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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경기


동아줄 김태수

공이 굴러간다.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며. 우리가 사는 길이 레인에 펼쳐진다. 공은 불안을 재우려는 듯 삼각 구조 속으로 맹렬히 파고든다. 구르기 위해 태어난 공은 막아서면 부딪침으로써 맞선다. 견고한 안정과 평화의 삼각 구조마저도 허물어뜨린다. 구속되지 않으려는 파괴본능이다. 바른 부딪침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볼링은 개인 실력차이만큼 핸디캡 점수를 가감해서 경기한다. 강자와 약자의 타협이고, 있는 자의 배려와 부족한 자의 정당한 요구이다. 규칙을 정하고 지키며 어울린다. 경기는 어느 쪽도 불만 없이 성립되어,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정해진 길을 따라 나아간다. 때로는 곧고, 때로는 넘어질 듯. 의욕이 앞서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제자리가 아니면 안정감이 줄어들고, 중심을 잃으면 바로 가지 못한다. 너무 강하면 부서짐이 빠르고 너무 느리면 변화의 적응이 어렵다.

   목표를 향해 공은 미친 듯이 달려가야 한다. 자신을 내어 놓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한다.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나게 하려면 성공적으로 몸을 말아 꼭짓점 사이로 밀어 넣어야 한다. 그러면 잠시 일자(一字)의 평원 속에 모든 것이 수용된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새 아침을 맞는 시작처럼. 공을 굴릴 때 승패와 더불어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한다. 다음엔 더 잘해보려는 다짐을 낳는다. 일상의 만남이 그런 것처럼.

  던진 대로 공은 굴러가 쭉정이가 되기도, 알곡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다가서고, 물러서고, 때론 한발 비켜서며, 전후좌우를 살펴야 한다. 알맞은 곳에서의 만남과 부딪침이어야 한다. 때로는 잘못된 부딪침으로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오면 한쪽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강약 완급이 어우러지고, 전후좌우를 살펴 나아갈지라도 희비가 엇갈리고 의외일 때도 있다. 그것은 본래 그리되도록 한 시험과 자성(自省)의 요구이다. 공은 한길만을 외곬으로 달리면서 옆길을 넘보지 않는다. 매번 같은 길을 따라가도록 해보지만 똑같은 행적을 만들지 않는다.

  야수의 포효는 파열을 일으키며 승화된다. 거침없이 달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해체해 버리는 그 통쾌함. 어떻게 부딪쳐야 바른 방법인가를 큰 소리로 말한다. 파열음을 일으키며 발산된 거듭남의 희열은 산고(産苦)의 신비이기도 하다. 지켜보고 기다려온 모든 이가 함께하는 이유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나는 적당한 내기, 이를테면 저녁 사기나 게임비 내기를 하곤 한다. 볼링 시작한 지 일이 년 지나면서 일주일에 두세 번씩 K형과 내기 경기를 하곤 했다. 그는 연상인데도16게임을 거뜬히 소화해냈다. 처음엔 그가 이겼으나 시간이 가면서 오히려 내가 핸디캡을 10~20점 줘야 할 만큼 내 실력이 늘었다. K형은 나와 게임 만 하면 왜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곤 했다. 구력도 낮은, 신출내기인 나한테 진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그의 강한 자존심과 승리욕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던 건 아닐까?

40여 년 꾸준히 해온 볼링선수와도 가끔 경기한다. 그는 평소 미국볼링협회 리그 경기에서 늘 200점 이상을 받는 실력자인데, 이변이 생겼다. 엊그제 나와의 시합에서는 겨우 평균 170점대에 그쳤다. 그는 왜 이렇지, 자꾸 스플릿만 나오고, 미치겠네 하면서도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아니 물어볼 필요가 없는 듯 스스로 고쳐 가려 한다. 세 경기 이상 같은 문제로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면, 아집이 강하거나, 변화에 적응 못 하거나, 흐름에 뒤떨어진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고 하수가 고수에게 생각한 대로 조언했다가는 건방지다는 소릴 듣는다. 볼링 입문기 때에는 자신보다 좀 나은 사람의 말 대로 따라 해본다. 그러다 좀 나아지면 자신의 고집대로만 하려 한다. 나도 그랬다. 익숙해지는 만큼 변화를 거부한다. 일상생활도,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훈수는 늘 실제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잊는 걸까?

볼링 경기는 맺음과 연결이 있고, 성패(成敗)는 또 다른 성패로 이어져 인생 10막을 이룬다. 잘한 만큼 덤이 따르니 인(因)이 되고 그리하여 나은 삶의 연(緣)이 된다. 모든 일은 한 번에 쉽게 이룰 수 없으니 오히려 또 한 번의 기회에 감사와 소중함이 배어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역전 드라마가 펼쳐진다. 매사는 균형과 리듬과 타이밍의 조화이다. 개성과 의지대로 나아갈지라도 중심이 움직일 때는 흐트러짐이 없어야 한다. 자신의 고유리듬으로 타이밍을 잡아 손과 발과 머리가 균형을 이뤄나가야, 기술, 실행, 생각이 유기적인 관계가 되어 뜻을 이룬다. 끊임없는 노력과 자아 성찰 그리고 새로워지려는 자세 없이는 늘 그 수준에 머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도움을 주고받지도 못한다. 성공은 부딪쳐야 이룰 수 있고, 틀은 허물어트려야 새로워진다. 볼링이 일러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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