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날아 올라간 로스앤젤레스”

(200 자 X 115 매)

    “아따, 보소.  사장님이 그라 부탁을 하이까 내가 이레 나서는 기제, 아니몬 지가 이런 일에 안끼아드는 사람입니더.  아시겠지예?  사장님 보이까 인품도 있다 하고 인물도 훤하고 지가 딴건 몬 해도 사람 하나는 잘 본다 아입니껴.”
    말을 하다말고 김인달은 지나가는 웨이트레스를 불러 세웠다.
    “아가야, 내, 이거 콕테일 하나 더 도고.  그라고, 이기 머꼬?  사장님 기신데 이 안주상이 머꼬?  마른 안주도 큰 접시로 하나 갖고 온나.  과일 있나?  과일 안주도 한 접시 갖고 온나.  알깃제?”
    우영덕 사장은 그런 김인달을 보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이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소득이 없어 보이면 저 먹은 건 제가 계산하라고 미뤄 부치고 모른척할 예정이었다.  그렇잖아도 군자금이 쪼달리는 판에 영양가 없이 카페에 앉아서 이런 놈 술값 내줄 돈이 어디 있는가 말이다.
    웨이트레스가 새로 날라다 놓은 칵테일을 김인달은 순식간에 막걸리 마시듯 해치워버렸다.  우영덕 사장은 미운 내색을 감추려고 애쓰며 다소 초조하게 옆에 놓인 가죽으로 만든 고급 서류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눈치 빠른 김인달이 이미 그런 우영덕 사장의 마음을 떠본 듯 히죽 웃으며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사장님예, 만나보시몬 만족하실낍니더.  지가 보장합니더.”
    “아, 그래요?  어디 기다려 봅시다.”
    우영덕 사장은 거룩한 표정을 짓고 무게 있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비싼 맞춤 양복에 고급 넥타이, 가죽 서류 가방, 진짜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롤렉스처럼 보이는 시계, 이런 걸로 휘감고 있는 우영덕 사장은 그 훤한 인물과 훌쩍 큰 키 까지 잘 어우러져 큰 재벌 회사의 사장 감으로써 티끌만큼의 손색도 없었다.  훌륭한 언변, 명석한 두뇌에 경영학 석사 학위까지 갖춰져서 다만 하나 빠져 있는 성실성까지 갖출 수만 있었다면 진정으로 큰 회사의 사장님으로써 모두의 존경을 받는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안타까운 사람이었다.  아무데서나 불쑥불쑥 내미는 으리으리한 명함에 박혀있는 회사는 본사가 서울로 되어있고 런던, 함부르크, 파리, 로마에 지점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빽빽하게 우영덕 사장이 가지고 있는 공직이 나열되어 있었다.

    “대한민국 불우 청소년 선도회 회장”
    “지역 사회 발전 촉진회 위원장”
    “범아시아 기아 추방 협회 회장”
    “불우 이웃 돕기 서울 지역 본부장”

    이렇게 그럴싸한 간판을 내걸고 이곳에 기웃하고 저곳을 드려다 보면서 우영덕 사장은 지금까지 그런대로 그 방면에서는 성공적으로 잘 살아온 사람이었다.  사회의 상층 구조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주변을 맴돌며 그들이 직접 해내기에 껄끄러운 그런 일들을 더러 해결해주고 뒷돈을 좀 받아 챙기기도 하면서 깐에는 꽤 능력을 인정받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활에도 한계가 느껴지고 점점 자신이 없어지면서 웅영덕 사장은 더 늙기 전에 빨리 굵게 한탕해서 노후 대책을 세워 놓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찌 어찌 몇 다리를 걸치면서 로스앤젤레스에서 꽤 발이 넓다고 인정받고 있는 김인달을 소개받아 서울에서부터 전화로 몇 차례 통화를 한 후 약 2 개월쯤 전에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여 바로 이 카페에서 청 대면을 했었다.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전투기 수입 사업에 관계하여 고위층으로부터 극비리에 어떤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왔다고 말했을 때 김인달은 그 단추 같이 조그만 눈을 반짝 빛내며 관심을 표명했었다.  문제는 그 전투기가 자꾸 기계적 고장을 일으켜 여러 가지 부품이 필요한데 원체 저자세에서 미국 정부와 매매 계약을 하다보니까 정비와 품질 보증에 대한 허술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국민으로부터 의혹과 문제가 많았었는데 이제 이걸 정식 절차를 거쳐서 표면에 내세워 해결할 처지가 못 된다.  이제 비공식 자금을 동원해서라도 이 부품들을 극비리에 구입하여 비밀 통로를 거쳐 수입을 해서 그 전투기들이 계속 가동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이 비밀 통로를 통한 전투기 부품 수입을 내가 청탁 받고 있다, 라는 대충 그런 요지의 설명이었다.
    설명을 끝내고 무게 있는 표정으로 의자 등에 몸을 기대면서 우영덕 사장은 드리운 낚싯밥을 김인달이 제대로 물어주는지 다소 긴장하며 내려다보았다.  그 때 김인달은 앞에 놓인 튀긴 닭다리 접시를 말끔히 비우며 궁상을 떨던 끝에 아직 음식이 많이 남이 있는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었다.
    “앗따, 이 일이 생각보다 좀 스케일이 큰기 아입니껴?  사업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감은 있으십니껴?”
    우영덕 사장은 다소 경멸 섞인 눈으로 김인달을 보면서 말했다.
    “일급 대외비라서 정확한 답을 회피해야 하겠습니다만, 참고삼아 말씀드린다면 대충 육 천만 달러 정도의 일입니다.  물론 그건 지금 당장 내가 고위층으로부터 명령받아 있는 프로젝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전투기가 존립하는 한 계속 정비를 해야 할 것이도 어느 시점이 되어 정비비를 공식적으로 무리 없이 인정받을 수 있게 될 때 까지는 계속되어져야하는 그런 사업입니다.”
