가장자리에 얇은 얼음을 드리우는가 싶더니 오늘의 날씨에도 그 자리엔 말간 햇살에 물비늘이 반짝인다

사람들은 벌벌 떨며 움츠리고들 다니지만 겨울 사정이 이러하니 어느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매달리는지 새벽버스에 성에꽃이 피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버스를 탈 기회가 없어 모르긴 해도 80년대에 피었던 그 성에꽃이 완전히 멸종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들이 토해낸 '막막한 한숨'이 소멸되지 않는 한.  


 문정희 시인은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이 성에꽃을 투명한 니르바나의 꽃이라 했다.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으로 일어선 것이라고 했다정윤천 시인은 새벽기차에 피어난 성에꽃을 하얀 누비옷을 입고있다고 표현했다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에 나도 본 것 같다비록 아파트 베란다 창에 소박하게 핀 성에꽃이었지만성에꽃은 엄동 혹한일수록’ 더욱 선연히 피고가혹한 고통의 밤을 통과할 때 가장 눈부시게 피어난다어두운 시대의 아픔이 크고 삶의 애환이 깊고 고통스러울 때 무슨 기가 막힌 전람회의 작품처럼 다채롭게 피어난다.


  사실 힘겨운 삶은 어느 시대 어떤 정권 아래서나 존재하는 것이므로 지금도 새벽버스를 타고 가는 입김과 숨결’ 앞엔 성에꽃이 피고 또 진다.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성에꽃 한 잎 지우고이마를 대보면서 그들에 대한 연민이 깊어만 간다

그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도 

스쳐지나간다

그 친구는 차가운 감방에 갇혀있거나 어쩌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게도 가까이 지내진 않았으나 그런 친구가 있다.우울한 시대와 맞장을 뜨다 고꾸라져 

지금은 어느 차가운 별에서 홀로 새우처럼 잠들어 있는지. 

벗을 생각하며 없는 꽃 대궁마저 빡빡 주먹으로 지워버린다.( 권순진)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9
전체:
647,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