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씨에게 붙이는 글"

2005.05.23 08:37

김영문 조회 수:1126 추천:123

                       “도올 김용옥씨에게 붙이는 글”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와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를
읽고 나서.
(김용옥씨의 글 전문 말미에 첨부되어 있음)

     한국을 떠나 산지 오래되어가는 사이에 내 사랑하는 나라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마구 터져 나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서슬 시퍼런 병영 통치를 받으며 살던 저에게는 모든 일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대통령을 등신이라고 부르지 않나, 장관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지르지 않나, 군수가 군민들에게 몰매를 맞고 입원하지 않나, 놀라울 정도로 자유가 만발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대통령을 해고해버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박정희나 전두환 때 이런 시도를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봅니다.  그것도 모자라는지 이제는, 아, 김용옥씨가 “헌재가 다 뭐냐,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다”라고 대갈하신 겁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당연히 과거에 없던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사고방식과 생활의 양상이 바뀌는 것 또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향이 성실하고 진지한 쪽이 아니고 그 바탕에 건강하고 진취적인 사회 철학이 깔려있지 않다면 꽤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아무리 거리낌 없이 분방한 자유라도 그것은 무질서한 방종과는 구분되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하고 사약을 받은 쏘크라테스의 외침이 더 수긍 간다고 이야기한 대전지법 유재복 판사님의 소박한 의견에 찬사를 보냅니다.  인구의 수가 늘고 더욱 대형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규제할 수 있는 법이 무시된다면 그 사회가 당면할 것은 혼돈과 무정부 상태 밖에 없습니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고 말씀하신 그 날의 글에서 우리 헌법이 미국이나 영국의 헌법과 달리 역사적 체험의 축적 없이 일시에 몇 명의 제헌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1948 년 7 월 17 일이라고 제헌 날짜 까지 적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현존하고 있는 헌법을 무시하고 민중의 함성에 의존해서 국가를 운영하자는 이야기이신지요?  그리고 도무지 이런 이야기를 왜 지금에야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풍랑을 만나서 배가 난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배는 이따위 나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떠드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헌법이 그렇게 종이조각 만큼도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면 1948 년 7 월 17 일 이후 오늘까지 무수하게 많은 날들이 있었는데 왜 그 많은 세월을 침묵하다가 문제가 코앞에 닥드렸을 때에야 비로소 이 헌법이 체험의 축적 없이 운운하면서 가치 폄하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불이 난 다음에야 비로소 집안에 소화기 하나 준비해 놓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이 나기 전에 집안 요소마다 소화기를 미리미리 비치해 놓을 수 있는 사람과 저는 같은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용옥씨는 피비린내 나는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의 성문 헌법이나 권리장전을 거치면서 왕권을 제약하고 국민의 몫을 확대해나간 영국의 불문 헌법과 다르게 우리의 헌법은 탁상에서 만들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헌법이 그들의 것보다 치졸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실로 대단한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오랜 경험을 하고 피를 흘리며 쌓아올린 치적에서 우리가 배워올 수도 있습니다.  꼭 우리가 그 절차와 경험을 몸소 똑같이 겪어야만 그만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이 흘린 피에서 내가 배울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내가 꼭 피를 흘려보지 않아도 피가 나오면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가급적 피는 남이 흘리고 나는 관찰하면서 배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헌법이 설혹 지적하신대로 역사적 체험의 축적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다만 그런 이유 때문에 꼭 가치 면에서 열등하다고 싸잡아서 몰아붙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크거나 또는 작은 결함이 발견된다면 적법절차에 의해서 개헌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되었건 부잣집 벤츠 차보다는 내 집 앞에 세워놓은 내 똥차가 내게는 더 가치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헌법은 우리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의 헌법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많은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면 우리 다같이 그것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작업에 김용옥씨께서도 동참해주실 의사는 없으신지요?  빗물 새는 초가집에 팔짱끼고 앉아서 집을 이따위로 부실하게 지은 놈은 뒈질 놈이라고 악담만 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에게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팔 걷고 나서서 미끄러운 지붕에 올라가 비닐이라도 덮으면서 뭔가 실질적으로, 생산적으로, 또 진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최근에 우연히 읽어본 두 편의 글만 가지고 보면 나는 왜 김용옥씨를 정신적 지도자 어쩌고 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니면 우연히 읽은 글들이 못된 것만 걸렸고 나머지는 그런대로 꽤 괜찮은 글도 좀 쓰셨는지요?  

