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초사돈 / 김영교

2012.03.12 13:09

김영교 조회 수:803 추천:113

지금 우리집 뒷뜰에는 분홍색깔과 크림 색깔의 풀르머리아(Plumeria)가 한창이다. 향기 발하며 하와이 레이 꽃다발의 고운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몇 년전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대학선배님 부군께서 인심 좋게 베어 나누어 주셨다. 우리를 화초 사돈으로 인연을 맺게 해준 바로 그 꽃나무다. 잎도 꽃도 향도 좋아 물을 줄 때 마다 선배님 내외분을 만난다. 지금 화초는 튼튼하게 잘 자라 보는 사람마다 탐내는데 어이 없게도 나누어 주신 본인은 암수술 후 무척 힘드는 투병의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매일 화초를 대하며 선배님 내외를 생각하게 되고 속히 쾌차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나의 화초 사돈 1호시다.

지난 주말 글사랑 동아리 회원의 작은 농장 초대가 있었다. 화분 2개를 안고 멀리 사는 목사님도 참석했다. 큰 것은 내 몫이라 구별해 주시고 주인 농부에게는 작은 화분을, 잘 키워 회원들 서로 나누어 가지기를 당부하셨다. 이렇게 바나바와의 첫 대면은 이루어졌다. 그 목사님이 정성스레 안고 온 잘생기지도 않은 화초, 꽃도 없이 목이 타는듯 겨우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던 가련한 바나바, 축 늘어져 있더니 뿌려준 물기에 금세 목을 쳐들고 생기도는 모습이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조심스레 싣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나를 신나게 만들었다.

평소에 읽히 들어 알고 있는 바울의 동역자 사람 바나바는 앞바퀴, 새로 우리집에 입양된 식물 바나바는 뒷바퀴, 나의 일상은 신나게 굴러가고 있다. 두 바나바를 만나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난다. 이 두 바나바를 알고 지내는 나의 기쁨이 일방통행의 흐름이지만 작아도 예사롭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역사의 현장에서 강력하게 살아있는 사람바나바, 뒤뜨락에 내려서기만 하면 나를 사로잡는 화분속의 바나바 쌍떡잎... 둘다 생명빛깔 짙은 초록색이다.

이 목사님의 배려로 한 가족이 된 바나바, 건강문제로 휘청했던 내게 단연코 효험있는 바나바의 입양은 팔 벌린 환대로 출발, 이렇게 자연스럽게 김씨 가문에 흡수 되었다.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사랑의 눈빛을 건낸다. 검불 묻은 몸통줄기와 얼굴을 깨끗이 씻어주고 좋은 오개닉 흙 옷을 골고루 덧입혔다. 하루가 다르게 안색은 초록으로 짙어가더니 탐스럽게 윤기까지 머금었다. 잎사귀 안팎으로 생선뼈 같은 엽맥이 두드러져 먹음직스럽게 커보인다. 타원형의 이파리들이 단정하게 도톰한 모양새를 내며 싱싱하게 자리를 굳혀가고 있어 내 은밀한 즐거움이 뚱뚱 살찌고 있다.오늘은 화분까지 잘 닦았더니 흰 화분이 빛을 내며 화초의 초록 색깔을 더 돋보이게 한다. 옆의 화분들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뒤뜰이 격상되었다.

이 목사님 가정에도 투병의 경험이 있는 가족이 있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있고 나눔의 사랑 마음이 그 무거운 약초 화분 배달 동기가 아닌가 싶었다. 송구하고 고마움에 더 잘 키워야지 하는 마음이 솟아났다. 열심히 생식으로 먹을 참이다. 아침이면 손바닥 반만한 이파리 2개씩 씹어 먹는다. 물 한컵은 그 다음에 마시고 바로 이것이 생즙이 아닌가. 그다음 간단한 식사를 한다. 외출을 했다가도 바나바가 궁금해 빨리 귀가한다. 일찍 퇴근한 남편을 뒤뜨락으로 불러내 새로 입양한 화초를 자랑하며 효험을 설명했다. 잎을 따서 그냥 생것으로 먹어주기를 강요(?)했더니 고추장 타령을 한다. 쌈처럼 먹는 것도 과히 나쁜 생각은 아니다란 남편의 아이디어가 빙고다. 바나바야, 우리 두 내외의 섭취량을 감당하려면 쑥쑥 잘 자라주어야겠다.

