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마음과 석송령 / 김영교

2018.03.10 08:23

김영교 조회 수: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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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마음과 석송령 / 김영교


몇 년전 서울행 추석이 생각난다. 귀성객의 물결은 도로마다 넘쳤다. 차량의 물길이 거세었다. 길이 비좁았다. 나라 전체가 비좁아 갔다. 하늘만은 넓고 광활했다. 하늘은 넉넉하게 비를 내려 먼지를 씻어주었다. 답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넓혀주었다.

 

꽤 많은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선산은 푸르게 숨 쉬고 있었다. 정작 고요했다. 개인 하늘 아래 깨끗하게 목욕한 산하며 투명한 시골 풍경이 오염된 내 마음을 말끔하게 해 주었다. 추석빔을 자연도 한몫 거들주고 있었다. 평화스러운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벌써 쉼을 호흡하고 있어 피곤이 가시어지는 듯 생기가 돌아 스스로도 놀랐다.

 

성묘 후 선산 아래 풍북초등학교가 있어 화장실 안내가 쉽게 이루어졌다. 우리 일행에게 친절을 보여준 그 학생 태도에서 무공해의 시골 인심을 엿볼 수 있어 가슴이 뭉클했다. 그 학교 사찰의 자녀인 듯 반듯하게 생긴 그 소년은 손을 씻고 나오는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봉지에서 부스럭 소리를 내며 꺼낸 먹음직스러운 시골 찐 고구마를 우리 손에 건네주었다. “어머나!” 함성을 지르는 우리 앞에 “하나 더 드실래요?” 하고 한 개씩 또 내 밀었다. 내려다 본 소년의 눈은 맑았고 소년의 마음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그 온기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고구마는 내가 선호하는 건강 식품중의 하나임을 이상하리만치 그 소년은 이미 알고 있는 눈빛 같았다. 얇고 빨간 껍질 밑에 노란 살이 잘 익은 수염 달린 밤 고구마였다. 비닐봉지가 아니고 정감이 가는, 다소 시골티가 나는 누런 종이 봉다리에서 그 소년이 꺼내준 고구마 맛은 바로 고향의 마음이었다. 이웃에게 퍼주고 나누어 먹는 것을 부모를 통해 배웠으리라! 인사 나눈 지나가는 사람에게 까지 먹을 것을 쥐어주는 정이 바로 시골을 병들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탯줄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떠나오던 우리 차를 향해 손 흔들어 주던 그 소년의 모습이 방과 후의 텅 빈 그 넓은 운동장을 꽉 채웠다. 소년의 키만큼 자란 활짝 핀 코스모스가 무더기, 무더기로 맑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소년을 벗해주고 서 있었다.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운동장만큼 휑한 가슴이 따뜻함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고향의 마음이랄까!

 

고향은 어머니다. 어머니를 떠나 너무 오랫동안 외지의 삶에 익숙했나보다. 언제나 찾아가 안길 수 있는 고향이 있고 향수에 목마르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도 있는 가족이 전화선 끝에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산가족이나 실향민의 아픔에 비하면 감사의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성묘는 느슨해진 <뿌리>의 끈을 탄력 있게 잡아 근원적 나를 있게 한다. 지혜로운 선조들은 바빠질 후손들의 앞날을 예견이나 한 듯 성묘를 통해 조상의 은덕을 기리며 자손으로서 긍지를 심어 줄려고 한 가문의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시사철 푸르고 싱싱한 소나무와 일년생 들풀 한 포기와의 다른 점은 <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금새 콧등이 시큰해 왔다. 이번 성묘는 뿌리와의 관계회복에 좋은 발돋움이 되어 기뻤다.

 

안동댐을 둘러볼 때 차창을 내려 맑은 공기를 깊이 들여 마셨다. 혈관이 열리며 눌려있던 세포가 만세하듯 아주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물이 돌아 흐른다는 하회 마을에 접어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학자 유성룡의 고택과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었던 기회는 서울 가족의 문화사랑에서 비롯된 배려였다. 임진왜란 때 세운 공덕과 많은 문서적 기록이 퇴색은 되었지만 원본 그대로 역사 위에 보존되고 있음은 감격이었다. 전 세계의 보물은 대부분 대영 박물관에 있다지만 둘러 본 전 영국여왕도 안동의 하회마을과 봉정사를 보고 원더풀을 연발했다지 않는가. 이 유적지를 찾는 많은 발길에게 영국 여왕이 다녀간 이유와 발자취는 고무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

 

거기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는 화제의 그 소나무를 만나러 갈 때 설렘은 고조에 달했다. 세금을 나라에 바치는 나무는 고금을 통해서 석송령 하나 뿐 일 것이다. 그리로 가는 길이 약간 질척이긴 했지만 주위는 물이 잘 빠져 있었고 깨끗하게 잘 손질되어 있었다. 나무는 아름다웠다.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토록 연로해도 열린 우산의 모습으로 가지마다 청청한 솔잎을 드리워 그늘도 주고 정서도 주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오고 있었다. 희한하게 휘익 휜 가지들을 수없이 거느린 이 소나무 같은 왕 소나무는 아마도 이 세상에는 둘도 없을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바닷가에는 태평양 해풍에 등이 굽은 소나무 집단이 있다. 손 팔 다리 있는 대로 다 펴서 육지를 향해 구부린 발레리나들의 군무(群舞)를 방불케 해 장관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 곳을 방문하기를 좋아하는데 그 쪽 소나무 群과는 별도의 아름다움이 이 석송령 안에 고즈넉하게 감돌고 있었다. 선비의 높고 단아한 기개가 군데군데 청태로 돋아있고 푸르게 서기(瑞氣)마저 감돌아 신비스럽기조차 했다.

 

“소나무의 한 품종인 이 석송령은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4.2m, 키가 10m에 이르는 큰 나무로서 나무 나이가 약 600여년으로 추정된다. 일명 반송(盤松) 또는 부자(富者)나무라고도 불리는 이 나무는 현재도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 하는 동신목으로 보호 받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약 600여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이 자리에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경에는 당시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6,600 m2을 상속등기 해주어 이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으로서는 유일하게 토지를 가진 부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이 한 최초의 십일조 (창14:20)봉헌을, 성격은 약간 다르지만, 이수목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감사표시>를 이렇게 한 것을 보면 나무 사랑에서 나라 사랑으로 확대된 하나님사랑이 이미 이 땅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마을과 함께 풍상을 겪어 온 석송령 나무의 생애는 침묵의 갑옷을 입고 세월 앞에 참으로 의연하였다. 병충에 견뎌 내야 하는 인고의 세월도 잘 버텼다. 해마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는 이 정직한 나무를 보면 세금 적게 내려는 얌체 납세의무 기피자들은 양심 찔리는 게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성급한 우리가 저 소나무한테서 배워야 할 점은 정직 외에도 참을성과 불변성의 미덕을 엿볼 수 있었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 조상들을 생각하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이 귀성(歸省)의 절기가 분주하게 살아온 나의 삶을 다시 한 번 더 살피게 했다. 영적으로는 나와 창조주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동에 있는 천연 기념물 294호로 선정된 이 노송(老松)을 만난 나의 감격은 찐 고구마를 건네준 소년의 모습과 함께 오랫동안 가슴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도 눈 감으면 떠오르는 석송령, 세금을 나라에 바치는 석송령 같은 정직의 나무 하나 내 가슴에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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