     우리 한국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발달된 사람들입니다.  김용옥씨의 글도 역시 두뇌보다는 가슴에 호소하고 있습니다만 그 글을 읽을 사람의 지능을 너무 낮은 곳에 책정하고 쓴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의미 없는 미사여구를 나열하며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하셨습니다.  글쎄요, 요새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 정도의 글을 읽고 거리로 뛰쳐나올까요?  설혹 머저리 몇 명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람직한 일입니까?  너무 감성적인 한국인에게 가슴보다는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행동하기를 지금 당장부터 가르쳐도 늦은 판인데 김용옥씨의 글은 오히려 감성적이도록 선동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무턱대고 울어야하는 비극영화를 만들어놓고는 거기 맞는 관객을 고무신 관객이라고 불렀습니다.  김용옥씨의 글은 고무신 관객에게 호소하고자하는 글인 모양인데 유감스럽게도 요새는 그런 관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최근에 정기 건강 진단 때문에 UCLA 대학병원에 3 일 동안을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는 멕시코에서 넘어온 불법 체류자가 입안에 암세포가 있어서 계속 출혈을 하고 있는 위급한 상황이 되어 응급실에 들어온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료 보험이 당연히 없을뿐더러 도무지 미국에 인적 제원 자체가 등록되지 아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의사 둘과 간호원들이 정성껏 입안에 솜을 넣어 지혈을 하고 피검사를 한 후 수혈을 시작하여 위급한 상황을 면했습니다.  그런 후 두꺼운 병원 규정집을 꺼내놓고 이 무보험 불법 체류자를 입원시켜서 계속 치료해주려면 어떤 규정을 적용해야하는지 서로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치료 받을 수 있는 복지국가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위해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수많은 잡동사니 인종이 섞여 살면서도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바탕에 준법정신, 규율에 대한 경외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규정집 따위는 제쳐놓고 나서서 불쌍한 사람 입원시키시오, 해서 입원을 시키면 되겠습니까?  만약 다른 쪽에서 내 세금으로 운영하는 병원인데 세금 안내는 사람을 진료하면 안 됩니다, 하고 반대하면 어쩌지요?  두 패가 집단 권투 시합을 해서 결정하기로 할까요?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더러 납득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용옥씨의 “민중의 함성” 어쩌고 한 글을 게재하지 않기로 한 문화일보의 슬기로운 결정은 몹시 잘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김용옥씨의 목소리를 빌려 몇 말씀 더 드리고 내 이야기를 끝내기로 합니다.  