    김인달의 단추 눈이 깜빡깜빡했다.  닭기름 묻은 입언저리를 손등으로 쓰윽 문질러 닦고 말했다.
    “내 하모 쓸만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아입니껴.  워싱턴에 큰 줄을 잡고 미국 국회의원들과도 친분이 두터워서 로비 활동인지 뭔지 해대는 대단한 분이 있십니더.”
    “아, 그래요?  그런데, 이게 정상 루트를 통하지 않는 일이 되어놔서 이 일을 미국에서 맡아서 해줄 사람이 끄나풀도 있어야 되겠지만 또 재력이 만만치 않게 있어야 할 텐데........”
    우영덕 사장이 진짜 알고 싶은 것을 떠봤다.  웬일인지 김인달이 씨익 웃고 말했다.
    “재력 걱정은 마이소.  이 양반이 돈 액수 때문에 손을 못 댄다면 한국 교포로는 이 일에 손댈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아입니껴.”
    “그래요오?  그 정돕니까?”
    우영덕 사장은 일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는 데에 대한 만족감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누군지 모르지만 대단한 대장부인 모양이군요.”
    우영덕 사장의 말에 김인달은 마지막 남은 닭다리를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이기 대장부가 아이라 여자라예.”

    약 2 개월 전 알지도 못하는 엉뚱한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을 때 김인달은 사실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좀 해먹고 저기서도 좀 해먹고 그저 그렇고 그렇게 살아온 인생 역정이었으므로 정체불명의 전화가 왔을 때에 속으로 긴장하며 애써 태연을 가장하는 것은 말하자면 김인달에게는 기본 생존 기술에 해당하는 그런 것이었다.  무게를 잡은 거룩한 목소리가 자기는 지금 서울에서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 모종의 극비 사업 건 때문에 조만간 한 번 직접 상면하고 의논을 하고 싶다는 것, 김인달씨의 고매한 명성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는 것, 등등을 우영덕 사장이 이야기했을 때 김인달은 오랫동안 험한 바닥을 굴러다닌 경험에 의하여 직감적으로 뭔가 쓸만한 일이 제 발로 굴러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무릇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이 다 제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듯이 김인달 또한 나름대로 특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김인달이 좀 바보스럽고 뭔가 모자라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었다.  더러 무식하고 머리가 잘 돌지 않는 것처럼 느끼게 해줌으로써 상대가 경계심을 풀게 하고 그렇게 되어있는 사이에 우물쭈물 김인달은 상대방이 알게 모르게 제가 챙기고 싶은 것을 대충 챙겨버리는 그런 식이었던 것이다.  우영덕 사장이 처음 전화를 걸어왔을 때 김인달은 주로 듣기만 했고 마침내 이것이 비지네스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섰을 때에 비로소 나서서 나름대로의 자기선전을 잠시 했었다.
    “않있능교, 지가 이래봬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그란대로 쪼깨 발이 넓은 편이다 아입니껴.  전화 잘 했심더.  그라, 운제 올낍니껴?”
    이렇게 해서 만나보니 역시 김인달에게는 우영덕 사장이 먹기 쉬운 고기였다.  반질반질 닳고 닳은 김인달은 경험에 의하여 허세가 심하고 거룩한 고기는 항상 먹기가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상대방의 허영심을 잘 만족시켜 주기만 하면 이 고기는 아주 손쉽게 끌려오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첫 번째 만나서 소주 두 병을 곁들여 저녁을 끝냈을 때 김인달이 말했었다.
    “사장님 같으신 분을 모시는 것도 큰 영광 아입니껴.  이차는 지가 사게 놔두이소.  가입시더.”
    기세좋게 일어나면서 김인달은 우영덕 사장의 그 가죽 서류 가방를 소중하게 대신 들었다.
    “아니, 이거, 그럴 필요 없는데 ........ 허, 허, 허.”
    우영덕 사장은 만족스럽게 허허허 웃으면서 이로써 서열이 경정되었다고 생각했고 김인달은 히죽 히죽 웃으면서 이제 이차로 가는 곳에서도 거룩하게 상석을 점령한 우영덕 사장이 돈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단추 같이 조그만 눈을 반짝이며 따락따락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 우영덕 사장은 허우대도 좋고 거룩한 얼굴도 좋고 다 좋지만 어쩐지 큰 돈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다.  아마 몇 천불 내지 몇 만불 정도의 푼돈을 긁어낼 수 있다면 다행이랄까, 뭐, 말하자면 그런 정도의ㅣ 초라한 냄새에 불과했다.  그래서 김인달은 이 케이스를 윤혜린에게 접속시켜주는 것이 가장 이득스러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몇 푼 안 되는 수입이라면 빨랑빨랑 일 끝내고 수금할 돈 해버리고 또 딴 일을 알아봐야 채산성이 있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윤혜린만큼 깔끔하고 빨리 일 처리를 해주는 파트너가 없는 것이다.

    “아, 사장님예, 왔다 이입니껴.”
    입구 쪽을 주시하고 있던 김인달이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말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윤여사님예.  이쪽입니더.  이쪽입니더.”
    주위에 있는 다른 손님은 아랑곳도 없이 김인달이 큰 소리로 윤혜린을 불렀다.  돌아보고 싶은 호기심을 애써 누르며 우영덕 사장은 일부러 천천히 탁자에 놓여있던 돋보기안경을 집어 들고 손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김이사님.  늦어서 미안해요.”
