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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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이은봉

 

맵디매운 두부두루치기 백반을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리어카에서 파는 헐값의 검정 비닐구두 잘도 어울리던, 반주로 마신 몇 잔의 소주에도 쉽게 취하던, 마침내 암소를 끌고 가 썩은 사과를 바꿔 와도 좋다던, 맨몸으로도 좋다던 여자가 있었다. 한때는 자랑스럽게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여자, 그 여자


기왓장 같은 여자

장독대 같은 여자

두부두루치기 같은 여자

맵고 짠 여자 

 

가 있었다 어쩌다 내 품에 안기면 푸드득 잠들던 여자가 있었다.

신살구를 잘도 먹어치우던, 지금은 된장찌개 곧잘 끓이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여자…

 


- 시선집알뿌리를 키우며(현대시세계, 2007)


기왓장 같고 장독대 같은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깊이 있고 속 좋고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데다가 아무거나 걸치면 척 어울리는 맵시 있는 여자한때는 고문진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닐’ 정도로 먹물깨나 먹었고 살림 또한 맵고 짜게 잘하는 여자가만 읽어가다 보면 시인의 자기 안 사람 자랑이 분명하다아내는 시인 남편으로부터 헌정 받은 이 시를 두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물론 까탈을 부릴 하등의 이유는 없겠으나 당신 만나 이렇게 푹 망가지며 산다고 한번쯤 눈을 흘길지는 모르겠다그럴 때 또 시인은 품에 안으면 그만이다.


  이은봉 시인의 정신적 지향은 대체로 올곧고 때로는 서늘한 결기가 느껴지지만시인은 이웃에 다정다감하고 둘레에 겸손한 사람이다또 그다지 날리거나 겉치레에 익숙해 뵈지도 않는다미루어 짐작하건데 이들 부부의 금슬 또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으리라끊임없이 밖으로 나대려고 하는 일반적인 남정네들의 원심력과는 달리 시인은 오랫동안 가정이란 구심을 향해 안으로 오며드는 구심력을 발휘해 왔다오랜 기간 교사인 부인과 가족을 서울에 두고 자신은 직장인 광주대학교가 있는 광주에 머물며 주말부부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세상 모든 남성들의 시선을 안으로 돌려 힘겨운 여건 가운데서도 꿋꿋이 가정을 지켜오고 있는'기왓장'같고 '장독대같은 우리들의 아내와 어머니를 되돌아보게 한다자연스레 사람이 먼저인 세상과 가족이 우선인 세상을 생각하게 한다그러고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숙 여사에게 지어 갖다 바치는 시라 해도 어색할 것 같지 않다기실 부부금슬을 기반으로 하는 가정의 화목과 평화는 모든 것에 우선하리라.


  미국 공화당의 골든 보이로 불리던 40대 기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돌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정치인생을 떠나 한 가정의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삶에 보다 충실하겠다는 게 이유다깊은 속사정이나 다른 내막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권력의 정점에서 평범한 가장이 되겠다는 그의 모습은 미국 사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던지는 의미가 크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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