     봄!  봄!  봄이 오고 있다.  이 땅 아사달의 젊은이들이여!  진지하게 앉아서 고민하여라!  어느 누가 너희들을 선동하려고 하여도 바위처럼 꿈쩍도 말아라.  가슴으로 생각하지 말고 치밀하게 머리로 생각하여라.  뚜렷한 목적도 신조도 없이 거리로 나가서 우왕좌왕하지 말아라.  이는 진정 너희들 자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리니!  우리끼리 살 수 있던 시대는 이제 가고 없다.  싫어도 좋아도 우리는 좁아지고 있는 지구 울타리 안에서 더 가깝게 다른 나라와 묶여서 살아야한다.  아무렇게나 가슴으로 생각하고 감성으로 일을 저지르면서 욱하는 감정만으로 살 수는 없다.  냉정하게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계 경쟁에서 뒤떨어지게 되고 또 한 번 외세로부터 수모와 시련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지 말아라!  김용옥씨는 4.19와 6.3 사태 때 거리에 뛰어나가 데모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언제 적 얘기더냐?  그 때는 거리로 뛰쳐나가서 일이 해결되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21 세기다.  좀 더 세련된 방법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느니라.  불끈하는 기질에 뛰쳐나가서 때려 부수고 뛰어다녀서 뭘 어쩌겠다는 것이냐?  침착하여라.  불이나면 불이야! 불이야! 소리만 지른다고 불이 저절로 꺼지는 것이 아니리니.  냉정한 마음으로 소방서에 전화할 사람, 물 호스를 가져올 사람, 이웃에 돌아다니면서 알릴 사람, 물동이를 가져올 사람, 서로 일을 분담해서 실질적으로 불을 끌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하여 우리 한국인 모두가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행동할 수 있는 이성인이 된다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엉터리 정치인과 사이비 사상가를 몰아내고 진정 사랑과 화합으로 어우러진 소담스런 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리니.  아사달의 모든 젊은이들이여!  침묵하며 내면을 키워라.  침착하게 숙고하고 내 위치를 지키며 행동 하여라!  행동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 하여라!  타오르는 불꽃처럼 앞뒤를 재지 않는 소모적 행동을 하기에는 너의 인생이 너무 값지고 너의 앞에 놓인 가야할 길이 너무 찬란하지 않은가!
                  
김   영   문 / YOUNG MOON KIM (04/14/04)
LOS ANGELES, CA.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원문)
도올 김용옥

봄!  봄!  봄이 오고 있다.  이 땅 아사달의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봄을 맞이하여라!  봄의 오심을 예비하거라!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봄은 얼어붙은 대지에 미풍을 일으키고 죽은 등걸에 새싹을 돋게 하나니, 힘껏 외쳐 기쁜 소식을 전하라.  봄이 저기 오신다.  힘 빠진 이에게 힘을 주고, 기진한 이에게 기력을 준다.  솟구쳐 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치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  아사달의 젊은이들이여!  거리로 나가라!

젊음이 무엇이뇨?  불의에 항거함이다.  대낮에 저자 한복판에서 불의한 자들이 의로운 자를 몽둥이로 때리고 있다.  과연 참을 수 있을소냐!  노자는 말했다.  젊은이는 약하고 늙은이는 강하다.  약함은 삶의 무리요, 강함은 죽음의 무리다.  젊음은 나이를 모른다.  오로지 강함을 자처하는 자들만이 늙은이요, 그들만이 죽어가고 있는 자들이다!

안암의 동산에 앉아 있을 때, 나의 스승은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여기 앉아 있느뇨?  거리로 나가라!  디케(정의)의 횃불을 들고 불의의 저 벌판으로 튀쳐나가라!  그래서 우리는 4.19에서 피를 흘렸다.  6.3에서, 광주항쟁에서, 6월 항쟁에서, 우리는 의혈을 뿌렸던 것이다.

두려워 말라!  봄이 항상 너의 곁에 있다.  정의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준다.  헤스더 프린의 가슴에 새겨진 주홍글씨가 너의 가슴을 불사를지라도, 보라!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미 가파른 언덕을 굴러 내려가고 있다.  퀘묵은 바퀴에 녹이 떨어지고 삐걱 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어찌 간음을 밥 먹듯 하는 자들이 헤스터 프린 가슴의 주홍 글씨를 가리키며 간음자라 빈정거릴 수 있을까 보냐?

동학의 수레바퀴는 반상의 구별과 적서의 차별을 깔아뭉갰다.  그러나 아직도 사족의 자갈들이 바퀴를 멈추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수레는 되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봄이 오고 있다!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도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봄은 영원하리라!

아사달의 모든 젊은이들이여!  삼각에 올라 기쁜 소식을 전하여라!  두려워말고 소리를 질러라!  봄처녀 저기 오신다!  죽음의 무리를 쓸어버리며 새싹을 가슴에 품고 천지의 생명을 곱게곱게 몰고 오신다!