    뜻밖에도 감칠 맛있게 은방울 굴러가는 것 같은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우영덕 사장은 그 소리의 주인공을 아니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놀랐다.  거기에 서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목소리 못지않게 매혹적인 팔등신의 천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워싱턴에서 로비 활동을 하고 있는 노련한 사람이 이런 모델 뺨칠 만큼 길게 잘 빠진 미녀일 것이라고는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우영덕 사장도 상상을 할 수가 없었던 일이다.
    “앗따, 사장님예.  인사들 나누이소.  이쪽은 지가 이미 말씀드린 윤혜린 여사니 아인교.  윤여사님.  이쪽은 우사장님입니더.”
    “안녕하세요, 사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스스럼없이 손을 내미는 윤혜린을 우영덕 사장은 다소 주눅이 들어서 올려다보면서 그 손을 잡고 악수했다.  윤혜린의 손은 따뜻했고 야들야들 보들보들해서 놓기가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런 감정을 알아챘는지 윤혜린의 볼에 살짝 홍조가 올라오는 것도 같았고 약간 미소가 떠오른 것 같고 아닌 것도 같았는데 그것이 또한 우영덕 사장을 더욱 환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손톱에 빨간 칠을 한 하얀 손으로 윤혜린은 핸드백에서 명함을 하나 뽑아내어 우영덕 사장에게 내밀었다.  보라색 꽃이 명함 가장자리로 만발한 그 가운데에는 그저 영문으로 간단하게 이름과 모빌 전화 번호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HYERIN YOON
    MOBILE PH. 463-275-XXXX

    다소 뜻밖이라는 우영덕 사장의 얼굴을 읽었는지 윤혜린이 설명했다.
    “제가 하는 일이 대개는 비밀 사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회사 이름이다 뭐다 하면서 거창하게 떠벌릴 처지가 못 되거든요.”
    옆에서 보고 있던 김인달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유식한 말을 한 번 해봤다.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아입니껴.  큰 일하는 사람일수록 소리가 없지예.”    꿈에서 깨어난 듯 우영덕 사장이 제 페이스를 되찾고 깊은 목소리로 무게 있게 말했다.
    “이거, 결례가 많습니다.  우영덕입니다.”
    윤혜린의 명함과 달리 뭔가 많이 인쇄되어있느 자기 것을 우영덕은 괜히 쭈뼛쭈뼛한 기분으로 내밀었다.  윤혜린은 들어서 잠깐 훑어본 후 관심없는 듯 탁자에 내려놓았다.  이 점이 우영덕 사장의 자존심을 순간적으로 다소 손상했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여기 김이사님이 급한 일이 있다고 꼭 로스앤젤레스를 와야 한다고 무려 두 달 전부터 너무 여러 번 전화를 하셔서 잠깐 왔어요.  곧 다시 워싱턴으로 가야 되니까 예의가 아니지만 서로 이해를 해주기로 하고 곧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제가 얼핏 듣기로는 한국 정부와 관계되는 어떤 사업을 갖고 계시다고 하던데........”
    우영덕 사장은 이 젊은 여자의 당돌하고 단도직입적인 태도에 다소 당황했다.
    “그........실은........좀 비밀 사항에 관련되는 그런 일이........”
    “아, 이 자리가 그런 얘기를 하기에 마땅치 않다고 느끼시는 모양이군요?  그럼 제 호텔로 가시겠어요?  저도 좀 피곤해서 제 방에서 편안하게 얘기하는 것도 괜찮겠어요.”
    완연히 당황한 표정을 짓는 우영덕 사장에게 옆에서 보고 있던 김인달이 얼굴을 가까이하며 귓속말하듯 말했다.
    “우리 윤여사께서는 모든 일을 능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원칙 제 일조로 알고 있다 아입니껴.”
    윤혜린이 벌써 핸드백을 집어 들며 김인달에게 말했다.
    “김이사님을 저희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가보세요.  이렇게 멋있고 기품 있으시고 더구나 큰 사업까지 손에 쥐고 있는 사장님을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알았심니더.  잘해 보이소.”
    김인달이 의미있는 웃음을 흘리며 윤혜린에게 말했다.
    “호텔이 어디신지는 모르지만 제가 모시고 가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요?  가는 도장 차 안에서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아, 차를 렌트하셨군요?  잘됐어요.  그러면 김이사님은 그냥 댁에 가셔도 되겠네요.  연락드릴게요.”
    “예, 알겠심니더.  아무 때라도 지시사항 있으시모 전화 주이소.”
    김인달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깍듯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 우영덕 사장의 귀에 대고 끈적거리는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사장님예, 잘해 보이소.  우리 윤여사님 대단한 분이십니더.”
    강심장의 우영덕 사장도 이번에는 은근히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대단하다는 게야?  우영덕 사장은 그 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찰칵, 능숙한 솜씨로 플라스틱 카드를 넣었다 빼서 문을 따고 먼저 호텔 방으로 들어가면서 윤혜린은 뒤에서 민기적거리고 있는 우영덕 사장에게 빨리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아휴, 너무 피곤해요.  비행기 타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거기 앉으세요, 사장님.”
    윤혜린은 자기 호텔 방에 수컷을 하나 갖다놓고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여자들은 다 이렇게 된는 것인가?  우영덕 사장은 처음 당하는 경험이 그저 황당하기만 했다.
    “미안해요.  손 좀 씻고 나올게요.  사장님도 편안하게 하세요.  윗도리 벗으셔도 돼요.”