바나바는 열대, 아열대 지방에서 자생하고 있는 다년생 상록수 식물이다. 꽃은 옅은 보라색이며, 타원형의 두꺼운 잎이 달려 있다. 잎에는 식이섬유와 아연, 마그네슘이 풍부한 영양분이 있고 카페인도 없어 면역성을 높이는 기능도 있어 암환자에게도 좋고 특히 혈당조절에 특효라고 알려져 온 의약용 식물이다. 필리핀에서는 1000년 전부터 바나바 잎을 달여 마셔왔기에 당뇨병이나 비만, 변비, 피부병 환자들의 숫자가 적다고 한다.

바나바는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 당뇨병으로 인한 제2합병증에까지 효과적이라고 하니 그 헌신적 기능이 얼마나 고맙고 보은의 약용식물인가 말이다. 바나바 식물을 각종 음식물에 함께 곁들여 조리해도 특유의 영양성분이 파괴되지 않는다니 生으로던 熱을 가하던 편리한 신토불이 자연식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훌륭한 효자를 입양했으니 기쁠 수밖에. 출가시킬 알맞은 사돈댁을 물색할 참이다. 우선은 화초사돈 1호 선배님 댁에 분양, 쾌차 문병을 겸해 사돈관계를 돈독이 하고 싶다. 화초사돈 2호 드디어 탄생, 사우스베이 글사랑 교실의 김목사님 댁이다.

이렇게 불어날 화초사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바나바 화초 선교사가 이미 된 기분이다.

중앙일보 3/201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70 시 창작 - 나팔꽃 / 김영교 [1] 김영교 2017.05.22 18466
669 여행수필 - 그리움은 흘러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22 9571
668 시 창작 - 셀폰소리 / 김영교 [3] 김영교 2017.05.22 9151
667 신작시 - 우린 같은 방에 / 김영교 3/26/2017 [2] 김영교 2017.03.26 8973
666 시 창작 - 나루터와 나룻배 - 김영교 [2] 김영교 2017.07.14 8938
665 3월의 단상(斷想) / 김영교 [8] 김영교 2018.03.07 4581
664 창작 시 - 날개와 지휘봉 / 김영교 [8] 김영교 2017.10.04 4332
663 에니미모 김영교 2010.12.13 1579
662 가장 아름다운 나무(Loveliest of Trees)/번역 김영교 2007.02.28 1482
661 수필 - 이름 꽃 / 김영교 [17] 김영교 2018.02.07 1363
660 수필 - 스카티가 남긴 자국 / 김영교 [10] 김영교 2017.04.11 1342
659 수필창작 - 길이 아니거든 가지마라 / 김영교 kimyoungkyo 2018.08.08 1254
658 창작 시 - 가을표정 3 - 밤과 한가위 /김영교 [4] 김영교 2017.10.13 1209
657 창작 시 - 들꽃 학교 / 김영교 [9] 김영교 2017.09.17 1196
656 쉬어가는 의자 김영교 2016.11.06 1152
655 신작 수필 - 어머니날 단상 / 김영교 [5] 김영교 2017.05.13 1134
654 창작 시 - 가을표정 4 - 호박 오가리 /김영교 [8] 김영교 2017.10.16 1101
653 창작 시 - 배경에 눕다 / 김영교 [6] 김영교 2017.09.23 1092
652 수필 창작- 바튼 기침소리 - 김영교 [5] 김영교 2017.10.18 1091
651 창작 시 - 답답한 이유를 묻거든 / 김영교 [1] 김영교 2017.10.24 1086

회원:
1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1
어제:
5
전체:
647,6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