(끝)




제목 :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원문)
도올 김용옥

법이란 조문이 아니다.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  법이란 인간이 군집생활을 영위하면서 그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질서를 역동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약속체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것은 에토스요 노모스다.  법이란 실정법만 아니라 자연법도 있는 것이요, 성문법만 아니라 불문법도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를 통하여 수용된 대륙법계열의 성문법만을 우리나라 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법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결여를 의미하는 치졸한 발상일 뿐이다.

헌법이란 반드시 헌법이 규정하고자하는 정체의 역사적 체험으로 부터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헌법은, 피비린내 나는 독립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된 미국의 성문 헌법이나 마그나 카르타, 권리 장전을 거치면서 왕권을 제약하고 국민의 권리를 확대해나간 영국의 불문 헌법과는 달리, 역사적 체험의 축적이 없이 일시에 몇 명의 제헌 위원이 탁상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1948.7.17 공포)

그것은 헌법 학자 뢰벤수타인의 말대로, 신체가 의복에 맞을 정도로 성장할 때 까지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는 아무도 입지 않는 명목적 의복과도 같은 것이다.  우금치에서 흘린 10 만 동학군의 선혈, 4.19의 의혈, 5.18 항쟁의 분혈의 수레바퀴가 2 세기를 쌓아올린 민주 공든 탑의 총체적 운명이 오늘 이 시각 9 명의 단순한 해석자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작금의 사태야말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위헌 사태라고 나 도올은 감언한다.

천일의 앤, 에라스무스의 모가지에도, 최수운 해월의 모가지에도 망나니의 도끼는 어김없이 내려쳐졌다.  그릇된 명이라도 한번 떨어진 모가지는 다시 붙을 수 없다.  헌재의 판결을 조용히 기다리라는 모든 감언이설의 배면에 망나니 도끼에 대한 기대와 암약이 도사리고 있다면 조선의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망나니의 도끼는 헌법을 불살라버릴 것이다.  헌법 그 자체를 국민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이달시켜버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평온한 총선의 논리로 함몰되어서는 안된다.  탄핵정국이 근원적으로 우리사회의 정의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분노를 수그러뜨리면 안된다.  바로 이 시각 우리 민중의 함성!  그것 이상의 헌법은 없다.  우리는 헌법을 새롭게 써야한다!  빛나는 광장으로 나서라!  그리고 락밴드 킹 크림슨의 ‘에피타프(비명)’의 마지막 구절을 되씹어 보아라!

“운명의 철문 사이에 시간의 씨앗은 뿌려졌고, 아는 자 알려진 자들이 물을 주었다.  민중이 우리의 현장을 만들지 않는다면 모든 지식은 죽음의 키스일 뿐, 모든 인간의 운명이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니!”

(끝)


2004/04/09  동아일보

대전지법 유재복 판사, 김용옥 교수 글 비판

현직 판사가 대통령 탄핵 심판과 관련해 국민에게 궐기할 것을 촉구한 도올 김용옥 교수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해 관심을 끌고 있다.

대전지법 논산지원 유재복 (사법시험 24회) 판사는 7 일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법을 생각해 본다’는 제목의 글에서 “‘민중의 함성’이라는 애매모호한 잣대보다는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외침이 더 수긍이 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터넷에 올린 ‘민중의 함성, 그것이 헌법이다’는 글에서 “헌법이란 조문이 아니라 역사적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라며 “헌법 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지 말고 민중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판사는 “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혼란이 오고 그곳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만이 존재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세상사마다 참견하고 언제나 누구든 굴복시키려는 것은 독선이고 오만”이라며 “영향력이 있는 유명인이 (탄핵 심판에 대하여) 함부로 단정해 선동하면 순박한 일부 국민은 현혹될 수 있으며 이는 재판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 판사는 또 “민의는 변하기 때문에 행동하는 다중의 의사만이 민의인 것도 아니며 침묵하는 다수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풍조가 일고 있다고 진단한 유 판사는 “법이 절차에 따라 개정되거나 폐지될 수는 있지만 실정법은 유효하다”며 “국민의 뜻은 총선을 통해 반영될 수 있는 만큼 법은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치주의는 가장 정의로운 선택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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