    윤혜린은 투피스 윗도리를 벗어서 침대 위에 던져놓고 두 발을 차례로 차서 하이힐을 벗어 바닥에 팽개친 후 욕실로 들어갔다.  조금 있자 수도꼭지에서 쏴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영덕 사장은 혼자서 방안에 우두커니 앉아 뭐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상황 판단을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윤혜린이 벗어 팽개친 하이힐 두 짝이 묘하게 눈 안으로 들어오면서 우영덕 사장은 더 중요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도 아랫도리가 뿌듯하게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물소리가 그치고 잠시 후 벌컥 욕실 문이 열리더니 윤혜린이 나왔다.  젖은 손을 타월로 닦으며 와서 우영덕 사장 앞 침대 가에 걸터앉았다.  치켜 올라간 스커트 자락 사이로 허벅지의 저 깊은 곳까지 우영덕 사장의 눈에 들어오자 그는 저도 모르게 꼬르륵 침을 삼키며 벌겋게 얼굴을 붉혔다.  그런 우영덕 사장의 괴로움을 아는지 모른는지 윤혜린이 입을 열었다.  
    “본론을 말씀해보세요, 사장님.”
    “네?”
    갑자기 우영덕 사장이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헤맸다.
    “그, 한국 공군의 전투기 사업 말이에요.  아마 율곡 사업 말씀하시는 모양인데 그건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일 아닌가요?  어떤 일이 남아 있고 제가 할 일은 뭐죠?”
    우영덕 사장은 자꾸 어지럽게 분산되는 집중력을 애써 불러 모아 사업에 대한 허구적 계획을 설명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천사같이 예쁜 윤혜린은 입술을 뾰족 내밀고 주의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만지면 묻어날 것처럼 보드라워 보이는 윤혜린의 몸을 힐끔 힐끔 훔쳐보면서 우영덕 사장은 횡설수설했다.  말하자면,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절대 국민으리 눈을 피해 그 부속품을 조달해야 되는데 그래서 다소 위험 부담이 있고 그 위험 부담 때문에 반대급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겁니다, 라는 그런 설명이었다.
    “전쟁 무기 또는 그 부속품이 미국 밖으로 반출되려면 미국의 국무성에서 면허가 나와야 해요.  면허가 나오려면 당연히 한국 정부에서 요청이 있어야하거든요.  한국 정부에서 요청을 하게 만들 수는 있나요?”
    “그건 문제없습니다.  우리가 피하고자하는 것은 국민의 눈이고 매스컴의 눈일 뿐입니다.  당연히 현 정부로 부터는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낼 수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이 일이 현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는 그렇게 안 되어 있지만........”
    “이를테면 일이 잘못되어서 터져버리면 정부는 모르는 일이노라고 발뺌할 자리를 만들어 놓는 셈이군요?”
    윤혜린이 침대 위에서 다리를 꼬며 말했다.  허옇게 드러나는 허벅비를 우영덕 사장은 애써 못 본체했다.  일단 순서대로 먹자.  원 목적은 우선 얼마간의 돈부터 먹는 것이다.  저 야들야들한 몸은 참았다가 그 다음에 서서히, 서서히........
    “이를테면........그런 셈입니다.”
    “알았어요.  이 일에 협조해드리면 저에게는 어떤 이익이 배정되어 있나요?”
    “약 3 퍼센트 정도의 수수료를 드릴 수 있습니다.”
    “3 퍼센트라면........?”
    “첫 번째 청탁 받아 있는 건이 외형 육 천만 달러 정도 됩니다.”
    “첫 번째라는 것은 무슨 뜻이죠?”    “전투기가 가동하는 한은 언제든지 부속품과 예방 정비에 관계되는 각종 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저 한 번에 끝나고 말 성질의 것이 아니죠.”
    잠시 생각을 하던 윤혜린이 물었다.
    “이건 누구를 끼고 하는 일이죠?  누가 청탁하는 일이에요?”    우영덕 사장이 엄숙한 얼굴에 난색을 표명하며 말했다.
    “실은......고위층으로부터 누설하지 말라는 밀명을 받았기 때문에......”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특별히 알아야할 필요는 없는 일이에요.  사실은 똑 부러지게 저한테 관계되는 일도 아니니까요.  다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에는 누가 다치게 계획되어 있는 건지 그게 궁금했죠.”
    윤혜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빨리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런 비지네스를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구차스럽게 긴 설명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윤혜린이 우영덕 사장을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천사의 웃음처럼 천진스럽게 느껴져서 우영덕 사장은 자기가 지금 꾸미고 있는 일에 찔끔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김이사님 말로는 어느 정도 제 돈도 필요하다고 하던데......”
    우영덕 사장이 다소 긴장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여기서 잘 따내야 내 계획이 성사되는 거다.  우영덕 사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윤혜린은 천진난만한 천사 같은 웃음을 흘리며 흥미진진하게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말하자면, 이 일이 정확하게 올바른 길을 통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므로 자금의 조달과 송금에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이에 이미 전투기 몇 대가 부품의 부족으로 정비가 불가능한 상화 속에서 그라운드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다행히도 아직은보도 기관에서 눈치를 못 채고 있기 때문에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더 일이 터지기 전에 필요한 부품을 미국에서 한국으로 공수해서 전투기들이 다시 날아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건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요?”
    윤혜린이 우영덕 사장을 빤히 드려다 보면서 물었다.  우영덕 사장은 은근히 초조해지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진작 설명해야 될 사항, 왜 윤혜린의 돈이 더러 필요한가에 대해서 설명을 아직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미국의 방위 산업체에서는 말하자면 부품의 추가 발주 시에는 총 계약금의 10 퍼센트를 입금시켜야 저희가 보낸 주문을 절차에 집어넣겠다는 겁니다.  큰돈이 아니긴 합니다만 한국 정부에서 돈이 오려면 최소한 석 달은 잡아야합니다.  몇 몇 재력 있는 개인과도 접촉을 해보았지만 모두 몸을 사리고 숨기에만 바쁩니다.  임기가 몇 개월 남지 아니한 정부를 위해서 위험한 마지막 배를 안타겠다는 그런 겁니다.”
