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낯선 그 해의 방문객 / 김영교

 

남편은 하던 사업을 접었다. 아니 38년이나 평생 하던 일이 그를 놓아주었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낙상사고 전화 한통이 응급실로 나를 급히 불렀다. 달려갈 때 생과 사, 천국과 지옥이 이런 거구나 극명하게 가슴이 천 길 낭떠러지, 그 일 어제만 같았다.


은퇴라는 갑작스런 휴무시간이 와 안겼다. 일생을 앞장서서 최선을 다해 사업하던 그였다. 해외공장 확장에 출장도 잦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골프 투어도 즐기던 그였다. 차고에 우뚝 서있는 골프백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기 할 일이 있어야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행복하다. 그가 평생 행복한 사람으로 남을 줄 알았다.


어느 날 낯선 파킨슨 씨가 찾아 왔다. 결과가 나온 날 이 넓은 세상에 내 남편에게만 찾아온 듯 하늘이 흙빛으로 변했다. 충격이었다. 남편이나 나는 파킨슨씨를 들어본 적도 만난 적도 없었다. 떠는 증세가 전혀 없어 그냥 낙상 사고 후유증일 뿐이라며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세컨드 오피니언 정밀검사를 또 거쳤다. 남편의 경우는 낙상사고와 노화가 서로 관련된 듯 신경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내보내는 중뇌의 흑질 신경세포가 죽기 때문에 발생한 신경변성질환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뇌세포가 줄어들면서 동작이나 행동이 느린 운동장애가 그 특징이며 규칙적 처방약 복용이 15년에서 18년의 생명 연장은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활동범위를 줄이고 삼식씨 아내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병간호와 섭생에 내 관심이 쏠렸다. 하루 세 번 시간 맞추어 규칙적으로 상을 차리는 편이고 사이사이 산책도 한다. 노후에 찾아온 이 방문객 파킨슨씨를 어떻게 돌려보낼 수 있을까. 치매나 뇌졸중 같은 악성병이 아닌 게 그나마 고마웠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그리 많지 않으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힘껏 살리라 마음 다진다. 남은 내 삶의 제일 젊은 날이 오늘이고 오늘이 남은 내 생명의 첫날이라는 개념이 나를 덮친다.


두 번씩이나 투병 경력이 있는 나와 아버지의 와병을 염려한 큰 아들네가 지난여름 이웃으로 이사 오는 큰 결단을 내렸다. 백지장을 마주 들며 이웃에 다 모여 살게 되어 기쁘다. 기도학교에 나는 복학했다. 처음 일학년 때는 원망, 불평만 하는 투정기도 밖에 할 줄 몰랐다. 시간이 흘러 투정기도반에서 새벽마다 때 쓰는 때기도반으로 전과했고, 그 다음은 지난 일생 동안 곁에 있어준 건강한 남편을 고마워하는 감사기도반으로 월반했다. 새해가 온다. 남편도 나도 또 한 살 더 먹는다. 방문객 파킨슨씨도 또 한 살 먹는다. 함께 가는 거다.


중앙일보 이 아침에 12-30, 2017

 

동창 이은영/ 2018년 정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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