    “그 부분이 말하자면 제 돈이 필요한 부분이군요.”
    “그렇습니다.  최소한 3 개월은 지나야 제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서 송금을 받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액은?”
    “미화로 삼백만 달러입니다.”
    “사장님께서는 그만한 금액이 없으십니까?”
    예상 못했던 질문에 우영덕 사장은 찔끔했다.  그러나 노련하고 순발력있게도 우영덕 사장은 예의 그 거룩한 얼굴을 지어 만든 후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만 저 역시 돈이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 그렇군요.  송금 까다롭고 혹시 일이 터지면 송금 기록 남아 있는 것이 문제될 수도 있으니까요.”
    윤혜린의 말에 거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우영덕 사장이 고개를 끄덕했다.
    “빨리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돈은 언제 필요하시죠?”
    “다음 주쯤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 앞으로 어느 구좌에 입금시켜드려야 되나요?”
    “고위층의 지시대로 수일 전에 제 개인 이름을 써서 비한국계 은행에 구좌를 만들었습니다.  다음 주에 구좌 번호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입금이 확인 되는대로 영수증을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는 안돼요.”
    “네?  그럼 더 필요하신 것은?”
    “제가 잠시나마 차용해드리는 돈에 대한 이자가 필요해요.”
    “이자요?”
    긴장했던 우영덕 사장의 얼굴이 풀어지면서 미소했다.
    “물론 이자 지불은 이미 계획되어 있는 일입니다.  아, 남의 돈을 그냥 쓸 수야 있나요?  표면적으로는 아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대한민국 정부가 되사리고 있는 일인데.”
    “한 달에 8 퍼센트의 이자를 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 달에......8 퍼센트 말입니까?”
    우영덕 사장이 입을 벌렸다.
    “그건, 좀......결재 받아내기가 어렵습니다.  고리대금보다도 더 높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우영덕 사장이 단호히 거절하는 시늉을 했다.
    “그럼 할 수 없어요.  저는 미국 쪽의 방위 산업체에서 부품 선적의 허가를 받아내는데 까지만 일을 하고 3 퍼센트의 코미션으로 만족하고 말아야 되겠네요.”
    “한 달에 5 퍼센트 정도의 이자를 한번 허가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영덕 사장이 얼른 말을 했다.  우영덕 사장은 자기가 다급한 마음을 지긋이 꽤나 잘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요.  한 달에 6 퍼센트.  이자는 선 지급.”
    “..........”
    우영덕 사장은 앞에 앉은 천사를 음미하듯 열심히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어차피 안줄 이자다.  줄다리기를 하는 이유는 다만 이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느껴지게 만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6 퍼센트면 어떻고 60 퍼센트면 어떻겠나?
    윤혜린이 뭔가를 찾느라고 핸드빽을 뉘지면서 꼬았던 다리를 무심결에 다시 내려놓고 반대로 꼬았다.  이 바람에 스커트가 더 치켜 올라가고 그와 동시에 우영덕 사장의 눈이 윤혜린의 하반신에 가서 붙어버렸다.
    “어머, 이를 어째!  서둘러서 오다비니까 현금만 못 챙겨서 왔는줄 알았는데 크레딧 카드가 든 지갑까지 몽땅 다 두고 왔어.  어찌지......”
    혼잣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는 충분히 커서 옆에 있능 우영덕 사장의 귀에도 들어왔다.
    “윤혜린 여사님.  좋습니다.  6 퍼센트에 선이자.  승낙하겠습니다.”
    우영덕 사장은 너무 연극을 빳빳하게 하다가 손아귀에 다 들어온 새를 놓치지 말자고 결정했다.
    “6 퍼센트라면 엄청난 이잡니다.  아무리 이쪽이 더러 쫓기는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상대는 대한민국 정부인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윤혜린이 어쩐지 안정이 안된 얼굴로 앉아있던 침대 가장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벅지까지 치켜 올라간 스커트를 추스러 내리더니 우영덕 사장에게 눈을 줬다.  윤혜린의 아랫도리에 뚫어지도록 눈을 주고 있던 우영덕 사장이 다소 당황하며 윤혜린을 보았다.
    “미안해요.  시간도 늦고 했으니 그 결말은 내일 내기로 해요.  돈도 다음 주에나 필요하다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밤늦게 둘이 앉아서 꼭 오늘 밤 안으로 매듭을 지어야할 필요가 없잖아요.”
    빌어먹을, 우영덕 사장이 속으로 부르짖었다.  돈은 다음 주중에 필요하다고 왜 내가 그딴 소리를 했더라는 말이냐?  지금 당장 필요하다, 지금 당장부터 일을 시작해도 다음 주 정도나 되어야 그 부품이 한국에 선적되게 된다, 왜 이렇게 얘기할 수 없었는가 말이다, 빌어먹을!

    “늦기는요?  지금 11 시 반 밖에 안됐는데, 뭘......거디가 저는 저의 일의 결말을 보고 받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한국에 있습니다.  이제 내 개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결말에 대한 보고가 빠르면 빠를수록 저에게 유리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죠?”
    “...........”
    “참, 말씀하실 수 없겠네요.  극비 사항이니까.  처음 율곡 사업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많이 구속되고 은퇴해서 현역에서 빠져나간 걸로 알고 있으니까 그 사람은 내가 모르는 새 사람들이겠죠?”
    “율곡 사업에 많은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윤혜린이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니까 십 수 년 전 처음 미국에 와서 텍사스 주립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항상 궁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달라스의 룸싸롱에 호스테스로 나가본 시절이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 때 율곡 사업 때문에 달라스에 있는 미국 방위 산업체에 와서 머뮤르던 무관들과 교제의 기회가 생기면서 윤혜린은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었다.  특별히 미모가 뛰어난 윤혜린에게 그들은 국가 기밀을 묻지도 않는데 자랑하듯 잘도 떠벌리곤 했었다.
    “최종오 준장님을 아시죠?  하명종 대령님, ...... 또 누구더라 ...... 아, 김진호 대령님 ...... ”
    우영덕 사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이름들은 모두 실제로 율곡 사업에 관여된 주역들이었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물밑 작업을 한 팀이 되어서 일반인들은 모르는 이름들이었다.
    “아니, 그 분들을 어떻게 아시나요?”
    “그저, 조금 ...... 모두 제가 미국의 방위 산업체와 일이 잘되도록 기름을 치고 시중을 드려드렸던 분들이거든요.  참, 그나저나 어떡허지 ...... 여하ㄴㅡㅌ 내일 얘기해요.”
    윤혜린이 또 불안정한 표정으로 우영덕 사장을 방에서 내보내고 싶어했다.
    “불편하게 해드려서 안됐습니다만 저는 오늘 밤중으로 모든 사항을 합의하고 하다못해 손으로 쓴 각서라도 하나 만들어들고 가서 서울로 전화 보고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뭐 걱정되는 일이 있으신 것처럼 보이는데, 뭐죠?”
    윤혜린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웃을 때 드러난 하얀 이가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 빛났다.  그 입안에는 박하 사탕이 녹아 흐르는 것 같은 향기가 가득할 것 같았다.  빌어먹을.  우영덕 사장은 다시 꼬르륵 침을 삼켰다.  그러나 아ㄴㅣㄷ다, 일단 돈부터 먹자.  돈부터 먹고 나머지 먹거리는 그 다음에 보다.  우영덕 사장은 스스로의 그 노련한 생각에 감탄하며 흡족스럽게 생각했다.  윤혜린이 분명히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표정으로 우영덕 사장을 보았다.
    “저는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거든요.  저는 여자인데다가 더구나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아니에요.  저는 수중에 넉넉하게 돈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습관이 있어요.  더구나 크레딧 카드도 두고 왔어요.”
    별 떡 같은 습관이 다 있군.  우영덕 사장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수긍인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돈이 얼마나 필요하신데요?  이런 걸 여쭤 봐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 ”
    “한 만 불정도 ...... ”
    “만 불이나?!”
    “제 언니가 로스앤젤레스에 살거든요.  온 김에 들려서 만나보고 조카들 선물이라도 좀 챙겨주고 가려고 그래요.”
    “알았습니다.  그런 정도의 돈이라면 제가 내일 해놓겠습니다.  우선 한 이 천 불 정도는 지금이라도 수중에 있으니까 드리고 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습관이 있으시니까 이런 돈이라도 가지고 계시면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윤혜린의 얼굴에 예의 활짝 웃음이 피어났다.  우영덕 사장은 이 여자가 천사처럼 예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었다.  우영덕 사장이 보란듯이 기세 좋게 백불 짜리 20 개를 세어너 내밀자 윤혜린은 아무 주저도 없이 받아서 핸드백에 넣었다.
    “고마워요.”
    “자, 그러면 거래는 이뤄진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네?  무슨 거래요?”
    윤혜린이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졸리운 얼굴이 되면서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했다.  우영덕 사장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윤혜린을 보았다.
    “전투기 부품 사업 말입니다.”
    “아, 그거.  사장님, 우리 그 얘기 내일 하면 안 될까요?  틀림없이 내일 만족스럽게 매듭지을 수 있도록 제가 협조하겠어요.”
    우영덕 사장은 닭 쫓던 개처럼 멍한 눈으로 윤혜린을 보았다.  지금 상황 속에서 가장 좋은 결정은 유혜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유감스럽지만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은 어디서 만날까요?”
    “저는 차가 없으니까 이 호텔까지 와 주셔야 되겠어요.  11 시에 로비에서 전화를 하시면 제가 내려가던가 아니면 방으로 올라 오시도록하든가 하겠어요.  참, 이왕 신세지는 김에 현금으로 이만 불을 만들어 오세요.  동생도 하나 있는데 좀 어렵게 살기 때문에 온김에 한 만 불정도 보태주고 가고 싶어요.  자, 그럼 내일 봐요.”
    떠밀리다시피 하면서 우영덕 사장이 호텔 방에서 나오자 안으로부터 문이 쿵하고 닫혔다.
  
    미친 짓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큰 고기를 낚으려면 낚싯밥 정도는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건 미친 짓이다.  우영덕 사장은 속으로 떠들면서도 한국계 은행을 세 군데나 돌면서 크레딧 카드 넉 장에서 한도액 까지 모두 뽑아내고 주머니에 있던 돈 까지 다 합쳐서 합계금 만팔천 달러를 백 불짜리 지폐로 모아서 봉투에 넣었다.  어제 아낌없이 내준 이 천불까지 합쳐서 정확하게 이만불이 되는 셈이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혹시 윤혜린이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할 경우에 대비해서 참고 11 시에 맞춰서 윤혜린의 호텔로 갔다.  구내전화로 방을 울리자 윤혜린이 전화를 받았다.
    “정확하시군요, 우영덕 사장님.  저는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을 좋아해요.  올라오세요.”
    우영덕 사장이 똑똑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방문이 활짝 열렸다.  환하게 웃고 서있는 윤혜린은 어제와 달리 초록색 원피스 드레스에 목에는 흰색 사카프를 두르고 있었는데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천사였다.  눈부셔서 당황하며 문 밖에서 쭈뼛거리고 있는 우영덕 사장을 보고 윤혜린이 까르르 웃었다.
    “왜 마치 첨보는 사람처럼 그렇게 서 계셔요?  남들이 보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빨리 들어오세요.”
    우영덕 사장이 정신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윤혜린이 등뒤로 문을 닫았다.  윤혜린이 움직일 때마다 연한 향수 냄새가 우영덕 사장의 코 끝에 와 닿고 그는 코를 스물 거리며 그 환장할 정도로 선정적인 향기를 즐겼다.  
    “하룻밤 자고 나니까 이제 기운이 날 것 같아요.  정신도 맑아졌어요.  이제 율곡 사업의 남은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듣기로해요.”
    꼬르륵, 뱃속에서 느닷없이 배고픈 소리가 나서 우영덕 사장은 황망히 위도리를 여미고 단추를 끼웠다.  무안함을 감추려고 얼김에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꺼내어 탁자에 놓았다.
    “어마, 약속대로군요.  사장님은 잰틀맨이셔요.”
    윤혜린이 돈 봉투를 들어 핸드백 속에 구겨 넣었다.
    “액수 확인을 안 하셔도 되겠습니까?”
    우영덕 사장이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큰 일을 같이 할 사이에요.  이 정도의 용돈을 주고받으면서 액수 확인을 걱정하면 진짜 벌어질 일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거래할 수 있겠어요?”
    윤혜린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말하고 우영덕 사장의 앞에 의자를 바짝 끌어다놓고 앉았다.
    “자, 이제 본론이에요.  저는 두 시간 후에는 공항에 나가 있어야 해요.  2 시 45 분에 떠나는 비행기 편으로 워싱턴으로 가기로 되어 있거든요.”
    “아니, 그렇게 빨리 떠나버리시면......”
    우영덕 사장이 다소 당황해서 말했다.
    “저는 내일 워싱턴에서 상원의원 로버트 맥다우니 하고 중요한 회담이 예정되어 있어요.  한국에서 오신 모 재벌 회사의 회장님 일행도 기다리고 계시고요.  제가 빠지면 모든 일이 다 무산되는 거예요.”
    상원의원, 재벌 회사 어쩌고 하는 바람에 다소 기가 꺾인 우영덕 사장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이렇게 이 여자를 그냥 보내줘도 되는 것인가?
    마치 그런 우영덕 사장의 심중을 읽기라도 한 듯 윤혜린이 말했다.
    “더구나 사장님과의 거래 조건만 지금 이 자리에서 명료하게 합의해 놓으면 사실상 제가 사장님과 같이 있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겠어요?”
    우영덕 사장은 침을 꼴깟 삼키면서 생각했다.  왜 없어?  일이 잘 성사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라도 같이 호텔 방에 묵으면서 그 흔한 외설 비디오라도 틀어놓고 최소한도 반나절쯤은 침대에서......
    “사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앞으로 손잡고 같이 일할 사람이므로 서로 좀 더 알고 또 좀 더 상세한 의논을 했으면 했던 것이 제 욕심이었습니다.”
    윤혜린이 살짝 미소했다.
    “우선 제가 입금시켜드릴 3백만 달러에 대해서는 월 6 퍼센트의 이자를 저에게 지급해 주시기로하고 이자의 지급은 선이자 형식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한 달 중의 단 하루라도 돈을 쓰시게 되면 그건 완전한 한 달로 계산해서 6 퍼센트를 주셔야합니다.  구좌 번호와 명의를 알려주시면 다음 주 월요일에 입금시켜 드리겠어요.  당연히 이자 계산을 월요일부터 하게 되고 선이자 십팔만 달러 중 오늘 제가 차용한 이만 달러를 제한 십육만 달러를 빼고 284 만 달러를 입금시켜 드리겠어요.  제가 나무 빨리 가고 있나요?”
    윤혜린이 말을 멈추고 우영덕 사장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니, 아닙니다.  계속하십시오.”
    “그 이후 빨리 나에게 주실 것은 미국의 방위산업체 이름과 만나야할 사람 이름, 구매서 번호를 주셔야 해요.  할 수 있다면 그 구매서의 사본 한 장을 받고 싶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여기 까지 해놓고 한국의 연락처를 제게 주신 후 귀국하시면 되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여기서 알아서 처리할 테까요.  아, 참, 어떻게 선적하라는 선적지시도 주고 가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빨리 부품을 확보해서 선적해드릴 수 있습니다.”
    우영덕 사장은 미리 준비해놓았던 은행의 명함을 윤혜린 앞에 밀어 놓았다.
    “구좌는 이 은행에 개설했습니다.  제 이름 영문 철자와 으행 구좌 번호는 뒤에 적혀 있습니다.”
    윤혜린이 명함을 들어 앞면이건 뒷면이건 도무지 보지도 않고 핸드백 속에 넣어 버렸다.  꼬르...... 하면서 또 배고픈 소리가 나려고 하자 우영덕 사장은 순발력 있게 배에 힘을 주었다.  반쯤 나던 소리는 신기하게도 딱 멎어버렸다.
    “자, 이제 일어나시죠.  저는 공항으로 가야해요.”
    윤혜린이 일어나서 옷장을 열고 미리 꾸려놓았던 수트케이스를 꺼냈다.
    “아래층까지 좀 도와지시겠어요?”
    “물론이죠.”
    우영덕 사장이 얼른 상전을 모시는 하인처럼 수트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빠이, 또 봐요.  즐거웠어요.”
    같이 따라 들어가겠다는 우영덕 사장을 굳이 마다하고 차를 아메리칸 에어라인 입구에 대게 한 후 내려서 차창 안을 들여다보면서 윤혜린이 말했다.  그러고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도 경쾌하게 알맞게 살이 오른 엉덩이를 흔들어 걸어서 터미널 안으로 사라졌다.  마치 손안에 다 들어왔던 파랑새를 놓쳐버리는 것 같은 안타까운 눈으로 아쉽게 트 천사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우영덕 사장은 뒤에서 다른 차가 빠앙 경적을 울리자 질겁을 해서 놀라며 차를 움직였다.  어쩐지 무엇인가가 도무지 석연치 않고 또 방금 날아가버린 파랑새가 못내 아쉬워서 공항 구역을 빠져나가는 대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어슬렁어슬렁 유혜린이 내린 터미널로 다시 걸어갔다.  혹시나 하면서 여기 저기 둘러보았지만 윤혜린은 보이지 않았다.  꼬르륵하고 배고픈 소리가 그 혼잡한 공항 안에서도 들릴 만큼 크게 났다.  그제야 비로소 자기가 몹시 배가 고프다는 것을 알게 되 우영덕 사장은 마침 보이는 햄버거 그림이 그려진 간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서 어쩌고저쩌고 영어를 해서 간신히 햄버거와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테이블로 가지고 와서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사실은 커피가 아니고 코카콜라를 시킨다는 것이 깐에는 미국식으로 “코우크”하고 말했는데 잘못 알아들은 점원이 커피를 준 것이지만 그런대로 뜨거운 커피가 차가운 코우크 보다 나았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말았다.
    햄버거 가게를 나와서 우영덕 사장은 계속 주위를 둘레둘레 둘러보면서 걸었지만 윤혜린은 역시 아무 데에도 보이지 않았다.  2 시 45 분 출발 비행기라고 했는데 지금이 2 시 20 분.  지금쯤은 비행기 안에서 좌석에 앉아 출발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영덕 사장은 터미널 건물을 빠져나와 보도를 잠시 걸어 건널목으로 가고 있었다.  저쯤 떨어진 곳에 노란색 택시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데 어, 뒷모습이 꼭 윤혜린 같이 보이는, 옷도 초록색 원피스에 하얀 스카프가 택시 뒷좌석에 오르는 것이 보였다.  우영덕 사장은 자기도 모르게 윤혜린씨! 부르면서 택시 쪽으로 서너 걸음 뛰어가다가 멈췄다.  그 초록색 원피스를 태운 택시는 이미 출발하여 다른 많은 차량 속으로 섞여 들어가고 있는 것이였다.

    월요일 12 시.  우영덕 사장은 은행에 전화를 해보았다.  입금 없음.  현재 잔고 백 불.  이 잔고 백 불은 우영덕 사장이 구좌를 신설할 때 집어넣은 자기 돈이었다.  다시 2 시.  역시 입금 없음.  잔고 그냥 백 불.
    오후 3 시.  오후 4 시.  입금 없음.
    화요일에는 은행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아예 직접 나가서 버티고 앉아 점검을 했다.  
    10 시.  11 시.  12 시.  2 시.  3 시.  4 시.
    은행 직원이 희한한 사람 다 보겠다는 듯 신기하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은행이 문을 닫자 우영덕 사장은 힘없이 은행을 나와서 손에 들고 있던 모빌 전화로 윤혜린의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를 돌렸다.  영어로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이 말하자면 지금 전화 받을 수 없으니까 메시지를 남겨놓으라는 소리라는 것쯤은 우영덕 사장의 센스로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한국에서 온 우영덕 사장입니다.  제 은행에 대금이 입금되지 않아서 이틀째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는지 궁금하므로 조속히 전화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자기 전화번호를 남겨 놓았다.
    그러고 약 10 분도 되지 않아서 우영덕 사장의 모빌 전화가 따르르 울렸다.  허겁지겁 전화를 받자 아니나 다를까, 낭랑한 천사의 목소리가 싱그럽게 들려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윤혜린이에요.  전화하셨죠?  제가 여기서 좀 조사를 했거든요.  한국에서 구매해간 전투기의 부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고 달라스에 있는 그 방위 산업체에 아는 사람을 동원해서 구매 기록들을 다 뒤져봤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부붐들에 대한 구매 기록이 없는 거예요.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전화를 드린다는 것이 그만 저도 바빠 가지고......”
    우영덕 사장은 가슴이 철렁했다.  윤혜린이 그런ㄷ 까지 전화해서 정보를 뽑아낼 실력이 있었는지를 몰랐던 것이었다.  물론 구매 기록이 있을 턱리 없다.  도무지 구매 그 자체가 없는 것이니까.  이를 어쩐다지, 제기랄.
    “제가 한 번 더 알아보도록 하겠어요.  모든 일이 실로 다양하게 일어나는 나라가 되어놔서 제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거든요.  어떤 특별한 사유로 구매국의 정부인가 없이, 또 구매 계약서도 없이 부품이 나갈 수도 있는지 제 정보원을 통해서 한번 알아보겠어요.”
    “......”
    “돈은 확인이 되는대로 즉각 입금시켜드리겠어요.  아묵 걱적 안 하셔도 돼요.  그럼 또 아따금 전화 올릴게요.”
    딸깍하고 전화는 끊어졌고 우영덕 사장은 자신도 모르게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청순하고 명랑하면서 가슴 설레게 아름답고 또 묘하게 성적 관능미가 가득 찬 이 천사는 이제 우영덕 사장의 억울한 돈 이만 달러와 함께 훨훨 날아서 우영덕 사장의 손이 닿지 않는 창공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었다.
    그로부터 4 개월 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아낌없이 긁었던 이만 달러의 크레딧 카드 빗은 이자에 이자가 붙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 때 까지도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며 비실비실 살고 있던 우영덕 사장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은행에 전화를 해서 잔고 확인을 했다.  백 불 이었던 잔고는 그 사이에 한 달에 8 불 50 센트씩 은행 수수료가 네 번 빠져나가 66 불로 줄어 있었다.


김   영   문 / YOUNG MOON KIM   03/01/03  (200 자 X 115 매)
LOS ANGELES,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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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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